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 옆 김밥집

　 -금곡동 아파트 

                 김요아킴


　독서실 의자에 붙잡혀 있다가
　수제비로 허기를 달래는 딸아이에
　아비는 김밥 한 줄을 더 보태었다

　서로의 어깨가 연골처럼 부딪히는 자리,
　무작정 밀치고 들어와 고집 묻어나는
　쇳소리로 주문을 거는 노인들

　불조심 마크 선연한 모자 속
　땀내가 국물처럼 피어오르자, 배배 꼬인
　면발이 태극기마냥 젓가락에 나부꼈다

　서로 다름을 모두 붉은 낙인으로 찍어대던,
　분노는 배고픈 북쪽의 일용할 양식이 될
　쌀 한 톨에까지로 이어졌다

　김 속의 밥알을 곱씹다가, 딸아이는
　그 빨간 깍두기를 집다 말았고, 아비는
　서둘러 잔돈을 지갑에 구겨 넣었다

　거리에 찍힌 무수한 발자국, 그 무게와
　모양이 각기 다르다는 걸 딸아이는
　처음으로 교과서 밖에서 배우고 있었다

　 시집 ‘공중부양사’에서

　

	잊지 말자. 김밥 한 알만 한 배려만 있어도 그대와 나, 우리 가슴은 충분히 따뜻해질 수 있다. 아! 그렇구나. 당신과 나는 그래서 서로 다르구나, 그래 그래 당신의 그 다른 삶과 모습을 인정할게. 이 한마디로 우리는 평화와 만날 수 있다.

<내 느낌으로 바라보기>
금곡동(金谷洞)은 부산 북구에 있는 법정동이다. 동쪽에 있는 금정산 주봉인 고당봉에서 서쪽 낙동강변으로 뻗은 큰 골짜기 지명이 금곡이라서 붙여진 이름으로 전한다.

　이 시는 ‘금곡동 아파트’ 연작 중 한 편으로 시인 주변 이야기를 소재로 쓴 시이다. 제목(‘목욕탕 옆 김밥집’)은 어느 동네건 볼 수 있는 우리 주변 모습처럼 익숙하여 친근하게 다가온다. 독서실 붙박이가 된 딸아이가 ‘수제비로 허기를 달래’는 게 안쓰러워 김밥 한 줄이라도 더 먹이고 싶은 ‘아비’ 마음이 김밥집에 있다. 그러나 상황이 어떻건 ‘고집’으로 밀어붙이며 주변보다는 ‘나/우리’가 중요한 ‘노인들’이 등장하면서 ‘아비’의 그 마음은 서둘러 그 자리를 뜨게 한다. ‘그 무게와 모양이 각기 다른’ ‘발자국’의 노인들이지만, 한때는 오늘의 딸, 아들을 마주하고 있던 아버지였을 것이다.

　인생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는 표현이 있다. 인생 1/4은 성장하며 보내고 3/4은 늙어가며 보낸다고도 한다. 잘 익어가기 위해서는 침묵 사랑 여유 아량의 의미를 늘 새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스트레스’나 ‘화’(분노)는 ‘내가 옳다’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에 오는 것이라고 한다. ‘서로 다름’에 ‘모두’를 ‘낙인으로 찍어’ ‘분노’하기 보다는 ‘다름’을 이해하는 아량을 새길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변해버린 나를 보며 자괴감을 갖지 않기 위해서는 지나친 집착은 잘 다스려야 한다. 아이들이 ‘처음 교과서 밖에서 배우’게 되는 것이 얼룩진 ‘절망’보다는 가슴 뛰는 ‘희망’이라면 좋겠다. 김곳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