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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준의 음식 사람 <34> 대구 ‘무침회’

매콤한 선어 회무침과 납작만두 오묘한 궁합 … 이게 대구 맛이지

  • 최원준 시인
  •  |   입력 : 2021-05-25 19:39:22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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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 불로시장서 선보인 ‘무침회’
- 내륙 특성상 활어 귀해 숙성 생선 활용
- 가오리·가자미 썰어 넣고 초장에 쓱쓱
- 오징어·소라 숙회도 듬뿍 들어가 이색
- 여러 맛집 골목 형성… 잔칫상에도 올라

20~30년 전쯤이던가, ‘회무침’을 즐겨 먹던 때가 있었다. 호주머니가 가볍던 시절, 생선회를 싸게 먹을 수 있기도 했지만 새콤달콤하면서도 칼칼한 매운맛이 술안주로 적격이었다.

비교적 싼 생선을 선어 형태로 장만해 두었다가 삶은 오징어, 소라 등의 해물과 갖은 야채를 넣고 쓱쓱 비벼서 먹던 서민음식으로, 화끈한 초장이 입맛을 자극하면서 진한 생선회맛과 야채의 아삭한 식감까지 즐길 수 있었던, 꽤나 매력적이고 중독적인 음식이었다.

그러나 음식 자체로 평가한다면 ‘생선회무침’은 ‘생선회’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은 아닐 것이다. 시고 달고 매운 회고추장을 양념베이스로 쓰기 때문에 생선회의 내밀한 맛을 즐길 수가 없는 데다, 여러 식재료가 한데 섞여 있는 탓에 생선 본연의 은근한 식감 또한 제대로 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과 같은 활어 운송시스템이나 냉장시설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절에는 고급횟감이 아닌 해산물이 선어형태로 유통되던 터였다. 횟감의 유통기간이 길어지다 보면 당연히 식중독을 비롯해 기생충 감염에 노출되기도 한다. 때문에 ‘횟배’라는 배앓이가 빈번하기도 했다.
   
대구 무침회를 납작만두에 싸서 먹는 모습.
■활어회 귀하던 때 사랑받은 회무침

이런 사정을 감안한다면 ‘회무침’은 식초 베이스의 양념이 배앓이를 예방하기에 그 시절 사람들의 지혜가 오롯이 담긴 음식이었다. 여유가 있는 집안에서는 막걸리로 식초를 담가 초장을 만들었고, 여느 식당에서는 빙초산이라는 강력한 산을 희석시켜썼지만 그 효과는 동일했다.

그러나 지금처럼 ‘활어생선회’ 문화가 일반화 된 상황에서 ‘생선회무침’ 문화는 그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특히 바다를 끼고 있는 해안지역은 더더 그러하다. 여수 등지처럼 가문에서 대대로 이어져오는 ‘초장문화’가 존재하는 지역은 예외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대구에도 이런 ‘회무침’ 음식이 있는데, 대구 사람들은 이를 ‘무침회’라고 부른다. ‘다양한 식재료를 (숙)회와 함께 무쳐서 내는 음식’이란 뜻으로, ‘생선회 중심으로 무쳐서 내는’ 부산의 방식과는 그 궤를 살짝 달리한다.

   
데친 민물 고둥
대구는 내륙이라 싱싱한 활어회를 맛보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더운 날씨에 음식이 쉽게 상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배앓이가 적은 선어인 가오리나 가자미, 활어운송이 용이한 붕장어 등의 생선회와 오징어, 고둥 등 해물숙회를 한데 섞어 강렬한 맛의 회초장으로 바락바락 무쳐서 먹었던 것이다.

귀한 생선회 대신 상대적으로 구하기 쉬운 야채와 데친 민물 고둥도 넉넉하게 넣어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먹을 수 있도록 푸짐하게 차려냈기에, 오래전부터 ‘동네 잔치음식’으로 자리 잡은 대구의 전통적인 향토음식이다.

이는 화끈한 맛을 좋아하고 대구사람들의 성정에서도 기인하겠지만, 대륙성 기후의 특성상 덥고 추운 대구 날씨도 자극적인 ‘무침회’ 수요에 어느 정도 기여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지금도 ‘대구 10미(味)’ 중 하나로 자리 잡아 많은 대구 사람에게 현재까지도 널리 사랑받고 있다.

■대구의 유명한 무침회 골목들

불로시장과 교동시장은 여러 횟감을 섞어서 무치거나 횟감을 선택할 수도 있다.
대구에는 몇몇의 무침회 골목이 있는데 불로동 불로시장과 내당동 반고개, 대구역 인근 교동시장 등이 그곳이다. 지금은 그 명맥만 유지할 정도로 퇴색됐지만 몇몇 유명 식당은 여전히 전국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다.

이 ‘무침회’의 시작은 1970년대 대구 불로시장에서부터였다. 불로시장 인근에는 대구 최고 막걸리인 ‘불로막걸리’ 양조장이 있었는데, 그 막걸리의 안성맞춤 안주로 개발된 것이 대구 잔칫상에 오르던 ‘무침회’였던 것.

푸짐하면서도 저렴한 가격과 맵고 화끈한 맛으로 대학생, 노동자들 입맛을 사로잡으며 큰 인기를 끌었는데, 1980년대까지 ‘성주식당’을 비롯해 20여 집이 성업을 하며 ‘무침회 골목’을 형성하기도 했다.

“이 골목은 1970, 80년대 대구지역 대학생들의 신입생 환영회 MT 장소로 인기가 많았습니다. 선배 대학생이 싸고 양 많은 막걸리와 무침회로 후배를 격려하던 엠티문화의 장소로, 불로막걸리 양조장과 더불어 번창했었지요.” 대구음식문화 연구자인 영남일보 이춘호 기자의 설명이다.

1980, 1990년대 들어서는 내당동 반고개의 ‘진주식당’이 ‘무침회’를 내면서 현재의 ‘반고개무침회 골목’이 형성되는데, 반고개 명성약국 옆 350m 길이의 골목 양편으로 열서너 집이 산재해 있다. 대구역 앞 교동시장에도 서너 집이 무침회를 팔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여러 가지 식재료를 미리 장만해 놓았다가 주문과 함께 즉석에서 무쳐준다는 것. 이 때문에 생선회와 야채가 서로 어우러져 신선하고 아삭아삭한, 싱그러운 맛이 난다.

다른 점도 있다. 불로시장과 교동시장은 여러 횟감을 섞어서 무치거나 횟감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반고개는 오직 횟감의 맛에만 집중하라고 오징어나 가오리, 가자미 등 한 가지 횟감을 중심으로 무쳐서 손님 상에 낸다. 교동시장은 곁들이 안주로 삶은 골뱅이를 따로 팔기도 한다.

요즘은 ‘무침회’를 직접 무쳐서 주는 집과 손님이 입맛대로 무쳐서 먹도록 횟감과 야채, 초장 등을 따로 제공하는 집 등으로 나뉘고 있는데, 먹는 방식의 다양성 때문에 자연스러운 분화 과정을 거치고 있는 듯하다. 자신의 기호에 따라 ‘더 맵게’ ‘덜 맵게’ 등으로 선택할 수도 있다.

■쌈, 비빔밥으로도 먹는 가성비 음식

무침회는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야채에 싸서 한 입 크게 ‘무침회쌈’으로 먹어도 좋다. 그리고 무침회를 술안주로 적당히 즐기고 나면 남은 양념에 밥을 비벼서 먹기도 한다. 술안주와 땟거리를 함께 해결할 수 있어 가성비 높은 음식이기도 한 게 이 ‘무침회’인 것이다.

대구 무침회를 먹을 때 필히 함께 곁들여 먹는 음식 또한 독특하다. 대구의 분식음식인 ‘납작만두’가 그것이다.

납작만두는 무침회와 더불어 ‘대구 10미’에 선정된 음식으로, 얇은 만두피에 소량의 당면과 파가 들어간 만두다. 만두피 이외에는 별다른 재료가 들어가지 않는데, 기름에 튀기듯 지져내기에 슴슴하면서도 고소하다. 그래서 무침회의 매운맛을 중화시켜 주고 새콤한 맛에 고소한 맛을 더해줘 묘하게 어울리는 음식궁합을 선보인다.

   
이 두 음식은 경제적 여건이 넉넉하지 못한 청춘이나 노동자 등 서민들이 자주 찾던 것으로, 가격이 싸고 푸짐하면서도 남녀노소가 즐겨 먹을 수 있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 둘의 조합은 비록 차선이자 대용식이지만, 자신들의 입맛대로 창의적으로 진화시켜 나간 대구사람의 지혜로운 입맛에 근거하고 있음이겠다.

시인 · 음식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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