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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익진의 무비세프 <26> 시인 실비아 플라스를 연기한 기네스 펠트로

이번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주실 건가요, 기네스 펠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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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 맨’ 같은 마블 영화에서 기네스 펠트로(1972년 생)가 맡은 역할은 다른 배우라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네스 펠트로는 그런 류 영화에 어울리지도 않았고 장점도 살아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런 종류 영화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나의 취향이 아닐 뿐이다. 스크린 속 기네스는 대체로 아름답고 우아한 자태를 유지하고 있으나 실생활에서 최근 몇몇 소식은 별로 좋은 내용이 아니었다.

이전에도 언급했지만 이 글쓰기는 개인 사생활에 관한 것이 아니라 영화 속 역할과 그들 배우가 출연한 영화에 관한 것일 뿐이다. 가끔 정도에 벗어나지 않을 만큼의 내용이 있을 때는 그들의 개인적 면모를 조금 가미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기네스 펠트로가 5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든지. 인터뷰 때마다 촌철살인 유머와 능수능란하게 민감한 부분을 피해 가는 영민함을 보여준다든지. 외모뿐 아니라 지적 능력, 취향, 출신성분까지 완벽한 그가 세간의 시샘을 받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라든지. “거들먹거리고 제멋대로인 공주” “얼음나라 공주” 등등으로 불린다든지 하는 것이다.

정익진무비셰프-기네스 펠트로-위대한유산 2
기네스 펠트로가 조연으로 출연한 영화들은 그냥 얼핏 얼핏 보았기에 잘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맷 데이먼과 쥬드 로와 함께 출연한 영화 ‘리플리(The Talented Mr. Ripley, 2000년)’ 에 관한 편집 영상물을 다시 찾아보았다. 두 주연 배우 맷 데이먼(톰 리플리 역)과 쥬드 로(딕키 그린리프 역)가 주로 스크린을 채우는 바람에 그녀의 분량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화면 속 그녀, 마지 셔우드(기네스 펠트로 분)가 등장할 때마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모습 때문인지 기대가 충족되었다. 마치 흐린 날 갑자기 나타난 무지개와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연기도 좋았다. 섬세한 내면 연기로 호평 받았다. 물증은 없으나 리플리의 범죄를 확신하는 그녀의 모습 중 리플리에게 의심이 가득한 레이저 눈빛을 쏘아 보내는 표정과 리플리에 대한 증오와 두려움이 폭발해 오열하는 장면 등등이 기억에 남는다. 휴양지에서 애인과 함께 망중한을 즐기는 여성 역할도 매우 잘 어울렸다. ‘리플리’가 2000년 개봉했으니 딱 20년 전 영화다. 20년 전 기네스 펠트로의 최전성기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기네스 펠트로 역시 금발이고 금발에 어울리는 금발 미녀로 손꼽힌다. 이 영화는 알랭 들롱이 주연한 영화 ‘태양은 가득히’를 리메이크했다. 역시 20년 전의 케이트 블란쳇과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모습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들은 조연으로 출연했다.

셰익스피어인러브
기네스 펠트로의 고전적이면서도 화려한 의상이 잘 어울린다.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를 이야기하려는 참이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Shakespeare in Love)는 존 매든 감독, 마크 노먼과 톰 스토파드 각본의 1998년 영국·미국의 로맨스 코미디 영화다.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쓰던 시기에 그려낸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이 이야기는 일종의 허구(fiction)이지만, 일부 인물은 실제 인물에 가깝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눈길이 갔던 점은 의상과 당시 시대 배경을 전해주는 각종 소도구와 연극무대 디자인이다.

의상은 그 시대를 가장 직접적으로 대변하는 척도라 할 만하다.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시기는 16세기다. 16세기는 자본 축적과 더불어 시간·경제적 여유가 생기자 중산층의 계급의식은 한층 노골화되었던 연유로 과장과 허식의식이 두드러진다. 즉, 중산층인 상인은 귀족 생활양식을 모방했다. 극단적인 화려함과 과장된 의상 패턴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는 사회·문화 배경에도 영향을 미친다. 유럽 그리스도 교회가 주도한 십자군 전쟁이 실패로 끝나면서 교회의 권위는 매우 약화된 상태였고 중상주의 발달에 따라 교회는 세속적으로 타락하며 그 결과 이 시대 예술 활동은 그리스 로마의 예술양식을 재현하기에 이른다. 남자들은 남성미를 강조하려고 어깨와 소매, 가슴을 과도하게 부풀리고 여자들은 여성미를 선정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목둘레선을 가슴 깊이 파고 허리를 가늘게 보이개 허눈 의상이 발달했다.

정익진무비셰프-기네스 펠트로-기네스 4
이런 의상이 키가 크고 늘씬한 기네스 펠트로에겐 잘 어울렸다. 1998년 연말 개봉했으니, 기네스 펠트로의 절정기라 할 만하다. 이 영화에서 펠트로의 몸을 감은 천을 빙글빙글 돌면서 한 겹 한 겹 벗겨내는 장면은 엄청 유명해져 이후 여기저기서 패러디되기도 했다.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역사상 가장 칭송받는 작가가 불후의 명작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잘 꾸며낸 가상의 뒷이야기다. 빚에 허덕이고 창작 영감이 떠오르지 않은 상태에서 연극 대본 마감일까지 훨씬 넘긴 윌리엄 셰익스피어(조셉 파인즈 분)는 이보다 나쁠 수 없는 상황에 빠졌다. 그때 만나게 된 바이올라(기네스 팰트로 분). 자신의 연극에서 배역을 따려고 남장을 한 젊은 여성을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자신의 새 로맨스에서 영감을 받은 윌리엄은 신들린 듯 작품을 쓰고 위대한 러브 스토리인 ‘로미오과 줄리엣‘을 써낸다.

영화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희생을 통해 두 극단(몬테규와 캬플렛 가문) 간 갈등을 끝내고 화해함으로써 결말을 맺는다. 그들의 죽음은 우리에게 어떤 인간적 갈등이든 개인과 소수의 희생을 통해 종식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살아남은 자는 새롭게 재생할 수 있다는 역설의 진리를 제시한다. 그래서 두 연인에겐 비극적 결말이지만, 사회적 집단 처지에서는 해피엔딩인 셈이다. (이 해피엔딩 때문에 셰익스피어 4대 비극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셰익스피어는 희곡 외에도 많은 시를 남겼다. 그중 사랑의 시(戀愛詩 )들이 유명하다. 소네트 (sonnet)란 14행의 짧은 시로 이루어진 서양 시가다. 각 행을 10음절로 구성하며, 복잡한 운(韻)과 세련된 기교를 사용한다. 13세기 이탈리아에서 발생해 단테와 페트라르카에 의하여 완성됐으며, 셰익스피어˙밀턴˙스펜서 등의 작품이 유명하다.

소네트 43번을 읽어본다.



나의 눈은 낮에는 허술하게 세상을 보고 밤이면 가장 잘 봅니다.

잠이 들면 꿈 속에서 당신을 알아보아요.



어둠 속이라 해도 내 눈은 빛을 받는 곳으로 향하게 되어요.

당신의 그림자가 어두움을 드리워도 그것만으로도 그늘을 빛나게 합니다.



한밤 중 깊은 잠에 빠져 장님같은 눈이 되어도 아름다운 당신의 그림자가 어렴풋이 보여요.



이럴진대 대낮에 당신을 본다면 내 눈은 얼마나 황홀할까요.

내가 당신을 보기 전에는 낮은 밤이에요.



꿈에 당신을 본다면,

밤조차도 밝은 낮이 되어 버리니까요.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7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13개 부문 후보로 올라, 작품상을 포함한 7개 부문 상을 석권했다. 다만, 몇몇 분야에서 입방아에 올랐다. 여우 주연상에 관한 것만 살펴본다.

여우주연상 : 기네스 펠트로의 수상에 대해서는 실로 엄청난 반발이 있었다 한다. 기네스 펠트로의 역할이 높은 연기력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었고, 더욱이 경쟁자들이 메가톤급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연기력을 보여주는 메릴 스트립이나 케이트 블란쳇 등등. 이 때문이었을까. 기네스 펠트로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은 아카데미 최악의 실수 중 하나로 회자된다. 기네스 펠트로의 오스카 수상식 수상소감은 너무 애처로워 쳐다보기 어려울 정도인데 최악의 평가를 받을 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네스 펠트로(Gwyneth Paltrow)는 L.A.의 영화인 가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브루스 펠트로 영화 만드는 사람이며 모친 블라이스 대너 (영화 ’실비아‘에 동반 출연)는 각종 영화제에서 다수 연기상을 수상한 중견 여배우. 산타 바바라의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미술사를 공부하던 중, 연기에 뜻을 품고 부친의 반대에도 학교를 중퇴했다. 모친과 함께 연극 ‘PICNIC’에 출연한 그녀를 보고 비로소 부친도 가능성을 인정하며 배우로 성장하도록 밀어주기 시작했다. 맥 라이언, 데니스 퀘이드와 함께한 영화 ‘악몽’으로 영화계 주목을 받기 시작해 ‘셰익스피어 인 러브’로 오스카 상을 거머쥐며 세계적 스타가 됐다.

기네스 펠트로의 리즈 시절, 또 하나의 대표작 ’위대한 유산‘(Great Expectations)은 1998년 개봉한 미국 영화다

1860대 영국 대문호 찰스 디킨스의 후기 대표작. 영문학계에서는 ’막대한 유산‘으로 번역하기도 한다는데 ’위대한 유산‘이 훨 낫다. 어리버리한 연기에 일가견이 있는 에단호크(핍 역, 1970년 생)와 패션모델 같은 포스를 빵빵 풍기는 기네스 펠트로(에스텔라 역)의 비주얼이 최상이다. 과거에 화려함에 빠져 허우적대는 앤 밴 크로포드(미스 노라 디 역, 1931년 생)를 볼 수 있어 좋았다.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어 대장장이인 매형 집에서 살던 소년 핍에게 난데없이 정체불명의 후견인, 아서(로버트 드 니로, 1943년생)가 생기고, 후견인의 뜻에 따라 신사 교육을 받으러 런던으로 간 뒤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신사란 무엇인가, 과거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사랑과 부, 재능, 선의 심지어 증오까지 인생 유산이라는 점 등등 보편적인 인생의 의미를 파악한다는 점에서 공감력이 크다. 디킨스 후기 소설의 특징이랄 수 있는 어둡고 비관적인 정조가 은근 깔려있고 사회 비판적인 요소도 센 편이다.

정익진무비셰프-기네스 펠트로-영화 실비아
영화 ‘실비아(Sylvia, 2003년)’는 시인을 소재로 한 영화였기에 가장 관심이 갔다. 미국 시인 실비아 플라스 (Sylvia Plath)는 1932년 태어나 1963년 겨울, 아이들을 남겨둔 채 가스오븐의 가스를 흡입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죽는 것은 하나의 예술이지요, 만사가 그렇듯.

난 그걸 특히 잘 해내요.

[……]



아마 내 천직이라 해도 좋을 거예요.

독방에서 그걸 하기란 아주 쉽죠.

그걸 하고 꼼짝 않고 있기란 아주 쉬워요.



그건 한낮에 똑같은 장소, 똑같은 얼굴, 똑같이 야만스러운

“와 기적이다”라는 들뜬 고함으로

극적으로 되돌아오는 것이예요.



윤준·이현숙 역 ‘실비아 플라스 시선집-거상 The Colossus’에서



영화 첫 장면에서 위와 같은 시를 읊조린다는 건 실비아(기네스 펠트로 분)의 미래가 운명적으로 암울할 수밖에 없음을 상징한다. 개인적으로 매우 불행한 삶이었지만, 시 영역에서는 퓰리처상까지 받으며 위대한 작품을 남긴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고백시파의 대부 로버트 로웰 그리고 알렌 긴즈버그, 앤 색스턴 등 1950년대 미국 고백시의 대표 시인 중 한 사람으로 꼽는다. 고백시는 실존적 주관성과 일상적 자아 탐색을 드러내는 시적 경향으로 개인적인 폭로를 통해 시적 충격을 준다. 그렇다고 사적인 고백으로 그치는 것은 아니다. 자전적인 경험을 문명 비판이나 생명, 죽음 등 보편적인 관점에서 초연하게 또는 해학적으로 접근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솔직하고 깊이 있는 심리적 진실을 담아낸다는 점이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실비아 플라스의 시 세계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미학을 드러내는 이중성과 정신분열적인 특성을 나타낸다고 말 할 수 있다.

추신: 영화 ‘실비아’의 여러 장면 중 기네스 펠트로(실비아 역)의 시 낭송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5개 국어를 구사할 정도의 언어 감각이 탁월해서인지 영국식 영어 발음도 완벽 그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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