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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국과 함께하는 명작 고전 산책 <26>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마르셀 프루스트 (1871~1922)

‘벨 에포크’를 살아간 문학청년의 자전소설… 인간 근원을 묻다

벨 에포크- 19세기 말~20세기 초 佛 좋은시대

  • 서부국 서평가
  •  |   입력 : 2021-09-09 19:25:08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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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유한 집서 자라 박식했던 저자
- 13년간 내면 심리따라 인간 탐구
- 실제 인물로 가상·현실 넘나들어
- 저자 주관으로 전개된 서술 매력

- 프랑스 살롱 귀족문화 배경으로
- 부르주아 속물 근성 꼬집어 내
- 사회 고발적 성향 짙은 글이지만
- “우리 삶에서 하찮은 건 없다”며
- 꿈 이루는 ‘해피엔딩’으로 끝나

언어가 달라진 노아 후손들은 바벨탑을 짓지 못했지만, 프루스트는 홀로 한 가지 언어로 거대한 탑을 쌓았다. 50여 년 삶에서 수만 개 벽돌을 잘라내려고 스스로 13년간 글 감옥에 들었다. 다들 눈꺼풀을 내렸던 밤, 그는 빛과 소리를 막은 파리 집필실에서 펜을 들었다. 그때 파리 야밤은 전보다 더 어두웠다고 한다. 프루스트 방에서 불빛이 한 줄기도 빠져나가지 못했으니까. 탑이 완성된 후, 세상은 그것에서 나오는 빛으로 환해졌다. 언어 문화재인 대하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이렇게 완공됐다.
   
프랑스 파리의 일리에 마을에 있는 프루스트 기념관 전경. 벽면 왼쪽에 저자 반신 초상이 보인다. 오른쪽 배경은 1편 ‘스완네 집 쪽으로’에 나오는 종탑이 보이는 거리 풍경이다.
저자는 마지막 숨을 쉬기 직전까지 소설을 다듬었다. 자기 세포 한 톨보다 단어 한 개가 더 필요하다는 듯이. 글 쓰다 죽는 게 소원이라면 프루스트를 보라.

■ 마들렌, 홍차 그리고 시간

   
프루스트 시대 한껏 차려 입은 남녀 성인들. 윗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저자.
프루스트는 ‘잃어버린…’을 통해 자기 삶을 고백한다. 프랑스 황금기라는 19세기 벨 에포크가 배경. 파리에 자리 잡은 부유한 부르주아 가정에서 태어난 병약한 소년이 문인으로 탄생하는 여정을 그렸다. 20세기 신심리주의 소설로 다리를 놓았다. 의식 흐름, 내면 심리를 좇아 인간 존재와 근원을 캐는 소설이다. 조이스·울프가 이 계열 작가. 읽어내기 힘들고 분량이 많은 게 공통점이다. ‘잃어버린…’은 7편인데 국역하면 14권까지 나온다. 프루스트만이 구사하는 독특한 문체와 서술이 좍 깔렸다. 작가 주관으로 전개되는 서술, 복잡하고 길디긴 신심리주의 문체가 처음 읽을 땐 낯설다.

프루스트는 소설을 통해 이 세상 모든 얘기를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오만 걸 끌어와 자세히 자세히 쓴 이유. 야심만만하고 박식한 작가였다. 이 고전엔 숱한 실제 사물·인물이 나온다. 저자는 여기에 허구를 보태 가공한다. 자전 소설이면서도 현실·가상 세계를 넘나들고, 백과사전 같은 기록력을 지닌 소설. 이런 소설은 예전엔 없었다.

이 대단한 성취는 그가 평생 ‘백수’였던 이력에서 온다. 집안이 부유했기에 그는 어려서부터 유럽을 여행하고 청년이 돼선 문화·사교계를 쏘다녔다. 그 결과 이런 문장이 나온다. “나는 라 베르마가 이런 시 구절을 낭송하는 걸 들으면 마치 곤돌라를 타고 프라리 성당의 티치아노 그림 밑이나, 혹은 산조르조델리스키아보니에 있는 카르파초 그림 밑에 서 있을 때와 똑같은 황홀감을 맛볼 수 있을 것 같았다.” (2편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주해가 필요한 문장이다. 본문보다 주해가 더 많은 경우도 드물지 않다. 프루스트식 글쓰기·창작론·문예론·인생관은 마력을 지녔다.

‘벨 에포크’는 ‘좋은 시대’란 뜻으로 19세기 말~20세기 초다. 이때 프랑스는 잘나갔다. 에펠탑으로 기억되는 제1회 만국박람회, 인상주의 예술, 아르누보 물결, 드레퓌스 사건…. 남녀 귀족이 정장으로 한껏 멋을 내고 호화로운 살롱에 모여 즐기는 게 시대 풍경이었다. 프루스트는 이런 세태 속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긴 얘기이다 보니 각 편에 달린 부제목만 연결해봐도 줄거리가 윤곽을 드러낸다. 1·3인칭 시점 소설이다. 화자는 거의 ‘나’로 지칭되며 주인공 이름이자 저자 세례명인 ‘마르셀’은 전체에 걸쳐 두 번 나온다.

각 편 제목은 시어 같다. 1편 ‘스완네 집 쪽으로’. 여기서 ‘스완’은 이름이다. 그는 화자 고향이자 파리 근교인 콩브레에 살았던 지인인데, 동네 어른이다. 이 책 속 500여 명 등장인물 중 비중이 크다. 그의 외동딸 질베르트는 화자에게 첫사랑이다. 스완은 화류계 출신인 오데트를 부인으로 맞는다. 이런 게 사랑인가 싶을 정도로 스완은 극심한 고통을 받으며 오데트를 사귄다. 이를 보여주는 심리 묘사가 압권. 프랑스식 남녀 사랑인가. 불가사의한 애증이다. 심리를 밑바닥까지 들여다보는 내성소설(內省小說), 그 실체를 프루스트가 보여준다. 1편 기둥은 화자 유년 삶. 어머니를 지독히도 사랑하는 화자, 관련 대목이 잊히지 않을 터이다. 외할머니가 죽어가는 과정을 묘사한 문장을 읽다 보면 고통스럽기도 하다. 혈육 죽음을 검시관처럼 직시하는지. 성인이 된 ‘나’가 티 쿠키인 마들렌을 홍차에 적셔 먹다가 그 냄새와 맛으로, 의지와는 무관하게 과거 기억(시간)을 ‘살려내게’ 된다. 프루스트 소설을 언급할 때 감초처럼 등장하는 부분이다.

■ 이 소설이 해피엔딩인 이유

   
‘스완네 집 쪽으로’ 육필 교정본. 저자는 “교정 보면서 새 소설을 썼다”고 할 정도로 원고를 치열하게 고쳤다.
무의식에 잠겨 잊힌 과거는 잃어버린 시간이다. 그 시간 속엔 내 모든 삶이 들었다. 과거를 기억해내 그때 삶을 기록하는 작업이야말로 문학이 해야 할 일이며 글쓰기로 완성된다. ‘나’는 문학이 가진 이 같은 소명을 깨닫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마지막 7편 ‘되찾은 시간’에서 ‘나’는 시간이 가진 불가역성을 깨고, 과거를 다시 찾아 영원히 소유하게 됐다. 1~6편은 이런 결말을 얻기 위해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전진하는 긴 여정.

2편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는 ‘스완 부인의 주변’ ‘고장의 이름-고장’이라는 두 소주제로 엮었다. ‘소녀들’이란 화자에게 두 사랑, 즉 질베르트와 알베르틴을 뜻한다. ‘그늘’이란 단어에서 느껴지듯 이 사랑은 영글지 않는다. 5편 ‘갇힌 여인’은 알베르틴 얘기다. 6편 ‘사라진 알베르틴’에서 화자는 집 안에 그녀를 감금할 정도로 광기 가득한 사랑을 이어간다. 사라졌다는 건 알베르틴이 갑자기 행방불명이 되기도 하고 결국 사고로 죽는 비운을 암시한다.

3편 제목은 ‘게르망트 쪽’. 게르망트는 프랑스 귀족 가문 이름이다. 화자 집을 나서면 서로 반대방향으로 난 두 산책로를 만난다. 각각 스완 씨 저택과 게르망트성(城)으로 가는 길이다. 첫사랑이 보고 싶은 화자는 ‘스완내 집 쪽으로’ 가는 산책로를 서성댄다. 그 사랑을 잃자 화자 시선은 ‘게르망트 쪽으로’ 향한다. ‘스완’이 당시 신흥 사회세력으로 떠오른 부르주아를 상징한다면 ‘게르망트’는 세기말 귀족 계층을 대변한다. ‘게르망트 쪽’을 쳐다보는 부르주아 시선엔 귀족 신분을 탐내고 모방하려는 욕망이 일렁인다. 프루스트는 그런 부르주아 속물근성(스노비즘)을 꼬집는다. 귀족 문화 대명사인 ‘살롱’에서 벌어지는 위선 협잡 잔혹성을 까발린다. 그 끝에는 씁쓸한 환멸과 허무감. 이 고전은 사회를 고발하는 성향이 강하다는 평가가 이 지점에서 나온다.

시간·사랑·죽음 같은 굵직한 단골 소설 소재뿐 아니라 유대인 차별(드레퓌스 사건)이나 동성애 같은 당시로선 민감한 사회문제도 다뤘다. 프루스트는 어머니에게서 유대인 피를 이어받았고, 동성애자였다. 남녀 동성애를 다룬 4편 ‘소돔과 고모라’, 이 제목엔 어머니를 극진히 사랑한 화자가 느끼는 죄의식이 배었다. 여기서 질문해 보자. 이 소설을 부유한 집안 자제로 태어나, 평생 직업을 갖지 않고 귀족 살롱과 사창가를 들락거린 동성애자가 썼다는 걸 알면 독자는 실망해야 할까? 저자와 소설은 같지 않고 그럴 필요도 없다. 프루스트는 정직하다. 어두운 면을 숨기지 않고 소설 속에서 자신을 발가벗겨 인간을 탐구했다.

작가 문체를 말하자면, 양파를 닮았다고 할까. 여러 사람과 대화하는 자리에서 탐탁잖은 내용이 나와 듣고 싶지 않은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청각이 일시적으로 불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 청각 기관을 쉬게 함으로써, 진정한 기능 수축을 감내하게 할 정도였다…’. 겹겹 둘러싼 단문, 의미를 거듭 품는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주어를 놓치기도 한다. 맥락을 이해하며 천천히 읽다 보면 보이지 않는 의식 물결이 느껴진다.

   
이 고전은 화자가 꿈을 이루는, 해피엔딩 소설이다. “우리 삶에서 하찮은 건 없다.” 프루스트는 이 말을 전하며 힘겨운 세상살이에 지친 이들을 달래준다.

서평가·세상관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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