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아들 정조였다. “내 아버지는 사도세자다.” 1776년 즉위 일성이다. 직전에 영조에게 청해 승정원일기에서 ‘뒤주 참사’ 기록을 지웠다. 이어 창경궁 옆에 사도세자 사당을 지었다. 창경궁 북동쪽 담장을 헐어 지름길을 내 아침저녁 찾아가 기렸다. 같은 해 사도세자는 장헌세자(莊獻世子)로 추존됐다. 1789년 서울 동대문 밖 배봉산에 초라하게 자리 잡았던 사도세자 묘(영우원)를 화성으로 옮겨 현륭원이라 고쳐 불렀다. 이때 혜경궁 묘가 합장됐다. 현재 융릉인 이곳은 조선 왕릉 중 가장 아름답다는 평을 받는다. 1795년엔 옥책(玉冊, 존호를 올리고 추모하는 문서)과 금인(金印)을 갖춰 사도세자 존호를 8자로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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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세자 묘역인 융릉은 역대 조선 왕릉 중 아름답기로 으뜸이다. |
정조가 즉위한 해 7월 혜경궁에게 작은아버지 되는 홍인한이 정후겸과 함께 사약을 받았다. 혐의는 ‘정조 등극 방해’다. 영조실록을 보면 다른 꼬투리가 보인다. 홍인한은 ‘뒤주 참사’ 당일 여러 신하와 함께 마포에서 뱃놀이를 즐겼다. 정조 역린을 건드렸다. 1814년 3월엔 손자 순조가 나섰다. 사도세자 문집 ‘능허관만고(凌虛關漫稿)’와 정조 문집 ‘홍재전서(弘齋全書)’를 펴냈다.
사도세자 복권은 조선 마지막 왕이 마무리 지었다. 1899년 고종은 사도세자를 장조의황제(莊祖懿皇帝)로 추숭하고 광효대왕(廣孝大王)으로 불렀다. 동시에 혜경궁은 헌경의황후(獻敬懿皇后)로 추존됐고, 현륭원 이름도 융릉으로 높였다.
사도세자는 비참하게 죽었지만 피는 이어졌다. 정조(22대)는 둘째 부인 가순궁에게서 순조(23대)를 얻었다. 헌종(24대)은 순조의 손자. 철종(25대)은 사도세자와 숙빈 임씨 사이에서 난 은언군이 할아버지다. 고종(26대)은 은언군 동생인 은신군의 자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