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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주 탄생 100주년 그를 회고한다 <1> 남재희 언론인·전 노동부 장관

다양한 권력층 친분… 잦은 술자리… 모든 게 글소재 찾는 작업이었다

  • 남재희 전 장관
  •  |   입력 : 2021-08-31 20:09:26
  •  |   본지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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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관계 등 여러분야 인사와 교제
- 음주 취재 뒤 새벽녘까지 글쓰기
- 김현옥 서울시장과 각별한 사이
- 당대 최고 시인 김수영과도 친분

- 고향 하동서 국회의원 출마 기록
- 프랑스어 능통한 당대 최고 지성

- 군부시절 국제신보 주필로 옥고
- 자유인으로 많은 여인과 염문도

1964년 후반과 1965년에 걸쳐 조선일보 문화부장으로 있을 때다. 내가 친하게 지내던 신동문 시인이 이병주 씨의 ‘소설 알렉산드리아’가 실린 월간 ‘세대’를 갖고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이병주 씨는 부산에서 활약하고 있었기에 서울서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 소설은 매우 훌륭한 것이니 잘 소개해달라고 부탁한다. 읽어보니 과연 그 중편소설은 무대가 국제적이고 스페인 내전 때 프랑코 군벌에 맞서 싸운 공화정파의 국제적 연대투쟁 감각도 있어 마음에 들었다.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도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그래서 공주사대의 문화평론가 유종호 교수(후에 예술원 원장)에게 평을 써달라고 부탁하였다. 유 교수의 소설평은 문화면 3분의 2쯤을 차지했다. 그렇게 해서 이병주 씨는 중앙문단에 화려하게 등장한다.
1961년 1월 1일 자 국제신보(현재 국제신문) 1면에 실린 이병주 주필 겸 편집국장의 사설. 이 글 등을 빌미로 5·16 쿠데타 세력은 이병주 주필을 구속한다. 그는 10년 형을 받고 2년 7개월 복역했다.
그 이후 ‘세대’에 연재된 ‘지리산’ 또한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관부연락선’과 ‘쥘부채’‘ 행복어사전’ 등도 성공적이었다. 그 후 나림(那林, 그의 아호)의 소설 양산은 계속된다. ‘실록 남로당’ ‘에로스 문화사’ 등 이색적인 작품도 출간했는데 그가 너무 다작을 했기에 혹시라도 대필공방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 경험·통찰·넉살·배포·독서

이병주 씨의 사회활동은 오후 늦게 시작한다. 우선 광화문께에 있는 화식집에 나타나 요리사가 있는, 일본어로 ‘다이’ 라고 말하는 데에서 초밥을 든다. 그리고 마음에 맞는 친지들과 함께 그가 타고 다니는 기사를 둔 외제차 볼보로 살롱 등 고급술집 행차를 한다. 그의 술자리는 소설을 쓰기 위한 취재의 현장일 때가 많다. 예를 들어 김규식 박사를 따라 남북협상에 다녀온 송남헌 씨나 6·25 전란 중 북한의 거물 이승엽을 만나기 위해 미군 도움을 받아 전선을 넘어 북한을 다녀온 박진목 씨와의 술자리는 여러 번 장시간 계속된다. 집에 돌아가 그 내용을 앞으로의 작품을 위해 메모해 둔다는 것이다. 그는 몽블랑이라는 아주 굵은 외제 만년필을 사용한다. 새벽녘까지 글을 쓴 그는 늦잠을 잔 후 오후 늦게 친구를 만나기 위해 광화문께로 나타나는 것이다.

뛰어난 시인 김수영 씨와의 친분도 빼놓을 수 없다. 김수영 시인은 마포 버스 종점 근처에서 양계장을 경영하여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한 번은 이병주 씨가 그의 볼보차로 집까지 바래다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 씨의 그 화려한 생활에 내심 반발을 느꼈던지 김 시인은 버스를 타고 가려다가 그만 참변(1968년 교통사고로 타계)을 당한 것이다.

동아일보 전진우 논설위원이 칼럼에서 이병주 씨가 빨치산을 했다고 의외의 사실을 밝혔다. 내가 나림에게 물어보니 6·25 때 인민군이 그가 있던 진주까지 전격적으로 점령했는데 그 가운데 아는 사람이 간부로 있어 자신을 문화공작대로 발탁했다는 것이다. 하동은 지리산 가까이 있어 왜정 때부터 병역기피 등 산사람이 많았다는 것이다. 나림은 그때 문화공작대원으로서 ‘살로메’를 공연하였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하동 출신 한 국회의원은 내게 이병주 씨가 고향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했다고도 말해준다. 아마 혁신계와 같은 정책을 내걸고 출마한 모양인데 경쟁자가 이병주는 빨갱이란 삐라를 만들어 꽹과리를 치며 살포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내가 1968년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1년 연수를 마치고 돌아올 때 욕심껏 300권 가까운 책을 사 왔는데 나림이 책 구경을 하자기에 보여주고 한 권을 선물로 주겠다고 하니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영문 원본을 고른다. 그 희곡은 몇 달 후 노벨문학상 수상작으로 발표되었으니 놀라운 일이었다.
이병주 선생이 경남 하동군 민의원 선거에 출마해 배포한 유인물. ‘정치신념’ 항목에서 ‘제2공화국’의 지향을 밝히고, 경력에 ‘국제신보사 주필 겸 편집국장, 교원노조 및 각종 노조 고문(顧問)’ 등을 명기해 1960년 7월 29일 선거로 보인다.
■ 화려했던 작가 생활

이병주 씨의 관계고위층이나 정계인사와의 교제 범위도 대단하다. 특히 같은 진주권 출신인 김현옥 서울시장과의 친분은 각별했다. 그는 김 시장에게서 많은 사업 이권을 따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대단한 부를 이뤄 용산 그의 아파트에 초청돼 가보니 100평(330㎡)이나 됨직한 아파트에 책이 가득 꽂혀있고 가재도구도 고가품이었다. 그가 자주 쓴 말이 있다. “외국에 나가 물건을 사려거든 여러 개를 많이 사지 말고 한 개가 되더라도 꼭 가보가 될 만한 것을 사라”는 것이다.

이병주문학관의 몽블랑 만년필. 전민철 기자
그는 몇몇의 권력자들과도 각별했다. 당대 실세인 이 부장과 어떻게 사귀었는지는 밝히지 않는다. 한겨레신문 창간 부사장이 되는 임재경 씨가 파리 유학 때 나림을 만나니 그는 어느 권력자가 쓰라고 준 달러 뭉치를 내보이며 자랑하더라 했다. 내가 국회의원일 때 유네스코 파리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열흘쯤 파리에 머물 때 팡테옹 뒷편 프랑스 음식점에 점심을 먹으러 자주 갔었다. 그러다가 한 번은 근처 중국집에 들렀더니 나림이 어느 여인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는 몹시 당황했던 모양이다. 내가 먼저 자리를 떠 나오려 하니 쫓아 나오며 “서울 가서는 절대 나를 여기서 만났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내가 그와 함께 도쿄의 제국호텔에 머문 일을 빼놓을 수 없다. 미국 여행에서 귀국길에 도쿄의 친지에게 값싼 호텔을 예약해달라고 부탁하려 하니 그가 나림이 제국호텔에 묵고 있는데 내가 온다고 하니 방을 함께 쓰자고 말하더라고 한다. 가봤더니 호텔방이 댄스파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넓다. 아침에 호텔 식당에서 식사하고 신문판매대에 들르니 그는 아사히신문,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을 고르고 프랑스의 르몽드까지 집어 든다. 하동 부잣집 아들인 그는 일제 때 일본에 유학해 두 개 대학에서 프랑스 문학을 전공하다가 학병에 끌려가 중국 전선에 파견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니 프랑스어에도 능통하여 나의 기를 꺾은 것이다. 함께 책방에 갔더니 당시 인기 있던 미셀 푸코란 프랑스 철학자의 번역본과 그와 관련된 책들을 사 또다시 나를 놀라게 했다. 귀국을 준비할 때 보니 한 일본 여인이 와서 무릎을 꿇고 모든 짐을 다 싸준다. 나림은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 신문을 뒤적일 뿐 전혀 도와주지를 않는다.

나림은 말년에 모 권력자에게서 받은 듯한 많은 돈을 갖고 속기사와 함께 미국으로 가 몇 년 소문 없이 살다가 폐암 환자가 되어 돌아온다. 미국 담배 ‘윈스턴’에 맛을 들여 폐암이 됐다는 것인데 서울에 돌아온 후 며칠 못 살고 타계한다. 서울대병원 영안실에서 있은 영결식에 갔더니 추도사를 할 문인이 한 사람도 없었다. 그는 문단 교류를 거의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즉석에서 원고 없이 추도사를 했다.

■ 당대 최고 수준의 지성인

그는 생전에 등산을 몹시 좋아했다. 매번 동행은 달랐다. 그가 죽은 후 북한산 등산로 입구에 있는 큰 바위덩이에 그의 북한산 예찬어록을 각자하도록 허락을 받았었다. 그 제막식에 갔더니 학병 동지인 방송극작가 한운사, 송남헌, 박진목 씨와 한때 영화배우를 했던 하동 출신 최지희 씨가 있었다. 나림은 젊었을 때 프랑스의 작가 발자크를 존경하고 그를 뒤따르려 했다 한다. 소설의 양과 질에서 그는 얼마간 발자크를 뒤따를 수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애인이 많았던 발자크였다.

나림이 5·16 군사쿠데타 후 2년 반쯤 옥고를 치른 것은 아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그 가슴 아픈 일을 구태여 물어보지 않았다. 4·19 학생혁명 후 그는 부산의 국제신보(국제신문 전신) 편집국장과 주필로서 중립화통일론에 동조하고 교원노조 결성을 적극 옹호한 모양이다. 그것이 군사쿠데타 정권의 처벌 이유가 됐다는 것이다. 당시 부산일보 주필은 황용주 씨였으며 그가 박정희 장군과 대구사범 동기여서 박 장군이 군수기지사령관으로 있을 때 이병주 씨와 셋이서 어지간히 자주 술을 마신 모양이다. 황용주 씨는 군사정권에 의해 문화방송 서울본사 사장에 임명됐는데 이병주 씨는 수감된 것이다. 박 대통령이 암살되고 난 후 나림은 ‘그를 버린 여인’이란 소설을 써 박 대통령을 얼마간 폄하하기도 했다.

이병주 씨는 당대 최고급 지성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가 대학에서 프랑스어과를 택한 것이 중요했다고 본다. 당시 프랑스는 영미를 앞서는 수준의 지성들이 많았던 것 같다. 물론 프랑스에서 출발해 영미 사상도 흡수했지만 그러한 경위로 나림은 한국 사회 최고급 지성인이 된 것이다. 여러 언론에 기고한 그의 글이 무수히 많은데 그 수준은 매우 높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 그는 소설보다 에세이에서 뛰어났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감성의 세계에서 그는 완전히 자유분방했다. 아니 완전 무절제했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최후까지 많은 여인과의 애정행각을 벌였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단순히 사회적 고정관념에 따라 비난만 할 수 있겠는가. 비난만 하기에는 얼마간 망설여지기도 한다. 나림은 기존 도덕관을 떠난 완전한 자유인으로 살다 간 것이다.

◇남재희 전 장관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조선일보 문화부장·정치부장·논설위원, 서울신문 편집국장·주필, 국회의원 4선, 노동부장관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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