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역없이 고난도 몸개그 열연
성룡식 액션 활극의 원조는 1920년대 무성 코미디 영화? 가당치 않은 말처럼 들리겠지만, 타계 50주기를 맞은 해럴드 로이드(1893년 4월 20일~1971년 3월 8일)의 출연작을 보면 생각이 바뀔 지도 모르겠다. 대역배우 없이 전차로 도심 한가운데를 질주하고 고층 건물 꼭대기를 오르는 그의 스턴트 연기를 보면 절로 손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감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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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에서 오는 16일까지 열리는 해럴드 로이드 50주기 특별전 상영작 ‘마침내 안전(1923)’. 영화의전당 제공 |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에서 오는 16일까지 ‘위대한 희극인을 환대하라. 해럴드 로이드 50주기 특별전’이 열린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로이드의 무성 영화 대표작 17편과 유성 코미디 작품 2편 등 19편을 소개한다. 해럴드 로이드는 찰리 채플린, 버스터 키튼과 함께 1920년대 무성 코미디 영화 시대를 풍미한 배우로, 뿔테 안경과 밀짚모자 깔끔한 차림새를 트레이드 마크 삼아 영화 세계를 창조했다. 채플린이나 키튼과 달리 자신의 연출작이 적었던 탓에 앞의 배우들보다 낮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주인공의 역량과 창의성이 작품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무성 코미디 영화에서 엔딩 크레딧에 연출자로 이름을 올리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tvN 예능 ‘유퀴즈 온 더 블럭’에서 유재석이 없는 장면을 상상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로이드가 출연한 작품은 오로지 그의 몸짓과 개인기가 있어야 가능했다.
로이드가 저평가된 데는 그의 ‘평범함’도 한 몫 했다. 항상 그는 관객과 비슷한 위치의 세속적 인물을 연기했다. 채플린이 사회 밖 존재를 연기해 ‘작은 떠돌이(Little tramp)’로 불리고, 키튼이 세속 사회에 무관심한 ‘무심한 무표정’으로 특징지어졌던 것과 다르다. 로이드는 할머니의 사랑으로 부랑자에 맞서 용기를 내는 소심한 청년 역을 소화한 ‘할머니의 아이(1922)’, 어수룩한 막내아들이 우여곡절 끝에 사랑을 쟁취하는 과정을 담은 코미디 ‘키드 브라더(1927)’ 등의 작품에서 돈과 사랑, 성공을 갈망하는 보통사람을 연기했다. 이런 이유로 당시 비평가들은 로이드의 연기에 풍자나 사회 비판 의식이 적다고 봤다. 하지만 훗날 평단은 로이드가 세속적이고 평범한 욕망을 가진 역할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낸 ‘위대한 평범 씨(Mr. Everage)’라고 평가한다.
로이드의 이런 평범함은 뜻밖에 슬랩스틱의 묘미와 이어진다. 관객은 ‘마침내 안전(1923)’에서 안전 장비도 체력적 준비도 안 된 안경잡이 회사원이 고층 건물 위를 아슬아슬하게 올라가 시계탑에 매달리는 모습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며 스릴을 느낀다. 이 과정에서 로이드는 대역 배우 없이 자동차 뒤편에 매달리거나 고층 건물의 난간을 기어오르는 ‘성룡식 액션’을 구사한다. 가장 성공한 영화 ‘신입생(1925)’은 럭비를 전혀 할 줄 모르는 어리바리한 신입생이 대학 럭비 시합에서 영웅이 되는 이야기를 다뤘다. 육중한 선수들 사이에서 넘어지고 엎어지다가 팀의 우승을 만들어내는 장면은 무성영화 시대의 슬랩스틱 진수를 보여준다. ‘스피디(1928)’는 오늘날 관객이 봐도 아찔한 액션을 보여준다. 뉴욕 한복판에서 전차를 몰고 곳곳을 질주하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1920년대에 저 장면을 어떻게 찍었을까 싶은 생각이 절로 난다.
시네마테크 관계자는 “구두 판매원이 가죽 업계의 거물 행세를 하며 사랑을 쟁취하려 애쓰는 ‘발이 먼저야’ 등 유성영화도 준비했다. 로이드의 단편영화까지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승륜 기자 thinkboy7@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