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조각가 제레미 토마스는 지난 17년간 강철의 오브제를 부풀리고, 색을 입히는 데 몰두해왔다. 평소 사물을 하나의 오브제로써 관심 갖고 연구했는데, 들판에 둔 농장 장비들을 유심히 관찰하다가 ‘공기로 부풀린 오브제(inflatables)’를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제레미 토마스, Anthracene Green. 워킹하우스뉴욕 제공

작가의 작업은 철판을 잘라 접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조각들을 육각 형태에 기반해 하나로 연결한 뒤에는 1000도의 오븐에 구워 내부를 부풀린다. 미리 숨구멍을 내 터질 일은 없지만, 조각이 팽창하며 일부는 찢어지기도 한다. 오븐 속에서 어느 부분이 얼마만큼 부풀어 오를지, 어디가 찢길지 완벽하게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단 하나도 같은 모양이 없다. 여기에 강렬한 색감, 매니큐어 벨벳 등을 떠올리게 하는 질감 표현을 더해 작품을 완성한다. 이처럼 강철을 부풀리는 작업을 두고 작가는 ‘숨’을 불어넣는 행위이자, 생명력을 부여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의 속성이 그렇듯, 완성된 오브제 또한 영원히 같은 모습으로 유지되지 않으며 변화하고 진화한다.

우연성이 주는 재미, 즉흥성이 돋보이는 작가의 작품들은 지금 부산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워킹하우스뉴욕에서 오는 7월 31일까지 그의 개인전 ‘아로마틱(aromatic)’을 열고 29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 제목인 ‘아로마틱’은 방향족 화합물(Aromatic Compounds)에서 따왔다. 방향족 화합물의 벤젠 고리는 6개의 탄소 원자로 육각형 분자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육각형의 변형과 그 상호작용으로 완성된 작가의 작품을 설명하기에 적합하다고 갤러리 측은 설명한다.

예술이란 본능적이고 즉각적인 반응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작가의 지론대로, 갤러리에 전시된 작품들은 단번에 시선을 잡아끈다. 특히 벽에 걸린 작품들은 은은한 색 그림자까지 발산해 깊이감을 더한다. 안쪽의 보이지 않는 면에 색 작업을 하고, 조명과 그림자로 공간을 하나 더 만든 것처럼 연출한 효과다.

일부 작품은 바닥에 툭 내려놓은 듯이 배치돼 있다. 예술이기 이전에 하나의 오브제로 작품을 느끼길 바라는 작가의 의도를 반영한 것인데, 모든 면을 둘러보며 감상하기에는 더없이 좋다. 갤러리 측은 “작가가 농장 들판에서 봤던 고철을 연상하고 느낄 수 있게 했다”며 “좌대에 있으면 당연히 예술이라고 생각하지만, 바닥에 둠으로써 작품을 보는 시각을 바꾸게 한다”고 전했다. 민경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