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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국과 함께하는 명작 고전 산책 <30> 부분과 전체-베르너 카를 하이젠베르크(1901~1976)

자연 찾고, 대화 나누고 … 그 시대 과학자들은 낭만 있었네

  • 서부국 서평가
  •  |   입력 : 2021-11-11 19:45:12
  •  |   본지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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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자역학 하이젠베르크 자서전
- 원자물리 탐구여정 오롯이 기록
- ‘과학은 대화서 나온다’ 소신 속
- 지성인들의 치열한 문답들 담겨

- 전쟁 등서 양면성 보이는 과학
- 세상이란 전체서 부분인 과학자
- 어떤 책무 져야할지 되새기게 해

- 생각해야 ‘사실’이라는 문 열어
- 문·이과는 따로 분류할 수 없어

에르네스트 솔베이(1838~1922). 탄산나트륨 생산으로 번 막대한 돈을 과학 발전에 환원한 벨기에 화학자이자 사업가로 역사는 기억한다. 그는 1911년 벨기에 브뤼셀로 이름 높은 서양 과학자들을 불러들였다. 그들은 물리학·화학 학술회의를 열었다. ‘솔베이 회의’다. 그때부터 3년마다 개최됐는데, 지난해 28차 회의는 코로나19 사태로 건너뛰었다.
   
1927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5차 솔베이 회의 참석 과학자 29명 중 17명이 노벨상 수상자라는 점은 이 모임이 얼마나 대단했던가를 잘 보여준다. 앞줄 왼쪽부터 막스 프랑크(두 번째), 마리 퀴리(세 번째), 헨드릭 로렌츠(네 번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다섯 번째). 두 번째 줄 맨 오른쪽 닐스 보어. 세 번째 줄 왼쪽부터 에르빈 슈뢰딩거(여섯 번째),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아홉 번째).
쟁쟁한 과학자가 유달리 많이 모여든 1927년 5차 회의는 분위기가 예상대로 뜨거웠다. 이 세미나를 이끈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닐스 보어가 입씨름을 벌였다. 식사 자리에서 독일 이론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가 주창한 ‘불확정성 원리’를 놓고 두 과학자가 상대를 향해 던진 ‘말 폭탄’.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지요.”(아인슈타인) “하지만 신이 어떻게 세계를 다스릴지 신에게 제시해주는 것도 우리 과제는 아닌 듯하네요.”(보어)

결정론자인 아인슈타인은 ‘불확정성 원리’를 도무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를 두고 하이젠베르크는 이 책 ‘부분과 전체’ 6장 ‘신대륙으로 떠나는 길’에서 이렇게 썼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발로 디디고 있는 단단한 바닥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불확정성 원리’는 32세 하이젠베르크에게 노벨 물리학상을 안기며 양자역학 창시자란 명성을 건넸다. 그는 원자 껍질 안에서는 지금까지 알려진 ‘언어’로는 원리·근본을 정확하게 묘사할 수 없는 특성이 존재한다는 걸 느꼈다. 원자 궤적이 그랬다. 원자핵 주변 현상을 완벽하게 규정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결정 요소를 아는 건 불가능하다는 결론 내렸다. 수식은 Δχ·Δp≥ħ 혹은 Δp·Δq~h.

   
하이젠베르크 기념 우표. 오른쪽에 ‘불확정성 원리’ 수식이 보인다.
이 고전은 자서전 성격이 강하다. 저자가 1919~1965년 경험한 원자 물리 탐구 여정이 오롯이 드러난다. 20세기 초반 자연과학에 뜻을 품은 청년들이 그 꿈을 이뤄가는 과정은, 지금처럼 각박한 세태와는 너무 달라, 1세기 전 그들은 이런 환경을 누렸구나, 하는 감탄과 부러움을 일게 한다. 틈나는 대로 자연을 찾아 다양한 주제로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젊은 지성이 참 풋풋하다. 저자를 포함한 청년 여럿이 슈타른베르크 호수를 향해 뻗은 너도밤나무 숲을 통과하는 장면이 책머리를 꾸민다.

이들은 자연과학자가 된 뒤에도 이렇게 자연 속에서 얘기를 나눴다. 실험하고, 그 실험이 가진 의미를 논의하며, 정중하면서도 치열한 대화를 쟁여 결과를 냈다. 부제 ‘원자물리학을 둘러싼 대화들’은 학문하는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암시한다. 이렇게 일상 속 대화가 몸에 배어야 토론을 제대로 하게 된다.

저자 역시 ‘과학은 대화에서 나온다’는 소신 아래 이를 실행하는 삶을 살았다. ‘하늘 같은 스승’을 내세우며 제자를 무시하지 않았다. 제자 역시 스승에게 할 말을 숨기지 않았다. 평생 스승이었던 닐스 보어와 저자가 나눈 대화는 철학자 간 문답 같다.

   
하이젠베르크는 제자 사랑이 남달랐다. 그는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는데 어느 날 나치당원인 대학생과 시국을 토론하게 된다. 두 사람 간 견해 차이는 너무 커 대화가 겉돌았다. 실망해 돌아서는 제자를 저자가 붙잡아 앉혔다. 스승이 치는 피아노에서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왔다. 한 명 제자를 위해 스승은 건반을 두드렸다. 정치색이 다르더라도 가슴은 서로 열었던 사제. 로만 폴란스키 감독 영화 ‘피아니스트’를 다시 보고 싶은 충동이 이는 대목이다.

세상은 무엇으로 이뤄졌고 어떤 질서로 움직일까. 인류가 이성에 눈뜬 이후 늘 가진 의문이다. 인류 과학 발전과 최소 물질 구성단위를 밝히려는 노력은 발걸음이 같았다. 하이젠베르크는 청년 때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쓴 ‘티마이오스’를 읽고 그런 발걸음에 동참하고 싶었다. 드디어 이론물리학자가 된 그는 원자 껍질 내부 비밀을 들여다본다. 1925년 5월 말, 건초열을 심하게 앓아 헬골란트섬에 휴양하러 갔을 때였다. 그곳에서 하이젠베르크는 자신이 생각한 양자역학 질서를 증명하는 행렬 수식을 세웠다. 에너지보존 법칙을 깔끔하게 만족시키는 모순 없는 수식. 그 순간 느낀 기쁨을 이렇게 썼다. “마치 표면적인 원자 현상을 통해 그 현상 배후에 깊숙이 숨겨진 아름다운 근원을 들여다본 느낌이었다. 이제 자연이 그 깊은 곳에서 펼쳐 놓은 충만한 수학적 구조들을 좇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자 나는 거의 현기증을 느낄 지경이었다.” 학자라면 누구라도 부러워할 순간이다. 하이젠베르크는 이런 큰 성과를 올린 뒤인 1926년 봄, 베를린에서 열리는 물리학 컬로퀴엄에 초대받았다. 이 세미나에서 저자는 아인슈타인을 만나 ‘불확정성 원리’를 설명했지만, 아인슈타인은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와 엎치락뒤치락 나누는 대화가 5장에서 이어진다.

2차 세계대전이 몰고 온 먹구름이 유럽을 뒤덮었다. 독일 물리학계에도 파란이 인다. 14장 ‘정치적 파국에서의 개인의 행동’에 나오는 안타까운 전시 사례. 라이프치히대 교수였던 저자는 가난하지만 명석한 후학인 한스 오일러(1909~1941)를 아꼈다. 하이젠베르크는 그에게 박사 학위를 주고, 원자에너지를 연구하는 ‘우라늄 프로젝트’에도 참여시키려 했지만, 순수한 공산주의자였던 그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군 정찰병을 자원해 전쟁 속으로 뛰어들었다. 오일러는 스승이 입대를 만류하자 이런 말을 남겼다. “하지만 이런 무의미한 세상에서 내가 여기서 원자에너지 활용을 연구한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오일러가 탄 정찰기는 1941년 6월께 아조프해로 날아갔지만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

전쟁이 주는 고통은 저자에게도 찾아들었다. 14장에서 하이젠베르크는 ‘1937년 여름 나는 잠시 정치적 어려움에 빠졌다’고 짧게 언급하고 넘어가지만, 그 실상은 상상을 뛰어넘었다. 나치는 하이젠베르크를 옥죄었다. 유대인인 아인슈타인이 주창한 상대성 이론을 강의한 사례조차 죄목에 올랐다. 그해 4월 29일 엘리자베트 슈마허와 결혼했던 저자가 얼마나 초조했을지 짐작이 간다. 한순간에 모든 걸 잃고 강제수용소에 끌려가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 나치 치하에서 망명 유혹을 떨치고 조국에 남아 전후 과학 재건에 투신하리라 결심한 하이젠베르크에겐 너무나 가혹한 시련이었다.

다행히 친족이 나치 친위대 수장을 설득해 하이젠베르크는 죽을 위기를 벗어난다. 이때 겪은 충격은 정신에 큰 상처를 남겼다. 저자는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도 게슈타포가 저벅저벅 침실로 걸어들어와 자신을 체포해가는 악몽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 책을 다 읽게 되면 하이젠베르크가 ‘부분과 전체’란 서명(書名)에 여러 의미를 부여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세상이라는 ‘전체’를 위해 ‘부분’인 과학자(개인)가 어떤 책무를 져야 하는지 되새겨 보게 한다. 책 마지막은 영화 한 장면 같다. 저자 부부가 두 아들을 데리고 막스 플랑크 행동학연구소에서 일하는 에리히 폰 홀스트를 만났다. 홀스트와 저자 두 아들은 거실에서 비올라 바이올린 첼로로 베토벤 세레나데 D장조를 연주한다. 삼중주를 들으며 하이젠베르크는 가슴이 벅차오른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커다란 드라마의 관중이자 배우로 짧은 시간을 살다 가겠지. 하지만 삶과 음악, 과학은 영원히 이어질 게 분명해.’

   
흔히 과학은 이과생이, 인문은 문과생이 공부하는 학문이라고 한다. 일본이 이과 문과로 이분한 분류가 우리나라로 전해져 굳었다. 통섭·융합이 표어가 된 지도 오래지만 인터넷에는 여전히 ‘문과 이과 배틀담’이 떠돈다. 이 고전을 읽으면 그런 이분법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절감하게 된다. 문·이과가 따로 없다. 이론물리학자가 플라톤 칸트 괴테처럼 생각해야 ‘사실’이라는 문을 열게 된다는 걸 하이젠베르크는 잘 보여준다. 우리가 굳은 머릿속을 확 씻어내 실천해야 달라진 세상을 맞는다. 서평가·세상관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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