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설 수 없는 아픔

                 　 - 조창용





　아물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진물 나는 세상을 살고 있다

　내 운명과 스스로 피 터지는 싸움질을 하면서

　가는 길마다

　살 찢는 눈길들에 서러워서, 서러워서

　진저리치다 고개를 떨굴 때면

　내 발길 앞에는

　천 길 깎아지른 낭떠러지 벼랑 끝이었다



　때로는 내 삶이 더럽고 원수 같아서

　차라리,

　나를 죽이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혼자서는 스스로 설 수 없는 지게 같은 삶을

　천형으로 알고 살아왔지만 지금도

　일찍이 세상 떠난 내 부모의 죄도 아니고

　나의 죄도 아니고 싶다

　그저 세월의 바람이고

　이 세상 사는 동안 잠시의 고통이고 싶을 뿐이다

　조용히 번져가는 노을의 저녁 길에

　목발의 한 사내가 지겟작대기 걸음으로

　세월의 언덕을 내려가고 있다.







　 시집, ‘혼자 설 수 없는 아픔’에서



<내 느낌으로 바라보기>



　 부산 남구 문현교차로에서 대연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마을을 지겟골(戶谷)이라 했다. 대연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는 높고, 산이 양쪽으로 겹쳐 있어 마치 집밖에서 지게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가는 형세와 같아 보인다고 붙인 이름이다.

　시에 나오는 ‘지게’와 의미는 다르지만 이 고개는 경사가 급하고 상당히 높았으므로 많은 나무꾼이 지게를 지고 힘겹게 다녔을 것이다. 시 ‘혼자 설 수 없는 아픔’도 그런 힘겨운 세상살이에 대한 시다.

　의지할 지겟작대기가 꼭 필요한 우리 곁 ‘지게’들에게 공감의 위로를 던지며 내 무게의 불평을 누르게도 한다. 인간의 고통과 형벌로 자기 잘못과 상관없이, 고통뿐인 삶이 주어진다면 숙명이라 받아들여야만 하는 걸까,

　알고 보면 장애를 가졌지만 세상을 밝힌 뛰어난 인물이 손꼽히게 있다. 조선 제4대 왕인 세종은 평생 소갈증과 풍습병 등 많은 질병에 시달렸으며 특히 시각장애로 고생했다. 순종은 자폐증을 갖고 있었으나 얼굴에 표정이 거의 없었고 주변 일에도 관심이 없었는데 사물의 형태나 이름에 대해 놀라운 기억력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미국 싱어송라이터이자 프로듀서인 스티비 원더는 미숙아로 태어나 인큐베이터에서의 산소 과다 공급으로 시력을 잃었지만 장애를 극복한 세계적 음악가이며 사회운동가이다.

　누군가에게 세상은 ‘아물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스스로 피 터지는 싸움질을 하면서’ 가야 하는 ‘진물 나는 세상’이며 ‘운명’의 길이다. ‘혼자 설 수 없’기에 ‘발길 앞’ ‘천 길 깎아지른 낭떠러지 벼랑 끝’을 마주해야만 했던 숱한 순간은 역설적이게도 ‘고통’을 품고 ‘조용히 번져’ 조개 속 진주로 자랐을 것이다.

　비록 타인과 달라서 받는 상처, ‘살 찢는 눈길들에 서러워서’ ‘나를 죽이고 싶을 때’가 있었겠지만 시적 화자는 자탄에만 머물지 않는다. ‘부모의 죄도 아니고’ 자신의 ‘죄도 아’닌 현실을, ‘목발’이라는 ‘지겟작대기’를 끌어와 의연하게 세상을 걸어 나간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장애를 가진 뛰어난 인물 중 남에게서 수모를 받을 만한 결함을 가진 자는 누구든지 그 모멸감에서 자신을 구출하고, 해방하고 싶은 끊임없는 충동을 가지며 장애인이 대담한 까닭이라 했다.

　꽃 한 송이 피는 것도 고통 없이 거저 오는 것이 없다 하였는데 천형이라는 고통을 이겨내며 평범하지 않은 길을 걸어 나간 이의 아우라는 분명 눈부신 이유가 있다.김곳 시인

	부산 중구 소라계단 앞 지게꾼 조형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