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전란 속에서도 스승 복을 타고난 과학자다. 원자 물리학계에서 양자역학을 공부해 큰 획을 그었다. 1927년 26세로 라이프치히 대학 역대 최연소 교수로 강단에 섰다.
탁월한 과학자이면서 덕망까지 갖춘 경우는 흔하지 않은데 저자가 여기 해당한다. 그는 청년 때부터 ‘전체’와 ‘부분’이 조화를 이루는 삶을 살려 애썼다. 어떤 지위에 있더라도 주변인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안팎에서 신망을 얻었다. 독일 청년 운동을 이끄는 지도자로 추대된 게 그러하다. 2차 대전 때 나치에 체포돼 심문받았지만, 정중한 대우를 받았다. 1927년 ‘불확정성 원리’ 논문을 발표한 뒤 명성을 드높였다. 노벨 물리학상(1932년), 독일 물리학계 최대 명예인 막스 플랑크 메달(1933년) 수상.
2차 대전 후 허물어진 조국 과학을 다시 쌓는 데 힘을 보탰다. 막스 플랑크 천체물리학 연구소 소장(1946~1970년), 훔볼트 재단 총재(1953~1976년)를 지냈다. 1976년 75세로 뮌헨 자택에서 지병으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