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천서 태어나 21년째 포항살이
- 군인 남편 따라 신혼은 백령도서
- 사람 이야기와 말들을 詩에 담아
- 시집 외 항해·도보여행기도 펴내
몇 년 전 봄날의 일이다. 코로나19 이전이었다. 지하철에 유치원 원아들이 열 명 정도 들어섰다. 아이들 앞뒤로 교사들과 그날 도우미를 맡은 어머니들도 있었다. 어디 견학이라도 다녀오는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통로에 나란히 앉았고, 교사와 어머니들이 옆에 서서 보호하고 있었다. 지하철에 탄 모든 승객의 눈길이 아이들에게 쏠렸다. 노란색 원복을 입은 아이들이 예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한 아주머니가 감탄을 하며 말했다. “세상에, 이리 예쁜 꽃밭이 또 있을까!” 다른 사람들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필자는 그때 아주머니의 말이 명시의 한 구절처럼 가슴에 박혀 환한 햇살로 퍼져나가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시는 우리의 일상에도 있었다. 권선희 시인의 시집 ‘꽃마차는 울며 간다’를 읽었을 때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인이 걷는 동네의 골목, 지붕을 맞대고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깨알처럼 박힌 시집이다. 권선희 시인을 경북 포항 구룡포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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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룡포에 살고 구룡포를 사랑하는 시인 권선희를 구룡포에서 만났다. 펼쳐진 보리밭 저편에 바다가 보인다. |
■살아있는 말을 마음으로 듣는 시인
권선희 시인은 1998년 ‘포항문학’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구룡포로 간다’ ‘꽃마차는 울며 간다’, 항해기 ‘우리는 한배를 탔다’, 도보여행기 ‘바다를 걷다, 해안누리길’(공저), 르포 ‘예술밥 먹는 사람들’(공저), 해양문화집 ‘뒤안’, 경북 동해 지역 해녀들의 삶과 이야기를 담은 산문집 ‘숨과 숨 사이 해녀가 산다’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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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마차는 울며 간다- 권선희 / 애지 |
권선희 시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구룡포를 돌아보는 동안 “가장 좋아하는 길” “최고의 풍경” “바다를 보기에 최적의 장소” 등의 말을 계속 들었다. 짙푸른 바다가 눈앞으로 쑥 다가오는 내리막길을 달릴 때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가 들려, 시인의 자랑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 길은 시작에 불과했다. 바다를 오른쪽에 두고 달리는 해파랑길이 감싸는 구룡포의 풍경 모두가 아름답고 정겨웠다. 권 시인은 바다를 바라보는 해안의 언덕에서 철따라 피어나는 꽃과 나무 이름까지 줄줄이 읊어댔다. 눈에 보이는 곳마다 가장 좋다는 자랑이 쏟아졌다. 결론은 모두 좋다는 말, 어느 하나만 꼽을 수가 없다는 말이다. 이토록 자신이 사는 구룡포를 사랑하는 권선희 시인은 사실, 춘천에서 태어났다. 군인 남편을 따라 백령도 제주도 진해 광주 등지에서 살다가 2000년에 구룡포에 들어갔다.
권 시인은 백령도에서 신혼생활을 했다. “백령도에서 살던 시절을 생각하면, 사방천지가 시의 소재들이었어요. 그런데 막상 쓰지는 못했죠. 지금 생각하면 아까운 시간들이에요.” 백령도의 신혼 살림집은 아궁이에 장작을 때야 하는 집이었다. “언제 아궁이에 불을 때봤어야죠. 장작 쌓는 것 자체가 서툴렀고, 불씨로 안 읽는 책 한 권을 다 태워도 불이 붙지 않아서 애먹었지요.” 그 이야기 끝에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백령도 장작 아궁이의 불은 힘들게 붙여졌고, 그 불은 구룡포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는 중이다.
권 시인은 현재 살고 있는 구룡포가 가장 좋단다. 그는 구룡포의 동네와 바다, 사람들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그들이 하는 말에 귀 기울이고 있다. 필자는 시인의 마음을 직접 보았다.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진 구만리의 보리밭 옆길로 들어섰을 때였다. 할머니 한 분이 보리밭 주변을 걸어가고 있었다. “저 할머니가 아직도 보리밭을 걸으시네요. 치매를 앓고 있는데, 수시로 저렇게 걷고 있어요. 동네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으니 댁에 모셔다드리곤 하죠.” 할머니 이야기가 이어졌다. 잠시 멈춘 길에서 만난 개 한 마리도 시인을 반겼다. 이번에는 동네 개들의 이야기가 쏟아졌다. 바닷가의 배 수리 공장에서는 배 이름을 쓴 필체 좋은 아저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가만히 듣고 있으니, 시인이 살고 있는 동네의 모든 사연이 씨줄 날줄로 엮이면서 펼쳐졌다. 끝나지 않을 이야기다. 삶은 계속 되니까. 권선희도 그 삶 속의 한 사람이니까. 동네 사람 권선희는 매일 ‘살아있는 말’을 들었고, 마음으로 시를 썼다.
■시집에 담긴 동네와 사람들
시집을 읽으면 바닷가의 동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시 ‘누가 더 불쌍한가’ 전문을 읽어보자. “손 없는 집, 첩 들였다/ 영감 하나에 큰댁 작은댁 함께 살았다/ 작은댁 새끼를 큰댁은 여섯이나 받았다/ 영감이 병들었다/ 큰댁은 젖도 안 뗀 막내까지 여섯을 업고 끌고 부산으로 가버렸다/ 작은댁은 자맥질하며 살았다/ 큰 댁은 광주리 장사로 새끼들 키웠다/ 막내가 장가들 때도 만나지 않았다/ 영감은 죽지 않고 누워 있다” 짧은 시지만 장편소설이 들어있다. 시를 처음 보았을 때는 한 가족의 기막힌 사연이 분명한데도 어쩐지 웃음이 먼저 나왔다. 그리고 지난 시절을 무심하게 툭툭 던지는 할머니와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는 시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권선희의 시를 읽으면서 새삼 ‘시는 시인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말을 옮기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늘 누군가와 이야기를 한다. 누군가의 이야기와 말에 감동을 받았던 순간이 있다. 지하철에서 만난 아이들을 보면서 한 아주머니가 불쑥 내뱉은 “세상에, 이리 예쁜 꽃밭이 또 있을까!”라는 말에 필자가 고개 끄덕였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누구나 시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누구나 시를 쓰는 시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 말들이 흩어지기 전에 받아서 본래의 자리에 고이 모시는 사람이 시인이다. 한 동네에서 오래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사람, 그 말을 ‘잘 받아쓰는’ 사람, 점차 사라지는 지역의 사투리를 ‘잘 기록하는’ 사람. 권선희는 그런 시인이다.
부산으로 돌아와서 “우리 동네 이야기 잘 써주세요”라는 시인의 문자를 받았다. 시인과 시집을 취재하고 온 것이 아니라, 시인이 사는 구룡포의 바닷가 동네를 보고 왔구나 하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권선희 시인은 지금 이 순간에도 동네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것이다. 살아있는 말을 듣고, 그 말을 받아쓰고, 오래 기억되도록 시로 남기기 위해 부지런히 동네 골목골목과 바닷가를 걸어 다니고 있을 시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