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민공원서 나눈 상상을 동화로
- 첫 작품과 달리 부부가 공동 집필
- 어린 독자에 가치·교훈 강조 않아
- 유 작가 “내 마음 속 어린 아이가
- 친구들에게 하려는 이야기 쓸 뿐”
언젠가 서점 어린이책 코너에서 본 일이다. 엄마와 초등학생 아들이 책 한 권을 놓고 대결(?) 중이었다. 엄마는 “또 공룡책이야? 집에 공룡책이 벌써 몇 권인지 알아? 왜 이 책을 또 사야 해?”라며 아들을 말렸다. 아들은 억울하고 답답하다는 듯이 한숨도 내쉬고, 가슴까지 콩콩 치면서 답했다. “이건 집에 있는 공룡이랑 다른 공룡이란 말이야!” 옆에 있던 사람들이 킥킥 웃었다. 근처에 있던 남자아이 두엇은 “다르고 말고요~~”하면서 공룡 이름 몇 개를 줄줄 읊어대기도 했다. 결과는 아들의 승리였다. 어른들의 눈에는 다 같아 보이는데, 아이는 공룡이 얼마나 궁금하고 재미있으면 새 공룡 책을 만날 때마다 사고 싶어 할까. 여러 해가 지났지만 ‘공룡’이라는 단어를 볼 때 마다 그 일이 떠오른다. 동화책 ‘공룡별에 놀러 와’를 보았을 때도 그 일이 퍼뜩 떠올랐다. 책을 쓴 백은석, 유혜린 부부작가를 부산시민공원에서 만났다. “왜 공룡인가?” 라는 필자의 질문에 두 사람은 입을 모아 “공룡이 살아있다면 어땠을까 궁금하지 않아요? 그 생각이 이 동화의 시작이었죠!”라고 말했다. 언젠가 서점에서 가슴을 콩콩 치며 공룡 사랑을 맘껏 표현하던 그 꼬마가 불쑥 나타난 기분이었다.
 |
| 최근 부산시민공원에서 만난 부부작가 유혜린(왼쪽), 백은석. 이들은 평소 공원을 함께 산책하며 작품을 구상한다고 한다. |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쓰고
부산시민공원 남문 입구에서 백은석, 유혜린 부부작가와 만나 북문 근처의 북카페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비가 세차게 내리다가, 잦아들다가, 가늘게 내리기를 반복했다. 폭염 뒤에 내리는 비라서 반가운 마음도 있었다. 공원을 찾은 시민들도 그런 마음이었을까. 비가 내려 생기가 넘치는 공원을 산책하거나, 중간 중간 세워진 정자에서 쉬고 있는 모습이 보기만 해도 좋았다. 두 작가는 우산 하나를 사이좋게 나눠 쓰고 걸어갔다.
 |
| 공룡별에 놀러 와- 백은석·유혜린/ 창비 |
백은석 작가는 부산, 유혜린 작가는 대전에서 나고 자랐다. 두 사람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백작가가 대학을 좀 늦게 들어갔지만, 두 사람은 08학번 동기생이다. 둘 다 여러 문학 장르 중에서도 동화에 자연스레 이끌렸다. 쓰고 싶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예 함께 글을 썼다. ‘백은석·유혜린 동화’ 이름으로 두 권의 책을 썼다. 첫 책은 ‘구름송이 토끼야, 놀자!’, 두 번째 책이 ‘공룡별에 놀러 와’이다. “두 권 모두 부산시민공원에서 태어났어요. 산책을 하면서 나눈 소소한 대화가 점차 이야기가 되었지요.” 그러고 보니 우산 속의 두 사람은 걸으면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했었다!
두 명의 작가가 한 권의 책을 쓴다면, 원고를 나누어 쓰지 않을까 싶어 창작 과정을 자세히 물어보았다, 첫 책은 연작동화라 나누어 썼다. 유혜린 작가는 어릴 때부터 토끼를 좋아했는데, 방안 가득 토끼인형이 있었단다. 인형마다 예쁜 이름도 지어주었다. 그 시절에 가지고 놀던 토끼 인형 한 마리를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토끼에 관한 한 모르는 것이 없는 ‘토끼 권위자’ 아내, 함께 이야기하던 남편은 마침내 토끼 동화책을 완성했다. 어린 날 토끼인형에 붙였던 이름들이 동화 속 주인공으로 되살아났다.
‘공룡별에 놀러 와’는 원고 분배를 하지 않고 두 사람이 함께 썼다. 작품 이야기를 하는 동안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깨알처럼 쏟아지고, 한 사람이 “이 부분은 좀 이상해”라고 갸우뚱 하면, 다른 사람이 “그럼 뺄까”라고 맞장구치고, 다시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함께 쓰고, 또 이야기 하고…. 쓰는 과정이 동화보다 재미있겠다. 누군가 주도적 집필을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 짐작은 필자의 착각이었다.
다음 작품으로 한 사건을 두 명의 화자가 진술하는 내용을 구상 중인데, 이 작품은 각각의 화자 입장을 나누어 쓸 계획이다. 함께 쓰는 방식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으니 어떤 작품이 나올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공룡이 살아 있다면
“어른 안에는 아이가 있어요. 제 안에 있는 아이, 어린 시절의 아이가 아직 살아있어요. 공룡이 살아있다면 어떨까 하는 질문은 그 아이가 하는 거죠.” 백작가의 말이다. 한때 지구의 주인이었던 공룡이 멸종된 것이 아니라, 우주 저 편 어딘가에서 여전히 삶을 이어가고 있으리라는 상상이 그 궁금증에서 시작됐다. 두 사람은 밤하늘 별을 보면서 지구에 홀로 남은 어린 공룡 봉봉이 어린 외계인 삐요의 도움으로 포르포르별에 살고 있는 공룡들을 찾아가는 장면을 봤을지도 모른다.
봉봉은 포르포르별에 살기 위해 그 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찾아야 한다. 봉봉과 삐요가 함께 찾아낸 것은 ‘용기’ ‘포기하지 않는 마음’ ‘추억’, 그리고 그것을 봉봉에게 알려준 ‘친구들’이다. 혹시 그 네 가지가 독자들에게 말하고 싶은 가치인지 물어보았다. 유작가는 “동화를 쓰면서 어린이 독자들에게 어떤 가치나 의미, 교훈을 주려고 하지 않아요. 그저 토끼인형을 가지고 놀던 어린 시절의 제가 마음속에 살아있고, 그 아이가 친구들에게 하려는 이야기를 쓰려고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야기를 만들어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이다.
유작가의 대답을 들으면서 어린 시절 소꿉놀이를 떠올렸다. 각본은 없지만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를 만들었고, ‘밥 먹어라’는 엄마의 말이 들려오기 전까지 마음껏 놀았던 그 시절. 그때 우리 모두는 이야기 천재였을 것이다. 백은석 유혜린 작가는 그 시절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유작가가 들려준 이야기 한 대목은 쉽게 잊히지 않을 것 같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른들은 어린이가 책을 읽은 후 뭔가 의미 있는 교훈을 얻기를 바라죠. 아이들에겐 큰 부담일거에요. 제가 지금도 재미있게 기억하는 독후감은 이런 거에요. ‘구름송이 토끼야, 놀자!’를 읽은 아이가 ‘토끼를 보면 당근을 많이 먹으라는 엄마의 잔소리가 생각난다’고 쓴 글이랍니다.”
그렇다. 동화에서 가치와 교훈을 굳이 찾아내야 한다면 어린이들에겐 책읽기가 지겨운 공부나 다름없다. 밤하늘 올려다보며 저 멀리 포르포르별에 살고 있는 공룡 봉봉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지 궁금해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