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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익진의 무비세프 <24> 카트린 드뇌브(Catherine Deneuve)

  • 정익진 시인
  •  |   입력 : 2021-09-19 11: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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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연인

뭐랄까, 지금은 프랑스 영화계의 대모인 듯하다. 모르긴 몰라도 프랑스 영화계에서 단지 과거에만 주름잡았던 배우에 그치지 않고 현재에도 주름잡고 있는 프랑스 최고 배우가 아닐까. 리즈 시절에는 단지 아름답기만 했는데 지금은 관록과 맷집이 붙어 카리스마 넘친다.

 그리고 카트린 드뇌브는 2019년 5월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프랑스의 칸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Parasite)’에 최고상인 황금종려상(Palme d’Or)을 봉 감독에게 안겨주고 포옹했다. 이 장면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카트린 드뇌브가 프랑스 영화계에 차지하는 비중을 가늠할 수 있겠다.
   
‘카트린 드뇌브’라고 발음하는 순간, ‘예술적이면서 동시에 뇌쇄적인 어떤 영화’가 함께 떠오르던 시절이 있었다. 카트린 드뇌브는 프랑스+영화+매혹+예술을 한꺼번에 뜻하는 하나의 대명사였다. 그리고 카트린 드뇌브는 금발이다. 금발이어야 한다.
 카트린이 미녀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느낌이 볼 때마다 다르다. 물론 헤어스타일, 의상이나 화장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뭐랄까 분위기가 다르다. 그 다름이 무엇일까. 남녀를 불문하고 사람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외형의 아름다움이 이울게 마련이다. 젊음과 나이 듦, 인간에게 나이가 든다는 것은 비극이다. 이 비극은 피해갈 수 없다. 피해갈 수 있다면 그는 인간이 아닐 것이다. 이 비극을 피해 가기 위해 뱀파이어도 등장한다. 영원한 젊음을 유지하려고 사람 피를 마셔야만 하는 뱀파이어 전설은 인간의 무시무시한 욕망을 대변한다. 무서워진다. 그냥 곱게 늙어가는 게 최선이다. 늙어갈수록 꼰대 짓도 하지 말고 꼬장 부리지 말아야 한다.



 사람 얼굴이란 참으로 변화무상하다. 사람 얼굴이 가지는 이미지에 따라 다양한 상황이나 어떤 장소를 떠올릴 수 있겠다. 젊은 시절 카트린의 얼굴에서는 여러 가지 아름다움 또는 그와 관련한 상황을 떠올릴 수 있는 반면 나이 든 모습에서는 세속적인 인간의 이미지가 떠올라 좀 아쉽기도 하다. 또 하나 카트린의 외모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금빛 머리카락이다. 금발로 태어나도 금발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있다. 에바 그린의 경우 금발을 지니고 태어났지만 그녀의 대부분 영화에서 검은 머리카락으로 염색하고 등장한다. 자료에 따르면 카트린은 원래 금발은 아닌 듯하다. 어쨌든, 금발이 아니었다면 어쩔 뻔했는가.

 마릴린 먼로와 마찬가지로 드뇌브도 금발로 물들면서부터 영예를 누리게 된 여배우라 한다. 드뇌브의 태양빛 머리칼은 아몬드형 두 눈과 매혹적인 대비를 이룬다. ‘쉘부르의 우산’에서 드뇌브가 가진 광채의 실체가 드러나는 장면이 하나 있다. 카트린은 새 원피스를 입고 있고, 애인이 그녀를 향해 손을 뻗는다. 아직 어린 숙녀 드뇌브는 그 손을 저지하며 말한다. “내겐 아직 가시가 많이 돋아나 있어요.” 그녀를 만지는 사람이면 누구든 가시에 찔리게 된다. 이 대목에서 장미 가시에 찔려 죽었다는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생각난다. 카트린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외모에 대해. “나는 애초에 외모가 아니었다면 영화를 시작하지도 않았으리라는 것을 안다. 그 점을 기억하며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도 안다”고 말한 바 있다.
   
영화 ‘쉘부르의 우산’을 좋아하는 사람, 감독 자크 드미를 좋아하는 사람, 배우 카트린 드뇌브를 사랑하는 사람, 프랑스를 예술과 문화의 나라로 기억하는 사람, 이들 모두에게 가장 익숙한 카트린 드뇌브 이미지일 것이다. 그렇다. 바로 ‘쉘부르의 우산’에 열연하는 카트린이다.
 ‘쉘부르의 우산’(Les Parapluies de Cherbourg)은 자크 드미가 감독하고 카트린 드뇌브와 니노 카스텔누오보가 주연한 1964년 프랑스의 뮤지컬 영화다. 음악은 미셸 르그랑이 작곡했다.

 줄거리만 보면 흔한 로맨틱 영화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고전 걸작 영화로 손꼽힌다. 별 특별할 것이 없는 두 남녀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를 뛰어난 영상미와 낭만성이 풍부한 음악과 노래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쉘부르의 우산’은 지금의 기준으로 봐도 과감한 시도를 했다. 90분에 달하는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인물들이 평범한 대사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짧은 대사도 모두 노래로 한다. 이 때문에 영화 전반에 노래와 음악이 계속 이어진다. 뮤지컬 영화 또는 오페라 영화로 분류되기도 한다. 실제로 감독도 “시네 오페라”를 시도했다고 밝혔다. (이런 형식의 뮤지컬을 “성 스루(sung-through) 뮤지컬”이라고 한다.) 레치타티보(Recitativo)란 말도 있다. 서창(敍唱)이라고도 하는데 오페라에서 대사를 말하듯이 노래하는 형식을 말한다. 따라서 ‘쉘부르의 우산’에서 등장인물들이 하는 모든 대사는 오페라처럼 노래로 대신한다.



 이 시도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프랑스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1964년 열린 17회 칸 영화제의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게 된다. 1965년 3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도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랐고 38회 아카데미 영화제에서도 주제가상과 음악상 후보에 호명된다. 수상하지는 못했다. 이때 경쟁한 영화가 불멸의 명작 ‘닥터 지바고’와 ‘사운드 오브 뮤직’이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영상미학 면에서도 대단히 탁월하다. 영상의 시인 자크 드미는 명성답게 쉘부르 곳곳 모습을 강렬한 원색에 가까운 파스텔톤 색채로 아름답게 스크린에 담았다(앙리 마티스의 그림 같은 색감). 영화에 나오는 건물들은 드미 감독이 색을 선택해 외벽을 새로 칠했다. 그는 미술에도 조예가 깊었는데, 사물을 정물화 그리듯 배치한 장면도 많이 나온다. 우산가게 실내장식과 롤랑 카사흐를 초대한 저녁식사 장면은 특히 아름답다. 희미한 옛사랑의 기억처럼 그 아름다운 영상들이 내 뇌리에서 아련히 피어오른다.



 ‘셀부르의 우산’이 카트린의 데뷔작이고 이 영화로 그녀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지만, 내가 카트린 드뇌브를 기억하게 된 영화는 테렌스 영 감독의 ‘비우’(悲雨, Mayerling, 1968)다. 이 영화는 카트린의 대표작이라 할 수도 없고 잘 알려지지 않아 자료도 빈약하지만, 인상 깊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라는 제목으로 소개됐다. 19세기 오스트리아 황태자 루돌프의 슬픈 연애사를 그렸다. 황태자 루돌프(오마 샤리프 분)는 왕위 계승자임에도 사회주의자들을 가까이해 다소 물의를 일으킬 생활을 하다가 젊은 남작의 부인 마리아 베체라(카트린 드뇌브 분)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은밀한 만남이 거듭되자 황제의 전령 타페 백작이 두 사람을 갈라놓으려 했고, 황제(제임스 메이슨 분)도 루돌프를 다른 고장으로 전출시킨다. 루돌프는 사랑을 위해 후세의 왕권까지 포기하려 한다.

 이 영화를 보았다면 제목이 ‘비우’ 아닌 ‘비설(悲雪)’이 더 적당하다고 느낄 것이다. 배경이 눈 덮인 겨울 산이기 때문. 당시 이 영화의 신문광고에 실린 문구는 ‘눈보라를 타고 바람이 전해준 꿈같은 사랑… 이제는 돌아갈 길 없는 애절한 사랑의 이야’였다.
   
카트린 드뇌브의 우아함을 느끼려면 이 영화 ‘비우’는 반드시 들러야 할 영화이다.
 사랑을 비관해 연인과 동반 자살한 루돌프 황태자의 실화(원제 ‘마이얼링Mayerling’은 이들 연인이 자살한 오스트리아 빈 근교의 별장지의 이름이며 이후 황태자 자살사건은 ’마이얼링 사건‘으로 불린다)는 1936년 또 다른 버전으로 이미 만들었지만, 68년에 다시 만든 테렌스 영 감독의 버전은 화려한 유럽 왕궁 세트와 의상에 기가 막힌 눈 풍경, 거기에 드뇌브와 루돌프 황태자의 모친 엘리자베스 황후로 나온 에바 가드너, 이 두 여배우의 아름다움까지 더해 당시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한다.

 실제 엘리자베스 황후는 대단한 인물이었던 모양이다. 얼마나 유명했으면 모차르트와 비견됐다. 모차르트와 함께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이란다. ‘시씨’라는 애칭으로 불렸고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황후이고 당대 최고 미녀로 황실 여인답지 않게 유럽 전역을 돌며 자유롭게 살아갔다. 아들 루돌프 황태자가 개혁주의와 자유주의를 동경한 것은 모두 어머니인 엘리자베스의 영향이라고 한다. 무정부주의자 루케니에게 암살당하기까지, 엘리자베스의 인생과 비운은 독일 뮤지컬계를 대표하는 극작가와 작곡가 미하엘 쿤체와 실베스터 르베이 콤비에 의해 뮤지컬로 무대화된다. 내가 이 영화에서 기억하는 엘리자베스(에바 가드너) 모습은 화려한 의상을 입고 승마를 하고, 말에서 내리는 장면이다.



 생각해보니 이 영화 ‘비우’는 나의 어머니와 함께 보러 갔다고 나의 기억은 고집을 부린다. 어머니가 어린 우리 남매 손을 잡고 영화 나들이를 많이 했기 때문이다. 영화를 좋아하셨고 배우 이름도 많이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율 브린너나 오마 샤리프 같이 눈이 부리부리하고 눈빛이 강렬한 남자배우를 좋아하셨다. 사실 이 영화 ‘비우’를 보긴 보았는데 줄거리가 거의 생각나지 않고 카트린 드뇌브의 아름다운 모습과 고풍스럽고 화려한 의상이 기억에 남아있을 뿐이다. 엘리자베스 황후 역할을 맡은 에바 가드너의 화려한 미모도 뇌리를 스친다.



 카트린 드뇌브(Catherine Deneuve)는 예명이다. 본명은 카트린 파비엔 도를레아크. 1943년 10월 파리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영화 역사상 가장 주목받는 여배우 중 한 사람인 그녀는, 부모님 역시 배우였기에 13세 어린 나이에 ‘황혼기의 소녀들’로 영화계에 발을 들인다.

 20살 나이에 그녀의 첫 작품, 자크 드미 감독의 ‘쉘부르의 우산’에 출연해 청초하고 우아한 모습으로 전 세계 영화 팬의 주목을 받는다. 이후 그녀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혐오’와 루이스 브뉘엘 감독의 ‘세브린느’를 통해 입지를 확고히 한다. 특히 영화 ‘혐오’에서의 뛰어난 연기로 비평가들에게서 찬사를 받았다. 1970년대 중반 샤넬 향수 광고를 통해 프랑스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폭넓은 인기를 얻었다. 1965년 데이비드 베일리와 결혼했지만 곧 이혼했고 영화감독 로저 바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남자배우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 사이에서 아이 4명을 낳았다. 영화 ‘브레이킹 더 웨이브‘를 감명 깊게 본 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에게 같이 작업하고 싶다는 편지를 써 ’어둠속의 댄서‘에 출연하기도 했다.



 영화 ‘비우’를 본 뒤 지금에 이르기까지 카트린 드뇌브가 출연한 영화 꽤나 본 듯하다. 카트린의 노년기에는 주연으로 나온 영화보다 조연급으로 출연한 영화가 더 많다. ‘폴라 X’(1999) ’어둠 속의 댄서‘(2000) ‘나는 집으로 간다’(2001) ‘8명의 여인들’(2002) 등등이다.

 드뇌브가 맡았던 이들 역할 중에는 그녀에게 그다지 큰 영광을 주지 않은 작품도 꽤 있다. 그녀는 이자벨 아자니같은 배우와는 달리 결코 오스카의 완벽함을 겨냥하고 연기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그녀의 연기는 뒷전에서 하는 연기다”라는 말이 카트린의 영화철학을 아주 잘 표현했다고 본다. 그러니까 그녀는 연기의 신이 되기 위해 아자벨 아자니, 이자벨 위페르 같이 죽자 사자 독기를 품고 연기하지 않는다. 주어진 운명대로 자기가 현재 가진 이미지가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상관하지 않고 여과 없이 개인 카트린 드되브를 그대로 보여준다. 자신감 표출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드뇌브는 애교를 떨지 않는다. 특별한 포즈를 취하지도 않는다. 일종의 방 안의 향기와도 같다. 그녀는 그렇게 은은하고 있는 듯 없는 듯 마술적으로 존재한다.
   
영화 ‘인도차이나’의 포스터이다. 이 영화는 1992년 한국에서 개봉했다. 한국 관객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이다.
 또 한 편의 영화 ‘인도차이나’(1992). 영화 자체도 썩 좋았지만 주인공 엘리안 역을 맡은 카트린이 아주 좋은 연기를 선보였다. 이 영화도 보긴 보았는데 줄거리가 기억이 나지 않아 동영상 몇 개를 찾아 기억을 더듬었다. ‘인도차이나’(Indochine)는 레지스 바르니에가 감독과 공동각본을 맡았다. 배경은 1930~50년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이다. 제65회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1992), 1992 골든 글로브상 외국어영화상 수상작이다. 카트린은 세자르상 여우주연상 수상에 성공했고 그녀 경력 최초로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카트린이 연기한 엘리안은 고무나무 농장 소유주이며, 자신의 땅과 자신이 특권 속에서 양육해온 안남 공주 카미유를 사랑한다. 이 인물들은 상징적이고, 아이러니를 유발한다. 카미유(링 담 판 분)는 자신의 민족이 받는 억압에 눈을 뜨고, 자신을 양녀로 기른 어머니에게 등을 돌리기 때문이다. 엘리안이 딸을 잃는 것은 프랑스가 식민지를 잃는 것을 상징하는 셈이다. 카트린이 딸 카미유에 시선을 보낼 때마다 그녀의 크고 슬픈 눈에서 절실한 감정이 쏟아져 나와 참 인상적이었다. 부분적으로 베트남에서도 하롱베이를 현지 촬영한 이 영화는 시각적으로도 효과적이었는데, 궁극적으로는 이야기를 엮어내는 역할을 하기보다는 분위기를 전달하는 데 더 성공적이었다.
   
카트린 드뇌브가 칸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이 만든‘기생충’을 최고상(황금종려상) 수상작으로 발표한 뒤 봉 감독에게 상을 건네자 봉 감독이 환호하고 있다. 그 곁에 대견한 손자 쳐다보는 할머니 같은 모습으로 카트린이 서 있다..
<추신신> 몇 년 전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토론하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배우 윤여정은 칸 영화제 때 프랑스 여배우 카트린 드뇌브의 일화를 소개했다. 카트린을 파티석상에서 만나 반가운 나머지 먼저 말을 건넸다 한다. ‘많은 한국 팬이 당신을 좋아한다’고 칭찬을 발포했는데도 이 대배우께선 고개만 까딱하고 밉살스럽게 시선을 돌리더라는 것. 이런 프랑스 사람들의 무례함, 타인에 대한 무관심을 ‘프렌치 시크’라고 멋스럽게 부르는 이들도 있지만 우리의 정서에는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크 드미 감독을 비롯해 프랑수아 트뤼포, 루이스 브뉘엘(초현실적인 이미지 연출로 유명), 로만 폴란스키 등 거장 감독의 히로인이었던 카트린 드뇌브는 그 자체로 프랑스 영화의 대명사다. 감독이 신인이든 외국인이든 가리지 않고 출연한다. 저예산 독립영화 출연도 마다하지 않는다. 노년기에 접어들어서도 왕성하게 활동한다. 이런 점들은 배우 윤여정과 닳은 것 아닐까.정익진 시인 ij071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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