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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다형의 시 둘레길 <5> 함안 아라홍련·무진정·악양루

700년 된 진흙경전, 선비정신, 처녀뱃사공…마음의 향낭 채우다

  • 전다형 시인
  •  |   입력 : 2021-08-05 19:21:42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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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흘을 피다 가는 아라홍련
- 묵언수행하는 수도자 모습
- 연꽃 찾아 헤맨 내가 부끄럽다

- 무진정서 조삼 선생 詩 음미
- 책 한 권이 인생 바꿀 수 있어
- 게으름 반성하며 시집 읽어

- 악양루 전망에 더위 물러가
- ‘처녀뱃사공’ 한 소절 부르자
- 6·25전쟁 아픔이 심금 울려

칠팔월이 되면 나는 연꽃을 찾아다닌다. 올해는 ‘아라홍련’을 보려고 함안으로 떠났다. 진흙 속에서 700년 인고의 시간을 견딘 아라홍련이 등단 10년 만에 어렵게 얻은 나의 첫 시집(‘수선집 근처’)과 닮아서일까? 귀한 것은 어렵게 얻어 더 귀한 법. 누겁(累劫)의 지층을 뚫고 부활한 아라홍련에 비하면 나의 시(詩) 살이는 찰나에 불과하다. 문리가 터지지 않은 것도, 단단한 아집을 깨지 못한 것도 내 탓이다. 나는 늘 배불리 밥을 먹고도 허기가 졌고 오래 연연했다. 오랜 침묵으로 가라앉힌 진흙 경전을 받아들자, 연꽃은 환했다.
얼마 전 다녀온 경남 함안군 가야읍 왕궁1길에 자리한 함안연꽃테마파크 모습. 여름 해의 기운을 다 빨아들인 듯 왕성하고 아름답다.
■700년 발아, 아라홍련

흙탕 물 걸러내느라 /뿌리마저 골다공증 걸려 /구멍이 숭숭 / 바람이 숭숭 // 솥뚜껑만 한 잎사귀로 / 몸을 가리고 연분홍 꽃 피워 올려 / 거북이 등에 올려놓은 등불 하나 / 연등 / 두 손 모아 고개 숙인 여승의 모습 // 귀 기울이면 / 연꽃 속에서 뿜어내는 숨소리가 / 활화산의 용암처럼 뜨거워 // 내가 타버리는 열 꽃 / 하나가 된다. (김수영 시 ‘연꽃’ 전문)

2009년 5월 함안 성산산성에서 나온 연씨는 이듬해 7월 시배지(함안군 가야읍 도항리 694)에서 ‘아라홍련’이라는 이름으로 700년 만에 첫 꽃을 피웠다. 700년 침묵의 발아, 인내로 피운 ‘아라홍련’ 시배지는 하안거에 든 여승의 기도처였다. 진흙 속에 핀 연꽃 봉오리에 수심(修心, 守心, 水心)을 켜고 경전을 읽고 있었다. 사흘을 피다 가는 아라홍련의 얼굴 빛에는 한 점 그늘이 없다. 안테나 접시를 띄운 시배지의 연잎은 하늘 소리를 모으고 있었다. 묵언수행에 든 수도자의 모습이었다.

흙탕물에 중심(中心, 衆心, 重心)을 세운 연 대는 말간 물 진심만 뽑아 올려 하늘과 땅에 제 향기를 풀어놓고 있었다. 나는 코끼리 큰 귀를 닮은 연잎을 청진기 삼아 허언이 판치는 세상을 짚어보았다. 제 각각 지은 연(蓮)을 따라 연(戀, 連, 然)들이 줄줄이 딸려 나왔다. 나는 아라 연꽃이 되어 흔들리는 바람에 귀를 모았다. 연은 제 아름다운 꽃잎마저 버리고 연밥에 뜸을 들인다. 물밑 세상, 진흙이 지은 연밥을 보니 내 안 소란이 조금 잦아들었다. 침묵의 발아, 연꽃의 환(丸, 幻), 물 속 불 기둥이 솟아올랐다.

“첫째, 이제염오(離諸染汚): 주변의 부조리와 환경에 물들지 않는 연꽃은 진흙탕에서 자라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고 둘째, 불여악구(不與惡俱): 연꽃잎 위에는 한 방울 오물도 머무르지 않는, 물이 연잎에 닿으면 그대로 굴러 떨어질 뿐, 물방울이 지나간 자리에 그 어떤 흔적도 남지 않는다. 셋째, 계향충만(戒香充滿): 연꽃이 피면 물 속 시궁창 냄새는 사라지고 향기가 연못에 가득하다. 고결한 인품은 그윽한 향을 품어 사회를 정화한다. 한 자락 촛불이 방의 어둠을 가시게 하듯 한 송이 연꽃은 진흙탕 연못을 향기로 채운다. 넷째, 본체청정(本體淸淨): 연꽃은 어떤 곳에 있어도 푸르고 맑은 줄기와 잎을 유지한다. (하락·‘연십의(蓮十意)’ 중)

연은 “자기 몸이 가장 아름답고 화려할 때 물러날 줄 아는 군자의 꽃”으로 평가된다. 이제껏 ‘외연’에 홀려 연꽃을 찾아 헤맨 내가 부끄럽다.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과 같이,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숫타니파타 經集(경집)’의 말씀과 ‘연십의(蓮十意)’를 새겨보는 시간이었다.

■무진정(無盡亭)

함안면에 있는 무진정.
함안 9경 중 제4경 무진정(괴산리·경남 유형문화재 제158호)은 조선 성종 때 무진 조삼(趙參)선생이 후진 양성과 여생을 위해 지은 정자이다. 무진정을 돌아보니, 조삼 선생이 독서삼매경에 빠진 일화를 짐작게 하는 시가 걸려 있다.

여섯 종류 경전을 공부하다가 먹는 것도 잊으니(六經咀嚼忘食)

위아래 구름 그림자가 하늘빛이 되었네(上下雲影天光)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보내고 맞이하면서도(送迎淸風明月)

또한 마땅히 백성과 나라를 먼저 걱정하네(亦當民國先憂)

조삼 선생이 먹는 것도 잊을 만큼 열심히 공부한 여섯 종류 경전은 무엇이었을까? 육체의 허기를 잊게 한 경전이 조삼 선생 영혼의 밥이었다는 생각에 내 게으른 독서를 반성했다. 책 한 권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 양서는 영혼의 밥이다. 그렇다면 내 영혼의 밥은? 무진정 앞 연못(충노담) 한가운데 누각(영송루)에 앉아 시집을 읽는다. 천근만근 눈 두덩이에 올라앉은 잠이 눈꺼풀을 끌어내렸던가? 호접지몽(胡蝶之夢) 시간이던가? 꿀잠에 빠졌던 오침에서 조삼 선생 옆 모습이라도 뵈었을까? 읽던 시집 얼굴에 얹고 살짝 잠이 들었을까? 700년 아라홍련 진흙 경전과 조삼 선생의 여섯 종류 경전을 귀동냥으로 들었던가? 처녀뱃사공을 만나기 위해 악양루로 간다.

■악양루 처녀뱃사공 노래비

대산면 서촌리의 악양루이다.
조선 철종(1857)이 세운 악양루는 중국 악양루에서 유래했다. 악양루에 가기 전 남강(함안군 법수면과 대산면)을 잇는 나루터가 있었는데, 지금 그 자리에 ‘처녀뱃사공 노래비(함안군 대산면 서촌리)’가 있다. 이 나루터는 1959년 가수 황정자가 부른 ‘처녀뱃사공’ 노랫말이 셍겨난 곳이다. 6·25 전쟁 후 전국유랑극단을 이끌던 윤부길은 전국을 돌며 ‘부길부길쑈’를 이끌었는데, 함안 공연을 마치고 대산장으로 가던 중 처녀뱃사공이 태워준 배를 타고 강을 건넌다. 군에 간 오빠를 대신해 가족 생계를 책임진 사연을 듣는다. 그 후 군에 간 오빠의 전사통지서를 받은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한부길이 작사한 ‘처녀뱃사공’을 작곡가 한복남(1959년 작고)에게 의뢰해 노래를 만들었다.

“낙동강 강바람이 치마폭을 스치면 군인 간 오라버니 소식이 오네 큰애기 사공이면 누가 뭐라나 늙으신 부모님을 내가 모시고 에 헤야 데 헤야 노를 저어라 삿대를 저어라” (1절 전문)

강물은 푸르기만 했다. 절벽을 따라 악양루로 접어들자 아찔한 낭떠러지 아래 꿈인 듯 생시인 듯 낡은 목선이 삐걱삐걱 노를 젓고 있다. 소녀 가장의 고달픈 노동가가 귓전을 맴돈다. 기억을 더듬어 ‘처녀뱃사공’ 한 소절 부르자, 아들의 전사통지를 받은 부모의 통곡이 쏟아졌다. 우리 참혹한 현대사 한 페이지, 당시 아픔과 가난을 노래한 절절한 가사가 심금을 울렸다. 무거운 마음을 이끌고 악양루에 오르니 법수면 넓은 들판과 제방이 한눈에 들어왔다. 남강과 낙동강이 휘돌아 흐르는 강 건너 저습지는 누대에 걸쳐 생긴 둑길. 중국에 ‘만리장성’이 있다면 함안에 ‘천리장제(千里長堤)’가 있다. 함안 대산면을 굽이치는 남강 물길과 함안천이 만나는 합수머리다. 옛날에는 악양루에 기두헌이라는 현판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청남 오재봉이 쓴 악양루(岳陽樓) 현판이 있다.

두보와 문장가들이 중국 4대 정자인 악양루 비경을 보고 감탄사를 쏟아냈다는데, 나는 함안 악양루 올라보니 탁 트인 전망에 더위가 한 발짝 물러갔다. 지척에 있는 내 고향을 두고 돌아오는 내내 어머니, 어머니! 다시 오리라 마음을 궁굴렸지만 쉬이 풀려나지 못했다. 함안, 내 시 둘레길을 담은 향낭은 배가 불룩하다.

시민기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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