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짝 굽거나 육수로 끓여 먹거나
- 지역마다 정의하는 불고기 달라
- 고구려 ‘맥적’부터 역사 집대성
- 변형과정 속 사회 변화 흥미로워
불고기는 한국인의 소울푸드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불고기가 뭐냐”고 물으면 사람마다 묘사가 다르다. 양념한 저민 고기를 석쇠에서 바짝 익혀 직화한 음식이다, 자작한 국물에서 소고기 건더기와 당면을 건져 먹는 음식이다, 다진 소고기를 양념해서 떡갈비처럼 뭉쳐 석쇠에 구운 음식이다 등. 집마다 지역마다 알고 있는 ‘불고기’가 다른데, 이 때문에 몇 해 전에는 인터넷에서 때아닌 ‘불고기 논쟁’이 벌어져 학자들이 불고기의 원류에 관해 격렬하게 토론을 하기도 했다. ‘한국 고기구이의 문화사’라는 부제가 붙은 ‘불고기’는 그런 연구들을 집대성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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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고기 하면 ‘국물 불고기’가 먼저 떠오르지만, 본래는 얇게 저며 양념한 고기를 구운 요리였다. |
중국(한족)의 전통 요리와 차별화된 우리 전통 육류구이의 원조는 고구려의 맥적(貊炙)’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주장을 처음으로 편 사람은 육당 최남선이다. 이견이 있지만 맥적은 잘게 썰어 조미한 고기가 아니라 ‘통구이’였으며 소 돼지 개 등 여러 종류의 고기가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불교의 영향으로 잊혔던 맥적이 고려 때 ‘설야멱(雪夜覓)’으로 되살아나 조선후기의 궁중요리인 너비아니로, 그리고 현재의 불고기로 이어졌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물론 변화·전승단계마다 많은 논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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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비아니 |
불고기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발견된 문헌은 1922년 ‘개벽’ 제22호에 실린 현진건의 소설 ‘타락자’다. ‘궐의 얼굴은, 마치 이글이글 타는 숫불우에, 노치여 있는 불고기덩이 같았다’라는 문장이다. 일제강점기는 우리나라의 육류구이 문화 형성기와 일치한다. 경성 평양 등의 대도시에서 육류 소비량이 급증하면서 고기를 외식으로 먹기 시작했다. 특히 몰락한 조선왕실의 숙수(요리사)들이 경쟁적으로 차린 고급 요리점을 중심으로 육류 요리가 발달했다. 소가 특산물이었던 평양에서는 고기 굽는 연기가 너무 독해 모란대의 소나무가 고사했다는 기사가 실릴 정도로 불고기가 유명했다고 한다. 14세기 문헌기록에서 발견되는 소육(燒肉), 순우리말인 군고기, 일본어인 야키니쿠, 궁중음식인 너비아니 등의 단어가 모두 일제강점기에 ‘소고기를 석쇠에 구원 먹은 평양식 요리’를 가리키는 단어로 혼용됐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다양한 불고기가 혼재한다. 불고기라는 이름에 충실한 음식은 구운 양념고기인데, 대중에게는 전골류의 불고기가 더 익숙하다. 이런 육수 불고기 중에서도 얇게 저민 쇠고기를 채소와 함께 황동판에 올려 육수를 붓고 자작하게 끓이는, ‘서울식 불고기’라 불리는 음식이 유명하다. 6·25 전쟁을 거치면서 고기 수급이 어려워지자, 고기질이 낮아도 무방하고 채소 등 부재료를 많이 넣어 배를 불릴 수 있는 쪽으로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
불고기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고기 요리는 아니다. 갈비구이와 생고기 구이에, 그리고 요즘은 돼지 삼겹살 구이에 밀린다. 그럼에도 달짝지근한 불고기는 외국인도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다는 점, 여러 요리에 응용가능하다는 점, 오랜 세월 한국인의 기억 속에 존재해 왔다는 점 등의 이유로 여전히 한국 대표 고기요리의 자리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불고기의 변형을 부른 사회적·경제적·기술적 요인들을 탐색하다 보면 한국 사회의 변화가 엿보이는 것도 흥미롭다.
신귀영 기자 ky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