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키스/최정란

장미와 입을 맞추었지
가시를 끌어당겨 장미향기를 입술 안으로
깊이 빨아들였지
장미는 벌린 내 입을 더 크게 벌리고
내 심장을 꺼내 가졌지
그날부터 나는 심장이 없지

장미와 같은 시간을 호흡했지
바다와 하늘도 같은 고요를 들이쉬고 내쉬었지
별의 어깨를 출렁거리며 밤과 낮이
파도처럼 흰 한숨을 몰아쉬었지
그날 장미에 심장이 생겼지
세상은 장미의 들숨과 날숨으로 채워졌지

나는 한 점 후회 남김 없어
다만 후렴이 들어간 노랫말을 쓰기 시작했지

짧은 시간에 모든 숨결을 다 주기 때문이지

시집 ‘장미키스’에서

	장미. 1991년 흑백 촬영. 국제신문 DB

<내 느낌으로 바라보기>

5월은 장미의 계절이다. 담장이나 울타리마다 빨간 장미꽃들이 아우성치듯 허공을 타고 오르는 걸 보면 왠지 장밋빛 키스보다 항쟁이란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숱한 세월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 한을 품고 사는 이들의 가슴에 맺힌 피눈물처럼, 5월을 뒤덮는 붉은 장미.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장미꽃은 여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아름다운 꽃이지만 날카로운 가시를 함께 가진 장미는 위험할지라도 간혹, 그것까지 매력이라는 찬사를 붙이는 걸 보면 아이러니하다.

　그리스 신화에 전해지는 장미꽃 가시의 탄생 이야기를 보면, 아름다움의 신 아프로디테가 장미꽃을 탄생시켰는데 그녀의 아들 큐피트가 장미꽃의 아름다움에 반해 꽃에 키스하려는 순간 꽃에 있던 벌이 놀라서 큐피트의 입술을 쏘았다고 한다. 이에 화가 난 아프로디테가 벌의 침을 뽑아 장미의 줄기에 꽂았는데 이것이 장미의 가시가 되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다.

　시 ‘장미키스’를 통해 시인은 형상에 가려진 이면의 현실을 말하고자 했을 것이다. 화자를 통한 시적 의도와 방향이 독자마다 다르게 읽혀지겠지만 ‘장미향기’의 현실은 ‘가시’를 동반한 고통의 감수라는 것이다. 그래도 ‘장미키스’는 상상만으로 황홀하지 않나…생각에 젖다 움찔 물러서게 된다.

　‘장미와 입을 맞’춤으로 시작되는 사랑이다. ‘그날부터’ ‘심장이 없’어진 화자는 이미 내가 아닌 ‘장미의’ ‘들숨과 날숨으로 채워’지는 세상이 된다. 사랑에 빠지면 뇌에 분비되는 화학물질인 도파민과 아드레날린, 옥시토신 등이 기분을 좋게 하고 흥분을 고조시켜주기 때문에 사랑하는 상대 외에는 마음이 끌리지 않으며 상대의 결점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그럼에도 ‘장미키스’가 아름다운 건 ‘한 점 후회’도 ‘남김 없’이 ‘모든 숨결을 다 주기 때문이’라는 분명한 이유인 것이다.

　그래나, 5월이면 잊혀지지 않는,

　어느 시인의 묘비명에 쓰여 있다는,

　“장미여, 아 순수한 모순이여, 기쁨이여…”라고 읊조려 본다.

 김곳 시인

	김곳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