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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준의 음식 사람 <39> 울산 봉계한우와 깍두기육회

깍둑 썬 육회, 왕소금만 톡톡 불고기 … 여긴 양념이 필요없소

  • 최원준 시인·음식문화칼럼니스트
  •  |   입력 : 2021-08-10 20:39:57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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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주군 언양 석쇠불고기와 쌍벽
- 국내 유일 한우불고기 특구 자랑
- 인근 농가서 키운 3~4년생 암소
- 도축 이틀 이내 생고기만 제공해

- 과일 등 없는 생고기 자체인 육회
- 고추장·참기름 양념장은 거들 뿐
- 특수 부위 중심 내놓는 생불고기
- 참숯에 살짝 익히면 육즙 쏟아져

어림잡아 30여 년 전일 게다. 중앙지 울산 주재기자인 지인과 시인 몇몇이 모여 울산 봉계의 한우를 먹으러 갔다. 봉계 특유의 ‘당일 도축한 소고기’를 숙성시켜 소금만 뿌려 구워먹었는데, 가히 ‘입에서 살살 녹는다’는 표현이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

그때 함께 상에 올라온 것이 있었는데, 검붉은 소고기를 무심하게 ‘깍둑깍둑’ 썰어서 접시에 내온 ‘생고기’였다. 당시 이런 모습의 소고기 차림을 보지 못했기에 신기해하며 주인장에게 그 정체를 물었다. 깍두기육회란다. 잘 숙성된 고추장과 고소한 참기름 등이 섞인 양념장에 생고기 한 점 푹 찍어먹으니, 쫀득쫀득 감칠맛 가득한 식감에 잘 숙성된 양념장의 들큰하면서도 고소한 풍미가 끝없이 터져 오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울산 봉계한우를 다양하게 즐기는 법. 왼쪽부터 두툼하게 썬 한우육회와 굵은 소금을 툭툭 뿌려 구워먹는 낙엽살, 그리고 숯불 석쇠에서 먹음직하게 익어가는 갈빗살.
■30년만에 못잊어 찾은 봉계한우

그리고 30여 년 후, 다시 봉계를 찾았다. 울산시 울주군 두동면 봉계리 한우마을. 군청이나 면사무소가 있는 곳도 아닌 농촌마을에, 수십 곳의 ‘한우숯불불고기집’이 군집해 맛있는 불고기 냄새를 솔솔 피우고 있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전후로 울산시 울주군의 봉계와 언양은 큰 우시장이 소재했던 곳이다. 이곳 주변은 산세가 깊고 자연환경이 수려한 ‘영남알프스’를 끼고 있어 풍부한 목초지를 바탕으로 한우 축산업이 발달했다. 때문에 울산, 영천, 경주와 더불어 경남·북에서도 손꼽히던 큰 우시장이 열렸던 곳이다. 우시장이 열리는 날 100~500마리가 거래되던 시절도 있었단다.

언양은 양념에 재운 소고기를 석쇠에 구워낸 ‘석쇠불고기’로, 봉계는 왕소금을 뿌린 생고기를 숯불 위에 구워먹는 ‘숯불생고기’로 유명하다. 1996년부터 이 두 곳을 묶어 ‘한우 불고기 특구’로 지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국내에서 유일한 한우불고기 관련 특구이다.

봉계의 마을 주민들에 의하면 “1980년대 인근 태화강 주변의 수석 애호가들이 수석을 찾으러 다니다가 몇 안 되는 이 마을 식당에서 고기를 구워먹으면서 그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이 ‘봉계한우불고기’의 시초”라고 말한다.

“봉계는 울주군의 두동면과 두서면 등 주변 2개 면의 사육농가에서 한우를 대부분 제공받는데, 한우 중에서도 가장 맛이 좋은 3~4년생 1등급 암소만 쓰는 특징이 있습니다.” 오병국 봉계한우불고기특구번영회장의 설명이다.

■생고기 자체의 맛 즐기는 봉계한우

   
봉계한우불고기특구를 알리는 조형물.
암소는 임신 전후로 영양분이 가장 활발하게 축적되기에 육질이 부드러우면서도 진하고 고소하단다. 특히 도축 후 이틀 이내의 신선한 고기만을 선별해 소비하는데, 집집마다 숙성실을 따로 두어 최상 상태의 한우를 제공하고 있다고. 더구나 울산 관내의 한우를 도축 당일이나 이틀 안에 소비하는데 주문과 함께 고기를 썰어서 제공하기에 그 맛이 신선하고 풍미가 농밀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봉계한우는 다른 지역 소고기와 달리 생고기 자체의 맛을 즐기는 조리법이 발달해 있다. 먹기 직전 고기를 끊어, 아무런 양념 없이 왕소금만 솔솔 뿌린 후, 불향 그윽한 숯불에 살짝 익혀 먹어야 제 맛을 볼 수가 있다.

30여 년째 영업하고 있는 불고기집에 자리를 잡는다. 차림표는 단출하다. 등심 갈빗살 낙엽살 양념불고기. 육회는 일반 소고기육회와 깍두기육회가 있다. 봉계의 특징 중 하나가 가장 맛있다는 특수 부위를 중심으로 고기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오늘은 갈빗살이 좋다고 해 갈빗살과 낙엽살, 깍두기육회를 주문한다. 당일 도축한 것이라 고기색이 검붉다. 소고기는 처음 도축하면 검붉은 색을 띠다가 공기 중 산소와 결합, 산화하면서 밝은 선홍빛이 된다.

애피타이저로 우선 깍두기육회부터 맛을 볼 요량이다. 소고기의 육회는 크게 나뉘어 두 종류로 대별된다. 둘 다 우둔살이나 사태 등 기름기 없는 붉은 살을 조리하지 않고 생으로 먹는데, 하나는 야채나 과일 등과 함께 채 썰어 양념에 버무려 먹는 방법이 있고 또 하나는 적당한 크기로 썰어 양념장에 찍어먹는 방법이 있다.

전자는 소고기육회, 후자는 통칭해 ‘육사시미’라 부른다. 육사시미는 지역에 따라, 장만한 모양에 따라 다양하게 불리는데, 전라도 지역에는 ‘생고기’, 대구·포항 지역에는 ‘뭉티기’, 울산에는 ‘막찍기’, 봉계에서는 ‘깍두기육회’라 통용되고 있다.

주로 소고기육회는 도축한지 하루가 지나 육질이 부드러울 때 먹고, 육사시미는 당일 도축하여 식감이 좋을 때 먹어야 제 맛을 즐길 수 있다. 깍두기육회 또한 당일 도축한 고기를 바로 썰어서 낸다.

■식감과 육향이 일품인 육회

깍둑깍둑, 깍두기처럼 썰어낸 육회를 한점 입에 넣는다. 쫀득쫀득한 식감이 여타 지역의 육사시미보다 더 흥미롭다. 그리고 소고기 특유의 육향이 슴슴하게 올라온다. 고소하고 얼큰한 양념장에도 찍어 맛을 본다. 육향과 양념장이 서로 뒤섞이며 어우러지는데 ‘진미(珍味)’가 따로 없다.

이제 숯불구이를 맛볼 차례. 생고기 위에 굵은 왕소금을 술술 뿌린다. 그리고 숯불 위 석쇠에 올려 굽는다. ‘치지직~’ 고기 익는 소리가 청량하다. 곧이어 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참으로 기다리기 힘든 시간이 지나고 있음이다.

고기 위로 붉은 육즙이 송글송글 맺힌다. 고기를 뒤집는다. 다시 기분 좋은 ‘치지직~’ 그리고 바로 젓가락으로 낙엽살 한 줄을 도르르 만다. 아직도 채 익지 않은 고기 속 육즙이 뚝뚝 떨어진다. 붉고 선연하게 떨어지는 육즙이 방울방울 맺히는 홍매화 봉오리 같다.

동백꽃만한 낙엽살 한 줄을 통째 입에 넣는다. 음~! 입 안 가득 고기로 옹골지다. 두어 번 씹으니 육즙이 왈칵왈칵 쏟아진다. 부드럽게 씹히는 육질에 깊고 진한 육향이 차고도 넘친다. 갈빗살도 한 줄 굽는다. 핏기가 가시자마자 한입에 넣는다. 쫄깃하면서 고소함에 기꺼운 진저리가 난다. 이 모두의 풍미가 입안에서, 코끝에서, 오래도록 맴돌며 사람을 흔쾌하게 한다.

식재료의 신선함과 안전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있다. ‘푸드 마일리지’도 그중 하나다. 한 음식이 우리 식탁에 오르기까지 걸리는 식재료의 생산 거리를 뜻한다. 그래서 푸드 마일리지는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

   
우리 주변에서 생산하여, 신선할 때 바로 조리해 먹는 음식. 이런 음식이 인간에게 있어 최상의 음식일 것이다. 우리는 이런 식재료로 조리한 음식을 향토음식의 범주에 넣는다. 봉계한우불고기 또한 푸드 마일리지가 짧은, 지역의 신선한 향토 먹거리가 아닐까 한다.

시인·음식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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