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테뉴는 조기 교육 수혜자다. 남프랑스 페리고르 몽테뉴성(城) 2대 성주인 부친은 이탈리아 문예부흥이란 선진 문물 세례를 받아 선견지명을 얻었다. 그는 아들이 2세부터 라틴어를 익히게 해 문리를 터주고, 엘리트로 가는 징검다리를 놓았다. 젖먹이 몽테뉴를 이웃 마을 농가에 맡겼다. 장차 성주가 될 아들에게 일찌감치 영지 농민 생활을 익히게 하려고.
부친은 가장으로서 모범을 보였다. 늘 날렵한 신체를 유지하는 부친을 통해 아들은 인생을 즐기는 첫째 조건이 건강임을 깨달았다. 몽테뉴는 40대에 당시 불치병인 신장 결석증을 얻어 59세로 사망할 때까지 고생했지만 평소 승마 같은 신체 활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수상록’을 통해 부친에 대한 존경심을 누차 드러냈다.
그는 1533년 2월 28일 3남으로 태어났다. 부친은 저자가 21세였던 1554년 보르도 시장직에 올랐다. 이 자리에 몽테뉴가 천거됐다(47세인 1580년). 3년 뒤 다시 시장직을 맡았다. 청년기 요절한 에티엔느 드 라 보에티와 ‘지상 최고’인 우정을 나눴다. 1554~1570년 페리고르 지방재판소, 보르도 고등재판소에서 고문관과 평정관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