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폐족 된 조선 왕족 명문가 출신
- 유배 생활에도 글쓰기 안 멈춰
- 동국진체 만든 그의 생애 조명

전남 해남 대흥사에 있는 ‘대웅보전’ 현판으로, 이광사의 글씨다.

오래전 해남 두륜산 대흥사에 갔을 때 대웅보전에 걸린 ‘대웅보전(大雄寶殿)’ 현판을 보고 무언지 모르게, 전기가 통하는 듯, 찌릿하게 감전된 기분에 사로잡혀 한참 그 앞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설명문에는 조선 후기 선비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1705~1777)가 쓴 글씨라고 나와 있었다. ‘이광사’라는 이름은 그때 뇌리에 박혔고, 떠나지 않았다. 작가 정강철 장편소설 ‘소설 원교-말 없는 붓, 외로운 먹’은 서예의 대가 이광사의 삶과 예술을 되살린 반가운 책이다. 올해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에 선정됐다.

작품은 알고 있었지만, 그 작품을 만든 예술가에 관해서는 모르고 있다가 문학이나 전기를 통해 비로소 그 예술가를 만나게 되는 것은 책 읽기의 큰 기쁨이다. 이 책에 실린 문학평론가 김영삼의 해설 ‘유배지에 핀 붓꽃’을 참조하면, 이광사 집안은 조선 왕족 혈통의 명문가였으나 정치 사건에 휘말려 폐족된다. 백부(큰아버지)와 아버지는 목숨을 잃었고 원교 이광사 자신은 유배령을 받고 함경도 부령에서 7년, 전라도 신지도에서 15년을 살았다. 신지도에 갇힌 그는 끝내 다시 뭍을 밟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광사가 양명학을 공부했음을 소설은 알려준다.

이 소설은 치열하고 섬세하게 써 내려간 예술소설, 예술가소설, 미학과 미감에 관한 소설로 다가온다. 서예를 놓고 스승인 백하 윤순과 이광사가 펼치는 대화·갈등·깨우침이 소설 중반까지 세심하면서도 힘 있게 전개된다. 원교 이광사는 어떻게 창조의 길로 나아가 ‘동국진체(조선의 글씨)’를 완성했을까. 작가가 온 힘을 기울였음이 느껴진다.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