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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휘의 시네필] 유목 ‘당한’ 사람들 시대의 우울을 담다

영화 ‘노매드랜드’

  • 조휘재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1-04-22 19:32:40
  •  |   본지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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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매드랜드’(2020)의 카메라는 광야를 떠도는 유목민(nomad)이 살아가는 모습과 풍경을 좇는다. 달라진 건 이 현대의 유목민들은 말과 소 떼를 이끌고 초원을 거닐던 카우보이가 아니라, 본디 정주할 집과 가족을 갖고 있다가 거리로 내몰린 이들이라는 사실이다. 유목민으로 태어나지도, 자유를 찾아 길 위의 삶을 택한 것도 아닌, 오로지 유목을 ‘당하도록’ 강요당한 사람들. 미국의 건국신화라 할 서부극이 무법천지 서부를 문명과 질서의 도시로 바꾸는 프론티어의 서사였다면, 이 한 편의 로드무비는 문명사회의 정상성, 도시로부터 바깥으로 밀려 나가, 서부극의 원형적 공간으로 돌아가 버리는 역사의 기묘한 역전을 담는다.
영화 ‘노매드랜드’ 스틸컷.
수입이 없거나 임금으로는 치솟는 집세와 대출금을 감당하기 어려워진 노인들은 집을 버린 대신 밴이나 캠핑차를 주거 공간으로 꾸미고, 아마존 창고, 사탕무 가공공장 등 저임금 단기직 일자리를 전전하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2017년 출간된 제시카 브루더의 논픽션 ‘노매드랜드:21세기 미국에서 살아남는 법’은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의 여파로 경제 불황이 닥치자, 중산층마저도 길 위의 삶을 택하게 되는 미국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포착한 바 있다.

감독이자 각본가로서 클로이 자오는 논픽션을 극 영화로 옮김에 있어 직면하게 되는 함정을 영리하게 피해간다. 각양각색의 사연들을 묶어놓은 책을 옮기자면 옴니버스 구성을 취하기 쉬운데, 감독은 이야기를 병렬적으로 나열하는 대신 펀이라는 주인공을 만들어 관객의 시점을 대신하게 하고, 중심축이 없던 이야기에 구심력을 부여한다. 이건 각색이라기보다는 파괴적 재창조에 가깝다.

석고보드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네바다주 엠파이어는 유령도시가 되고, 남편과 직장을 잃은 펀은 흰색 밴을 몰고 갖가지 일자리를 전전한다. 방랑하는 펀의 여정을 따라가는 도중에 우리는 세계의 실상을 깨닫게 되는 순간을 몇 차례 마주하게 된다. 밴이 고장 나자 카센터를 찾은 펀은 2300달러의 수리비 청구서를 두고 지불할 돈이 없어 막막한 신세가 된다. 과거의 유목민은 말을 방목하며 삶을 영위하기 위한 생산수단을 자급할 수 있었지만, 현대의 유목민은 필요한 기술과 장치를 전유하는 자본과 국가에 예속될 수밖에 없다.

언니의 남편과 이웃이 부동산 투기로 재산을 증식한 이야기를 자랑스레 떠들자 펀은 항변한다. “사람들에게 전 재산을 투자해서 빚쟁이가 되고, 자기들이 감당할 수 없는 집을 사라고 부추기는 것이냐?” 자본주의는 삶의 안정을 뒤흔들어 사회로부터 도태된, ‘탈영토화’ 당한 유목민들을 대거 만들어내고, 이들을 ‘자유롭지만 헐벗었기에 자신의 노동능력을 팔아야 하는 노동자’로 전락시켜 자신의 필요에 복무시킨다.

펀과 방랑 생활을 함께하다 자식들의 집으로 들어간 데이브를 통해 영화는 한순간, 화목한 집과 가족주의라는 미국적 삶의 이상을 재현한다. 욕망이란 곧 현실의 결핍에 대한 반증이다. 이 장면은 오늘날 평범한 미국인들이 느끼는 상실감과 안정된 삶을 희구하는 심정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본이라는 이름의 군주 아래 복속된 포스트모던의 세계는 농노제와 다를 바 없는 새로운 중세가 돼가고 있다. ‘노매드랜드’는 이러한 시대의 우울을 정확히 소묘해낸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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