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치 치하서 핵에너지 연구 전력
- 훗날 핵 무장 반대 ‘괴팅겐 선언’
하이젠베르크가 2차 대전 당시 망명하지 않고 나치 치하에서 핵에너지를 연구한 전력은 지금도 논란을 부른다. 어떤 역할을 했는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당시 그가 나치에 핵무기 제조하려면 비용이나 시간 측면에서 턱없이 부족하다는 보고서를 제출한 사례는 잊지 말아야 할 대목이다. 만일 하이젠베르크를 포함한 연구진이 그때 반대로 판단해 나치가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했다면? 상상하기조차 두려운 가정이다. 저자는 훗날인 1957년 4월 16일 17명 독일 핵물리학자와 함께 자국 핵 무장을 반대하는 ‘괴팅겐 선언’을 신문에 발표해 큰 반향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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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자핵 연구에는 거대한 시설이 필요하다. 미국 시카고에 자리 잡은 페르미입자가속기. |
저자는 독일이 원자 폭탄을 생산할 능력이 없는 현실에 안도하면서 한편으로 연합군이 원폭을 개발하지 않도록 망명한 핵물리학자들을 설득하려 애썼지만, 무위에 그쳤다. 오히려 하이젠베르크는 ‘손발’이 묶였다. ‘맨해튼 프로젝트’를 추진해 원자폭탄을 확보했던 연합군 측이 선수를 쳤다. 저자는 1945년 5월 4일 미군에 체포돼 영국 정보부가 소유한 고드맨체스터 안가인 ‘팜홀’에 동료 물리학자 9명과 함께 이듬해 1월까지 9개월간 잡혔다. 이곳에 1945년 8월 6일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를 원폭으로 때렸다는 소식을 듣는다. 우라늄 분열 현상을 발견한 오토 한도 일행이었다. 그가 상심해 두문불출하는 가운데 핵물리학자가 져야 할 책임과 한 국가가 핵을 소유하는 문제를 놓고 긴 토론이 벌어진다.
현대 들어 핵에너지를 전쟁에 써서는 안 된다는 세계 합의는, 이 고전 속 내용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상식이다. 앞으로 국익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