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곳의, 詩와 그곳 (14) 강영환 시인 ‘얼굴 없는 성자’

　얼굴 없는 성자聖者

- 강영환

　지하철 초량역 7번 출입구에는 성자가 살았다

　종이컵을 비스듬히 받들고 엎드려 남은 손으로 끌어 모다

　쥔 옷을 머리끝까지 덮어쓴 채

　품에 간직한 미명은 계단을 오르지도 내려서지도 않았다

　지나는 바람이 끌어다 모은 나뭇잎 부스러기가 곁에서 바스

　락 거려도 얼굴을 가린 그늘은 벗겨지지 않았다

　그는 소돔을 벌하러 온 천사 혹은 악마?

　묵은 종이컵이 그를 버린 것인지 세상을 버린 것인지 별스

　런 추측도, 동정심도 없이 행인들이 갔다

　마주치지 않아 편안한 눈은 종이컵에 담겨진 동전 몇 개에

도 눈시울 붉게 저렸다

　 시집 ‘물금나루’에서

도시철도 이미지 컷.

<내 느낌으로 바라보기〉

　지하철 초량역은 1987년에 개통한 도시철도 1호선 구간역이다. 이 역은 12군데 출입구가 있으며 사방팔방 초량역 주변에 형성된 시설들만으로도 한 때의 교통이나 상업요충지였음을 추측할 수 있다. 멀지 않은 곳에 17세기 조선 시대에 일본과의 교역을 위해 설치했던 상관 초량왜관은 다방면으로 많은 영향을 주었다. 부산지방국토관리청, 제3부두, 일본국총영사관, 몽골 명예영사관, 프랑스문화원, 필리핀문화원 등이 있으며 ‘초량역 7번 출입구’쪽은 일본국총영사관, 초량3동 주민센터와 가깝다.

　또한 도시재생 프로그램을 통해 관광 명소로 거듭난 초량 이바구길의 168계단은 피란민의 깊은 애환이 스민 곳으로 지금은 모노레일이 설치되어 초량 일대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성인이나 성자를 만나는 일이란 쉽지 않다. 시인은 책이나 이야기 속이 아닌 현실 삶 속에 ‘성자가 살았다.’고 말해준다. 지하철역 출입구를 지나친 적 있다면 ‘종이컵을’ ‘받들고 엎드려’ ‘모다 쥔 옷을 머리끝까지 덮어쓴’ 누추한 사람을 본 적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엎드려 있는 ‘성자’를 알아채지는 못했다. 시 속 화자처럼 ‘계단을 오르지도 내려서지도 않’은 어두운 품까지도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했다.

　나뭇잎을 ‘끌어다 모은’ ‘지나는 바람’이나 ‘곁에서 바스락 거리는 나뭇잎 부스러기’의 존재와 동일시되어야 성자를 알아 볼 수 있으니. 성자의 ‘얼굴을 가린 그늘’은 죄가 죄인 줄 모르는 우리 현대인의 죄일 것이다. 구약성경 창세기에 등장하는 도시 소돔의 멸망은 악하고 부패한 인간들에게 내린 하나님의 벌이었다. 나는 ’동정심도 없이 지나가는’ ‘행인들’ 중 한 사람이었다. ‘동전 몇 개‘가 고작인 ’묵은 종이컵‘을 바라보며 ’눈시울 붉게 저‘미지는 않더라도 차가운 바닥에 엎드린 누추한 누군가의 ’얼굴을 가린 그늘‘을 조금이라도 벗겨줄 수 있다면.김곳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