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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107> 금동건 시인의 시집 ‘비움’

시인이 된 청소부, 일기처럼 써내려간 詩

  • 박현주 책칼럼니스트
  •  |   입력 : 2021-05-30 19:52:16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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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마와 싸우면서 보낸 청년 시절
- 매일 시 쓰면서 몸과 마음 치유
- 2006년 등단 후 시집 5권 펴내
- ‘유퀴즈…’ 방송 출연으로 유명세

가끔 늦은 밤에 쓰레기 수거차가 아파트에 들어왔다가 나가는 소리를 듣는다. 요일을 맞춰 쓰레기를 버리는 건 꼬박꼬박 하지만, 누가 수거하는지 뒷일은 관심이 없었다. 어쩌다 늦은 귀가 길에 그들과 마주치면, 비로소 ‘밤늦게 고생하시는구나’ 고맙게 생각한다. 쓰레기를 치워주는 그들이 없다면 우리의 일상생활이 엉망이 된다.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를 수거해서 돌아가는 길에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시를 길어 올리는 사람이 있다. ‘시인이 된 청소부’라고 불리는 금동건 시인을 경남 김해에서 만났다.
   
‘환경미화원 시인’ 금동건을 경남 김해시 호계천 근처에 있는 그의 컨테이너 집필실에서 만났다.
■詩가 있어서 살 수 있었다

오후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하는 금동건 시인을 만나기 위해서 오전 10시로 약속을 정했다. 낙동강 위를 달리는 경전철 차창에 빗줄기가 툭툭 부딪쳤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쓰레기가 비에 젖어 무겁겠다, 그럼 일이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전철 부원역까지 마중을 나와 있던 시인을 따라 그의 작은 집필실로 갔다. 호계천 근처에 있는 3평 남짓 크기의 컨테이너이다. 그가 일하는 회사와 가깝다. 일이 끝나면 이곳에 와서 시를 쓴다. 환경미화원이라는 직업에서 시인으로 돌아오는 작은 집이다. 여기서 하루를 돌아보고 글을 쓴다. 그리고 나서 아내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 잠이 든다. 컨테이너 앞에 강아지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주인의 인터뷰 약속 때문에 산책을 못한 강아지는 조금쯤 화가 나 있는 듯 보였다. 매일 오전에 시인과 함께 하는 시간을 뺏은 것 같아 미안했다. 작은 집필실은 책과 시집, 커피포트 등이 놓인 널찍한 책상 하나만으로도 이미 가득했다. 벽에는 시화전에 내놓았던 시인의 작품 몇 점이 걸려 있다. 쓰임새 없이 자리를 차지한 사물은 하나도 없이, 꼭 필요한 물건만 제자리를 잡고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다.

   
비움- 금동건 / 그림과책
금동건 시인은 1961년 경북 안동 예안에서 태어났다. “직장생활하는 형과 함께 지내면서 공부하라고 부모님께서 11살인 저를 부산으로 보내셨죠. 기차를 타고 밤늦게 부산역에 도착했을 때, 역 맞은편의 수많은 불빛들을 보면서 놀랐어요. 부산에는 높은 건물이 저렇게 많구나 하고요. 그런데 그 불빛들이 산복도로 동네 집들이었지 뭡니까.” 지난 추억을 이야기하는 시인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생선이라고는 자반고등어밖에 못 봤던 터라 자갈치 시장을 넋 놓고 구경하기도 했죠. 갈치를 처음 보면서 ‘저 길고 하얀 생선은 뭐야?’라고 했으니까요.”

11살 소년 때 자갈치시장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던 그는 2006년에 월간 ‘시사문단’으로 등단하고, 2007년에 첫 시집을 내면서 ‘자갈치의 아침’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후 ‘꽃비 내리던 날’ ‘詩를 품은 내 가슴’ ‘엄마의 젖무덤’ ‘비움’까지 다섯 권의 시집을 냈다.

부산에서 초중고 학창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 때부터 많이 아팠어요. 20대와 30대를 병마와 싸우면서 보냈답니다. 수염은 구안와사가 왔을 때 그 모습을 가리기 위해 길렀는데, 이젠 제 스타일이 됐어요. 병에 시달리면서 꿈도 희망도 다 잃고 이렇게 죽는 것 아닌가 절망했던 저를 살린 것이 시입니다.” 아름답고 정겨웠던 마을과 친구들이 있는 고향을 떠나는 순간부터 그의 마음에는 그리움이 자리 잡았다. 낯선 도시에서 새 친구를 채 사귀지 못한 11살 금동건은 고향의 친구들에게 편지를 썼다. 일기도 빠뜨리지 않고 썼다. 글쓰기는 그에게 밥을 먹는 것만큼이나 중요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시로 이어졌다. 마음에는 그리움이 가득했고, 몸은 병에 시달렸던 그를 살려준 것이 시였다.

■하나가 된 청소부와 시인

살아가기 위해 지식과 기술을 익혀야 하는 시기를 온통 병마와 싸웠던 그는 1996년부터 환경미화원 일을 시작했다. “여러 가지 일을 해봤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어요. 지금 이 일을 하는 저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 아내입니다. 쓰레기를 수거하면서 일기를 계속 썼는데 어느 순간 시가 되더라구요.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를 썼어요. 일기를 쓰듯이 시를 썼습니다.”

일기처럼 시를 쓰니, 시는 매일 그의 마음에서 터져 나왔다. “처음에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점차 제가 하는 일에 대한 생각들이 시가 됐습니다. 시는 저를 살게 하고, 버티게 하고, 존재하게 합니다. 돌아가신 아버님도 제가 시를 쓰는 걸 좋아하셨습니다. 저의 등단과 두 번째 시집까지 보셨지요. 제게 남긴 유언이 ‘빚지지 마라’ ‘남에게 손가락질 받지 마라’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절필하지 마라’였습니다.” 그의 시는 어쩌면 아버지에게 보내는 또 다른 편지이고 일기인지도 모른다. 그의 시에는 날짜도 적혀있다. 날짜를 기록하는 이유를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언제 이 시를 썼는지, 날짜를 보면 그 순간 나를 가득 채웠던 생각이 무엇인지 알 수 있잖아요.”

금동건은 시집을 내면서 ‘시인이 된 청소부’로 부산과 경남의 방송에 여러 차례 출연했다. 쓰레기 수거 하면서 주운 동전을 매년 지역언론사를 통해 성금으로 내놓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최근 들어 더 유명해졌다. tvN방송의 ‘유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한 뒤에는 김해 시민은 물론이고, 학생들이 ‘유퀴즈 아저씨’라고 부르면서 사인해달라고 다가온다. 학생들에게 ‘음식 남기지 말고 다 먹어’라고 말하는 금동건은 유명한 청소부 아저씨, 그리고 ‘펜이든 책이든 손에서 놓지 마라’고 말하는 금동건은 시인이다. 그의 시 ‘비움’의 마지막 구절은 ‘금동건’이라는 사람을 말해준다. “나는 이 세상을 비우는 환경미화원이다/ 그러므로 거리엔 아침 햇살 가득 채워주는 시인이다” 이 구절에서 청소부와 시인은 하나가 된다. 우리는 무엇을 비워내고 무엇을 채우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한다.

   
필자와 인터뷰를 한 날, 청소부 시인 금동건은 곱절은 무거운 쓰레기를 수거했을 것이다. 일이 끝나고 밤하늘을 올려다 본 그는 또 어떤 ‘비움과 채움의 비밀’을 시로 받아썼을까.

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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