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2년 윤5월 13일 아침. 사도세자 어머니 경희궁은 울면서 영조에게 아들을 벌해달라고 고한다. 마음을 다잡았던 영조는 창덕궁으로 가려 한다. 오후 1시. 영조가 정성황후 혼전인 휘령전에 나타나 사도세자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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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세자 뒤주는 풀로 덮인 후 동아줄로 꽁꽁 처매졌다. 영화 ‘사도’ 중 한 장면. |
세자가 예복을 벗고 엎드렸는데 상복인 무명 겉옷(세자가 강박증인 의대증을 앓아 그런 옷을 입었다)이 드러났다. 아들 질환을 몰랐던 영조는 상복을 입었다며 불쾌해하다가 칼로 돌바닥을 캉캉 치며 자결을 명한다. 11세 세손 정조가 울며 “아비를 살려주소서”라고 간청하지만, 영조는 현장에서 내쫓았다. 세자는 죽으려 하지만 주변인이 한사코 만류한다. 세자가 칼을 쥐면 빼앗고, 옷을 찢어 목을 매면 끈을 풀고, 이마를 찧으려 하면 손바닥으로 감쌌다. 후일 세자 죽음을 막지 못한 죄를 묻는 일이 벌어질 게 뻔하니 말리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세자가 읍소한다. “아버님, 아버님, 잘못하였으니, 이제 하라 하시는 대로 하고, 글도 읽고 말씀도 들을 것이니, 이리 마소서.” 담 넘어 이 소리를 듣는 혜경궁, 그 마음 어떠했으랴. 영조는 세자가 자결에 실패하자 부엌 뒤주를 가져오게 했다가 크기가 작자 물리고 가로세로 160여㎝ 어영청 뒤주를 들였다. “세자. 그 안에 들라.” 어느덧 저녁. 뒤주에 들어간 세자가 갑갑해 뛰쳐나오자 영조는 다시 들어가게 하곤 뒤주에 널판을 대 못질한 후 동아줄로 꽁꽁 묶었다. 뒤주를 승문원으로 옮겨 풀을 덮었으니 한여름 뒤주 안은 쪄 오른다. 영조는 폐세자 전교를 직접 쓴다.
갇힌 세자는 뒤주에 난 구멍으로 물 밥 약을 건네받아 먹으며 버텼다. 주변에 인기척이 나면 말을 건넸다. 하지만 영조가 완고하니 도움 손길이 곧 끊겼다. 지키던 병졸이 음식을 먹으며 세자를 비웃었다. 영조는 뒤주를 흔들게 해 상태를 살폈다. 7일째, 세자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흔들지 마라. 어지럽다.” 8일째 영조가 뒤주에 귀를 대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개선가를 연주케 하면서 거처인 경희궁으로 돌아갔다. 20일 오후 3시께다. 폭우가 쏟아지고 천둥 번개가 쳤다고 한다. 공식 사망일은 윤5월 21일(양력 7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