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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준의 음식 사람 <42> 안동 헛제삿밥

오색 나물에 참기름 쓱쓱 비벼…오죽 맛있었음 ‘헛제사’ 지냈을까

  • 최원준 음식문화칼럼니스트
  •  |   입력 : 2021-10-05 19:31:00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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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남 사림파 유생들 헛제사 후
- 주민 눈 피해 먹은 것에서 유래
- 정성 다하지 않은 제삿밥 說도

- 놋대접에 나물과 탕국 담아내고
- 쇠고기적 등 9가지 전과 적 차려
- 하얀 쌀밥과 안동식혜 함께 내놔
- 안동 향토음식으로 면면히 보존

한때 필자의 본가에서는 제례가 명절 차례를 더해 8번이었다. 한두 달에 한 번씩은 제례를 봉행했었다. 어머니께서는 길게는 일 주일을 제수 장만에 온 신경을 쓰셨고, 이틀 전부터는 각종 전과 산적, 생선과 각색 나물, 그리고 밤을 새워 탕국을 끓여내셨다. 제례에는 멀리 계시는 작은 할아버님 댁에서도 불원천리하고 참석하셨다. 이렇게 먼 곳에서까지 가문의 사람들이 모여 정성을 다해 제례를 봉행했던 것이다.
제례 후 남은 음식을 비벼먹던 ‘꿀맛’을 잊지못해 없는 제사를 만들어서라도 먹으려 했던 게 헛제삿밥이다. 안동에서는 민속촌이 생기며 헛제삿밥이 상업화했다.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이란 말이 있다. ‘조상의 제사를 받들고 집으로 온 손님을 접대하는 일’을 뜻한다. 조선시대 사대부 가문에서는 성리학에 입각한 유교적 실천과정 중 가장 기본이 되는 덕목이었다. 특히 ‘봉제사’는 조상의 기일(忌日)이나 설, 추석 등 우리 고유의 큰 명절에, 평소 조상이 좋아하던 음식이나 진설(陳設·상차림)의 예법에 따른 음식을 몸과 마음을 다해 정성으로 바치는 일이었다. 제례를 통해 조상을 모시고, 가문의 결속과 식솔의 교육과 단합을 꾀하는 가문의 행사였다.

■제삿밥 먹고 싶어 지낸 헛제사

이렇게 조상의 제례를 봉행한 후 남은 음식은 가문의 사람들이나 멀리서 찾아온 귀한 이(賓客·빈객)들과 함께 나누어 먹게 된다. 메(밥)에다 각종 나물을 함께 넣고 비벼, 제주(祭酒)를 음복한 뒤 먹는다. 흔히들 제삿밥이라고 하는 비빔밥 음식이다.

조상에게 예를 올리는 일이다 보니 상 위에 진설되는 음식은 모두 귀하고 좋은 산해진미들이었다. 계절마다 진귀한 식재료들과 온갖 정성이 들어간 음식을 한상에 올리기에, 식솔들은 며칠 전부터 맛난 음식 먹을 생각에 밤잠을 설치며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 제삿날이기도 했다.

가문의 어른들도 마찬가지였다. 여러 가지 색색의 나물에 참기름 넉넉히 두르고 비벼먹는, 절정의 ‘제삿밥’ 생각에 군침부터 도는 것이다. 그 맛이 얼마나 담박하고 그윽했던지 많은 이들이 이렇게 ‘제삿밥을 먹기 위해 제사를 기다렸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제삿밥이 먹고 싶어 신위(神位)의 주인이 없는 ‘헛제사’를 지내고 제삿밥을 먹었던 이들이 있었을까?

이렇게 ‘헛제사’를 지내고 먹는 제삿밥을 ‘헛제삿밥’, 허제반(虛祭飯)이라고 하는데, 영남 사림파들이 세거했던 경북내륙의 안동, 대구와 서부경남의 진주 등지에서 발달한 음식이다. 안동 풍산읍 목현마을에서는 ‘배가 고프면 밤참으로 제삿밥처럼 비빔밥을 비벼 먹었는데, 이를 ‘헛 신위에게 올리는 밥’이라는 뜻으로 ‘헛신위밥’이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그 유래는 조선 성리학을 이끌었던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을 따르던 영남 사림파 유생들이, 주민들 눈을 피해 헛제사를 지내고 먹었던 것이 그 기원이라 전해진다. 그러나 또 다른 이들은 오래전 안동 시내 몇몇 곳에서 제사음식보다 간소한 ‘제삿밥’ 형식의 비빔밥을 팔았는데, ‘봉제사접빈객’의 정성을 다하지 않은 제삿밥이라 하여 이를 ‘헛제삿밥’이라 부르면서 유래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안동민속촌 생기며 상업화

그러면 안동의 이 헛제삿밥이 어떤 이유로 상업화가 되었을까? 대구·경북음식 연구자인 이춘호 영남일보 기자에 의하면 “1974년 안동댐 건설로 수몰지역의 문화재와 가옥들이 현재의 안동 민속박물관 인근의 안동민속촌으로 옮겨진다.”며 “그중 이곳에 입주한 조계행 할머니가 ‘안동 칼국시’와 ‘헛제삿밥’을 함께 메뉴에 넣어 팔았던 것이 지금의 상업화 된 헛제삿밥의 시작”이라고 설명한다.

상업화 된 헛제삿밥을 처음 시작한 식당에 들어선다. 헛제삿밥 한 상을 시킨다. 놋대접에 6가지의 나물(오이 콩나물 배추나물 고사리 무나물 시래기나물)이 정성스레 담겨 나오고, 그 옆으로 탕국과 놋쇠 제기에 9가지 전(煎)과 적(炙)(다시마전 두부전 감자전 동태전 구운 북어적 쇠고기적 상어고기적 간고등어 계란)이 자리한다. 밥상 중간에는 간고등어 구이와 간장종지, 나물 대접 옆으로 하얀 쌀밥과 안동식혜가 어우러진다.

■단출하지만 정갈한 안동 헛제삿밥

헛제삿밥상을 휘휘~ 둘러본다. 놋쇠그릇에 제각각 담겨 있는 음식이 보기보다 단출하지만 나름대로 정갈하다. 각색 나물은 고소한 참기름에 조물조물 무쳐내어 담박하면서도 그윽한 풍미가 올라온다. 고슬고슬한 쌀밥과 나물, 오랜 기간 숙성시킨 국 간장으로 비벼 한 술 먹으니 그야말로 조화로움 그 자체이다. 각각의 나물이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어우러지며 제삿밥이라는 한 가지로 화합하는 ‘궁극의 맛’을 낸다.

탕국 한 술 떠먹어 본다. 탕국은 쇠고기 상어 명태 무 다시마 등을 함께 넣고 끓여냈는데 어탕(魚湯) 육탕(肉湯) 채탕(菜湯) 등 삼탕(三湯)이 모두 함께 섞여 감칠맛을 극대화 시켰다. 오래 끓여내기에 맛이 깊고 구수하다. 국간장 두어 방울 넣으니 그 맛이 배가가 된다.

전과 적도 하나하나 음미한다. 북어는 달큰하면서도 쫀득쫀득하고 돔배기는 결대로 부드럽게 씹힌다. 소고기는 씹을수록 구수한 육향이 오래 남는다. 간고등어는 쪄서 장만해 기분 좋은 고등어 비린내가 코끝을 스친다. 모두 짭조름한 것이 헛제삿밥과 잘 어울린다.

간고등어 구이를 맛본다. 간이 기가 막히게 됐다. 조금 짜면서도 밥 한 술에 고등어 한 점 올려먹으니 그 고소함과 간간함이 흔쾌한 조화를 이룬다. 안동 간고등어는 적당량의 소금으로 고등어에 간을 한, 즉 염장 처리한 안동지역의 고등어 음식을 말한다. 안동에서는 오래 전부터 사대부 가문의 제례를 비롯해 관혼상제에 널리 쓰였던 주요한 음식으로 상에 올랐다. 안동찜닭과 더불어 안동에서 유래되어 현재 전국적인 유명세를 얻은 안동 향토음식이기도 하다.

마지막 입가심, 안동식혜(安東食醯). 안동식혜는 밥에 잘게 썬 무와 고춧가루, 생강즙을 넣고 엿기름물로 3~4시간 발효시킨 안동지역의 토속음료이다. 무를 넣고 발효시켰다고 해서 ‘무 식혜’라고 부르기도 했다. 일반 식혜와 달리 고춧가루 베이스라 칼칼하다. 달지근하면서도 시큼하고 은은한 생강냄새가 개운하다. 잘게 썬 무 조각은 사각사각하다.

안동사람들에게 안동식혜는 고향 어머니의 맛으로 통한다. 늘 고향에서 무시로 먹어왔던 음식이기에 고향을 등진 사람들에게는 향수의 음식이기도 하다. 겨울 감기가 걸렸을 때도 한 그릇 떠먹으면 고춧가루의 칼칼함과 짙은 생강냄새의 알싸함이 묵은 감기를 털어낼 정도로 가정상비약 역할도 했었단다.

유교문화에 입각해 엄격하게 봉행된 사대부 가문의 봉제사. 이 봉제사 뒤에는 소박하면서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헛제삿밥 문화 또한 소소하게 이어져 내려왔다. 지금은 상업화 되어 음식의 의미와 정체성이 다소 퇴색되고 변화되었지만, 그래도 안동의 향토음식으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헛제삿밥. 보존되고 계승되어야 할 일이겠다.

시인·음식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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