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 의무인 건강 유지 위해
- 매일 정해진 시각 산책 나서
키가 자그마하고 등이 굽었던 칸트는 걸어 다니는 시계였다. 건강 유지는 인간 의무라는 자신 철학을 지키기 위해 매일 정한 시각에 산책에 나섰다. 고향 주민들은 모자까지 갖춘 정장을 입고 단장을 쥐고 산책에 나서는 그를 보고 시계를 맞췄다고 한다. 이 산책을 루소 ‘에밀’을 읽느라 빼 먹은 적이 있었다 한다. 그때 칸트 산책 시각에 길든 주변 사람들이 착각해 약속 시각을 놓치는 등 작은 소동이 벌어졌었다는 얘기는 잘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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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칸트가 매일 정해진 시각에 산책에 나섰던 고향 거리. |
그는 약한 몸을 잘 다스려 80세까지 살았다. 하지만 이런 육신으로는 가정을 이뤄 최선을 다할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결혼은 하지 않았다. 평생 두 번 결혼할 기회를 맞았다. 두 여성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는 결혼과 여성을 연구하며 미적대는 동안 그녀들은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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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칸트 신체 특징을 잘 보여주는 실루엣. |
1724년 4월 22일 동프로이센 쾨니히스베르크(현재 러시아 칼리닌그라드)에서 아홉 자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부친은 마구(馬具) 제작자, 모친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칸트는 평생 고향을 떠나 본 적이 없었다. 대학 졸업 후 9년간 가정교사로 생계를 이었다. 1765년 왕립도서관 사서로 일하다 1770년(46세) 갈망하던 쾨니히스베르크대 철학 교수로 임용됐다. 1786, 1788년 두 차례 이 대학 총장을 지냈다. 그는 임종 때도 힘겹게 일어나 왕진 온 의사에게 감사를 나타냈다. 이런 행동 역시 ‘실천이성비판’에 제시한 인간 의무 중 하나다. 그는 시종이 건넨 물 탄 포도주를 조금 머금고 마지막 말을 남겼다. “좋다(Es ist gut).” ‘실천쟁이’ 칸트다운 최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