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세기 3대 비판서 위대한 업적
- 철학 보편 원리 인정하면서도
- 변증법적 기법으로 새 학풍 세워
- 도덕 법칙에서 핵심은 ‘선의지’
- 옳다는 이유만으로 행동해야
- 일각선 현실과 동떨어졌단 지적
- 인간존중 사상 실천하고자 노력
- “과음·과식도 자신 죽이는 범죄”
- 이상사회 건설 위한 투자로 인식
- 교육·국제사회 향한 넓은 시각도
네덜란드 언어학자 가스통 도렌은 신간 ‘바벨’에서 세계 주요 20여 개 언어 중 독일어가 가장 괴짜 같다고 썼다. 철학 역시 비슷한 계열이다. 독일어+철학, 살짝 골치가 아프다. 여기에 18세기 프로이센 철학가 칸트를 더한 독일어+철학+칸트 조합은 어떠하신지. 바로 칸트 주저인 3대 비판서 ①순수이성비판(1781년) ②실천이성비판(사진·1788년) ③판단력비판(1790년)이다.
| |  |
| 독신이었던 칸트는 사교성이 무난해 친구와 여성들에게 유연하게 대했다고 한다. 손에 종이를 쥔 저자가 자기 집 거실에서 초청한 저명인사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후대는 칸트를 최상 철학자로 평가한다. “그는 고대 그리스에서 전파된 서양 철학에 ‘코페르니쿠스적전환’을 안겼다.중세 신(神) 본위 세계관이 저물고, 인간 이성을 중심으로 한 계몽주의가 떠오른 18세기 초 ‘칸트 철학 전함’이 당당하게 돛을 폈다. 자, 출항이다. 이성과 도덕이 출렁이는 바다로!”
철학 큰 줄기는 논리학과 형이상학. 논리학에선 순수한 이성이 주인이며, 형이상학은 실질을 다룬다. 후자는 사물·존재가 가진 본질·근원을 사유나 직관으로 캐낸다. 이런 책은 대개 읽기가 힘들다. 3대 비판서도 그렇다. 하지만 업적은 크다. 직관·감각 영역에 놓인 이성·도덕·미학을 ‘학문’으로 자리 잡도록 주춧돌을 처음으로 놓았으니까. 이 점에서 그를 능가할 철학자는 없다. 칸트 역시 철학자로서 고유한 세 질문을 던졌다. “이성을 가진 존재자인 나는 뭘 인식하는가, 나는 어떤 일을 해야 할까, 나는 무엇을 바라야 하나.” 그 응답이 세 비판서에 들었다.
①은 서명(書名) 그대로다. 사변(이론) 이성을 가능케 하는 원리, 그 원리가 미치는 범위·한계를 살폈다. 이성은 경험하지 않고 감지하는 사유이기에 ‘순수’하다. 이 책에서 말한다. “감성 없이는 대상이 주어지지 않고, 오성 없이는 대상이 사유되지 않는다. 내용 없는 사유는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③은 칸트 미학이 응축된 책. 미는 도덕적 선을 상징하며, 엄청나게 큰 것을 대하면 숭고미를 느낀다고 썼다. 미는 ‘개념 없이 보편적 만족을 주는 객체의 표상’이다. 칸트는 이 책에서 모든 예술 가운데 시(詩)가 최고라고 추겨 올렸다. 좋은 시야말로 심성을 고무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며 시인에 존경을 드러냈다. 시 다음으로 훌륭한 예술은 음악이랬다.
| |  |
| 실천이성비판 |
②‘실천이성비판’은 우리에게 친숙한 주제를 다룬다. 인간이 지켜야 할 윤리·도덕. 앞서 나온 ‘윤리형이상학 정초(1785년)’에서도 다뤘다. 인간이 왜 고귀한 존재인가를 역설한 역사상 책들 중 수작이다. 칸트는 여기서 인간이 존엄을 유지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저자가 이런 인간 특성에 얼마나 매료되었는지, 이 고전 맺음말 첫 문장에 잘 나온다. 잘 알려진 구절이다.
“이 두 가지를 생각할수록 새롭고 큰 경탄·외경이 제 마음을 가득 채웁니다. 머리 위로 보이는 별이 빛나는 하늘과 그 별처럼 내 안에서 반짝이는 도덕법칙이 그것입니다.” 이 고백은 칸트 명언 중에서도 ‘대장’이다. 이 구절은 저자 고향을 비롯해 세계 여러 나라에 설치된 칸트 기념비에 어김없이 등장한다.
② 목차는 이렇다. 머리말-서론-순수 실천이성 분석학(원칙 대상개념 범형성 동기)-순수 실천이성 변증학(실천이성 이율배반, 영혼 불사성, 신의 현존 등)-순수 실천이성 방법론-맺음말. 170여 쪽이니 분량이 많지는 않다. 이해하기는 쉽잖다. 이해를 돕는 글, 주석이 많이 달리는 이유. 명저 첫 문장은 대개 유명하다. ‘실천이성비판’은 어떨까. “이 비판에는 ‘순수실천이성비판’이 아니라, 단적으로 대개 ‘실천이성비판’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건조한 문장. 기억에 잘 새겨지지 않는다. 칸트는 기존 철학이 갖춘 보편 원리를 받들되 비판하는 새 학풍을 세웠다. 3대 비판서에 모두 ‘~비판’이란 서명을 부여한 데에서도 이런 성향이 잘 드러난다. 기존 철학 정신과 자신 그것이 충돌하면 그 부분을 조정해 논변을 한 단계 나아가게 하는 방식, 변증학 기법으로 철학을 연구했다.
칸트가 ②에서 사유를 펼쳐나가는 과정은 이렇다. ‘인간답다는 건 도덕성을 갖추고 실천한다는 의미다. 그런 실천은 덕을 쟁여야 가능하다. 덕 역시 그저 얻어지지 않고, 인간 내면 경향성(감성적 욕망 따위)을 잠재우는 수행을 통해 얻어진다. 덕을 닦을 때는 도덕법칙을 따른다. 도덕법칙은 최고 원칙을 내세운다.’ “당신 의지가 세운 준칙이 보편 법칙으로서 타당해야 하며, 그에 걸맞게 행동하십시오.” 이 말을 ‘윤리형이상학 정초’에서는 “마치 당신 행위 준칙이 당신 의지를 통해 마땅히 보편적 자연법칙이 돼야 하는 것처럼, 그렇게 행위하십시오”라고 썼다. 정언명령(定言命令), 아무런 조건이 붙지 않은 명령이란 뜻. 행위 자체가 선(善)인 까닭에 무조건 수행해야 한다. 준엄한 도덕 명령이다.
도덕법칙에서 ‘선의지’는 핵심이다. “이 세계와 그 밖을 통틀어 아무런 제한 없이 선하다고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선의지뿐이다.” 선의지는 오로지 옳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행동하는 의지를 말한다. 행위에 따르는 결과를 의식하거나, 내부 감성적 욕망에 따라 행동하는 건 선의지가 아니다. 노숙자를 보고 불쌍하다고 느껴 적선했다면 선의지에 따라 행동한 게 아니다. 칸트 철학 내에선 그렇다. ‘옳다’ ‘선하다’는 판단은 경험이 아닌 순수 이성에서 나온다. 선의지는 이성을 갖춘 존재자(인간)만이 가지며, 실천이성 법칙을 따르는 의지다. 칸트가 수립한 도덕법칙은 너무나 엄격해 현실과 동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저자 역시 이 점을 모르지 않았을 터이다. 왜 이런 절대 이상주의를 내세웠을까. 도덕을 갖춘 인간이 보여주는 무한한 가치를 조금이라도 훼손해선 안 된다는 강력한 의지일 터이다.
선의지와 더불어 인간은 ‘자유 의지’를 가지기에 더욱 존귀하다. 예컨대, 나는 지금 극도로 배가 고픈데 다행히 빵을 한 덩이 가졌다. 그런데 옆에 똑같이 굶주린 어린애를 발견한다. 이럴 때 먹고 싶은 내면 욕망을 누르고, 내 자유 의지에 따라, 어린이에게 빵을 내주는 존재는 인간뿐이라는 얘기다. 이런 행동은 도덕 이념 자체를 존경할 때 나오게 된다. “자유는 인간이 갖는 하나뿐인 천부 권리다. 타인 자유와 보편 법칙이 동시에 성립할 때 모든 인간성에 부여되는 근본 권리다.”
| |  |
| 칸트 탄생 250돌 기념 주화. |
칸트는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 권리를 존경하는 건 ‘의무’라고 못 박았다. 이런 인간 존중 사상은 다음과 같은 언명에 뚜렷하다. “당신이나 다른 사람이 갖춘 인격에서 인간성을 늘 목적으로 대하고, 한낱 수단으로 대하지 않도록, 그렇게 행동하십시오.” ‘인간은 귀중하다’고 늘 말하지만 실천되지는 않는 현실을 칸트는 개선하고 싶었다. 스스로 져야 할 의무도 밝혔다. “자신을 보존하고 능력을 개발·증진하세요.” 여기에 비춰 볼 때 자살은 의무 위반. 자신을 죽이는 범죄다. 과음 과식, 자기 마취(마약 중독), 성적 이상 행위(동성애)도 그렇다.
칸트는 거짓말을 무척 싫어했다. 비양심 표징. 구걸·의기소침·비굴도 인간 의무 위반에 속한다. 타인이 자신을 모욕할 때 그냥 참아선 안 된다. 타인을 사랑해야 하니 남에게 인색해선 안 될 일. 타인이 호의를 베풀면 반드시 감사해야 하는데 이는 특히 ‘신성한 의무’다. 베푼 이를 향한 존경이 포함되기 때문. 동감 역시 인간이 져야 하는 의무다. “의무, 위대하고 숭고한 이름이여! 환심을 살 만한 사랑받을 아무것도 갖지 않은 채, 오히려 복종을 요구한다.”
칸트는 현재에서 도덕을 지키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어린이 교육에 정을 쏟았다. 미래에 이상 사회를 세우는 데 필요한 투자로 봤다. 시야가 넓었다. 자신·타인·내 나라에만 머물지 않고, 국제·세계시민을 바라보았다. 세계가 영원한 평화를 누리길 갈망한 거인 칸트! 그를 따르면 우리 내면 ‘별’은 빛을 낸다.
서평가·세상관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