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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118> 전성호 시인의 시집 ‘말을 삼키는 도시’

무역업으로 해외 떠돈 45년…시 쓰기가 고달픈 삶의 위안

  • 박현주 책 칼럼니스트
  •  |   입력 : 2021-11-14 19:41:46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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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창시절 이주홍 선생과 인연
- 사업하면서도 시에 대한 갈증
- 이국의 풍경·사람 노트에 적어
- 그 감상은 시로 다시 태어났다

‘집 떠나면 고생이다’ ‘외국에 나가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 많이 들어 본 말이다. 떠나지 않는 사람은 가볍게 농담처럼 하는 말이지만, 떠난 당사자에게는 절실한 심정이다. 내 나라, 내 집을 떠난다는 건 온통 낯선 상황에 놓인다는 것이다. 음식과 말 뿐이겠는가. 눈 앞을 스쳐 지나는 모든 풍경도 낯설다.
부산 남구 광안리 바닷가에서 만난 전성호 시인. 그는 미얀마에서 21년째 사업을 하면서 시를 쓰고 있다.
사업을 하면서 여러 나라를 다녔던 전성호 씨는 틈틈이 노트에 이국의 풍경과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적었다. 그 감상은 시로 다시 태어났다. 전성호 씨는 시인이면서 사업가이다. 미얀마에서 사업을 하는 그가 몇 달간 고국에 돌아와 부산에 있는 집에 머문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침 신작시집 ‘말을 삼키는 도시’도 출간됐다. 미얀마로 돌아가기 전 시인을 만나고 싶었다. 전성호 시인을 광안리에서 만났다.

■이국 땅에서 쓴 노트가 시의 바탕

말을 삼키는 도시- 전성호/도서출판 시인
광안리 바닷가에는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카페에서 바다 한 번 보고 시 한 편 읽고 있는데, 뒤에서 전성호 시인이 어깨를 툭 치며 아는 체를 했다. 편하게 왕래하는 사이가 아니었지만, 그의 환한 웃음을 보는 순간 긴장이 다 풀려버렸다. 마치 ‘미얀마에서 무사히 돌아온 삼촌’을 만난 기분이었다. 미얀마는 현재 군부에 맞선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나라이다. 그래서 전성호 시인이 더 반가웠고, 시집 이야기보다 그의 지난 삶을 더 흥미롭게 들었다.

전성호 시인은 1951년 경남 양산 서창에서 태어났다. 2001년 ‘시평’으로 등단했다. 시집 ‘캄캄한 날개를 위하여’ ‘저녁풍경이 말을 건네신다’ ‘먼 곳으로부터 먼 곳까지’ ‘말을 삼키는 도시’, 산문집 ‘디아스포라의 초상-깨어진 관계 미얀마’를 냈다. 현재 21년째 미얀마와 부산을 오가며 살고 있다.

부산과의 인연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이다. 삼촌이 근무하던 수산대(현 부경대)에서 급사로 일하면서 야간 중학교를 다녔다. “대학생 형들이 저를 많이 아껴줬어요. 도시락을 두 개 챙겨와 저와 나눠 먹는 형도 있었어요. 공부하다가 궁금한 건 그 대학생들에게 물어봤지요. 그들 모두가 제 선생이었답니다.”

수산대에서 그는 또 하나의 귀한 인연을 만났다. 당시 교수로 재직 중이던 향파 이주홍 선생이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던 그는 그 무렵 동시를 쓰기 시작했다. “‘봄’ ‘구름’ 이런 제목의 동시를 썼죠. 동시를 들고 이주홍 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제 동시를 보고 향파 선생님은 ‘이 시를 자네가 썼어?’ 하시며, 제 나이를 알고는 놀라셨죠. 이후에 ‘이렇게 써봐라, 이런 생각도 해봐라’며 따뜻한 조언도 해주셨답니다.”

시를 쓰고 싶은 마음은 한 번도 식지 않았다. 동아대 경영학과 재학 중일 때 그는 문학동아리에 가입한 유일한 경영대 학생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제가 시를 쓰고 있다는 걸 몰랐어요.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책, 문학잡지, 계간지를 계속 사 읽었어요. 책을 도시락처럼 들고 다니면서 틈틈이 읽었습니다. 시는 늘 마음속에 있었지만, 현실은 돈을 벌어야 했어요. 3년 지나서 외국인 회사로 옮겨서 다시 10년을 일했습니다. 외국 출장을 많이 다녔지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의류 무역을 시작했습니다. 외국 바이어들을 만나느라 부산에서 서울을 오가며 일할 때는 무궁화 열차 짐칸이 제 숙소였어요. 성공도 하고, 망하기도 해보고…. 러시아에서는 마피아에게 총으로 위협도 당했죠. 그 시간을 견디게 한 건 이국의 달빛 아래 적어간 노트의 한 줄 한 줄이었습니다.” 파란만장했다.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그가 겪어온 일들은 영화 한 편 보는 듯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삶도 치열하고, 시도 치열하다

미얀마 21년을 포함해 세계 곳곳을 누빈지 45년여, 그의 시도 치열하고 삶도 치열하다, 전성호 시인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그 생각이 들었다.

“IMF 이후 본격적으로 시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2000년 봄에 미얀마에 여행을 간 것이 인연이 되었어요. 21년째 미얀마에서 사업을 하고, 시도 썼어요. 최근에 미얀마에서 친구 두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위험하죠. 하지만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할 수 없어요. 코로나19 백신 접종 때문에 귀국을 했어요. 그 참에 수필집 한 권을 부산 출판사와 계약도 하고요.”

그에게 미얀마는 어떤 나라일까. 시 ‘상상의 나라’ 전문을 읽어보자.

‘다시 맞는 오늘/ 미얀마, 앞도 뒤도 없는/ 투명한 꽃들아,/ 기다림을 기다리는/ 풀과 빗방울의 나라,/ 강은 크게 흐르고/ 인따족, 샨족. 야카인족. 뻘라옹족,/ 빠오족, 더누족, 께옌족, 몬족, 께친족……/ 사람이 사람을 품어 오늘도 꽃이 피고 새들이 날고/ 에와야디 강은 오늘도 또 나라를 만든다/ 쎄인빤 꽃잎마다 둥지를 튼 내 상상의 나라,/ 헤아릴 수 없이 흘러가다/ 이제 막 태어나기도 하는 미얀마.’언론으로 본 살벌한 장면 너머 미얀마의 사람과 강이 보였다.

미얀마에 서 있는 전성호 시인을 연상하게 시가 있다. ‘응아빨리, 흰 코끼리의 바다’이다.

‘늙은 코끼리 한 마리 코를 끌고 걷는다. 몸을 싼 부드러운 가죽, 물 주름 밀려온다. 주름 접힌 긴 코가 주소인 응아빨리 네 발로 천천히 걸으며 직립을 꿈꾼 적 없다. 물 냄새를 맡으며 귀찮아 한 적 없었던 코는 어느새 바위처럼 풍경이 되었다. 그래 야자수와 나는 너의 고독한 풍경이었다’.시의 전반부다.

동양의 나폴리로 불리는 응아빨리에서 코끼리를 보면서 시인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시인의 생각과 상관없이 무거운 삶의 무게, 그러면서도 고독하게 지켜야 하는 하나의 세계가 떠오른다. 어쩌면 그것이 ‘시’가 아닐까.

시집을 펼쳐 ‘시인의 말’을 다시 읽어본다. ‘아무리 멀리 가서 살아도 목이 마르다. 갈증은 길을 나서는 순간 태생적인 것이 되어버렸다’.이 문장을 읽는 순간 목이 말랐다. 시인은 내내 그랬을 것이다. 삶의 갈증, 시의 갈증이 그를 살게 하는지도 모른다.

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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