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시스’를 써낸 그 손에 제가 키스해도 될까요?” 스위스 취리히에 머물던 조이스에게 한 젊은이가 다가와 말을 건넸다. “안 돼. 이 손은 다른 일도 많이 했거든.” 머리칼이 희끗희끗한 대작가가 응수했다. ‘율리시스’ 외 다른 작품도 썼다는 항변 섞인 농담. 글쓰기에 순정을 바쳤다는 긍지, 자신을 잘 몰라주는 세상을 향한 야속함이 배었다.
이번은 기자 질문. “1차 세계대전(1914~1918년)엔 무얼 했나요?” 유명 문인들이 참전했는데 당신은 도망치지 않았느냐는 언중유골 물음이었다. “난 ‘율리시스’를 쓰기 시작했소. 그러는 당신은 뭘 했소?” 1914년 조이스는 창작 활화산이었다. ‘율리시스’를 집필하기 시작했고, ‘더블린사람들’을 펴냈고, ‘젊은 예술가의 초상’ 잡지 연재에 시동을 걸었다.
위 두 사례로 볼 때 조이스는 오만한 작가처럼 보이지만, 속마음은 여렸다. 그는 일부러 자신을 낮추는 해학을 좋아했지만 이해하는 이가 드물었다. 상류 인사보다 필부필부에 정을 더 주는 성격. 미국은 그에게 호의를 보였지만, 본인은 싫어했다. 그는 외로운 망명 작가였다.
조이스는 세계 각국 문학 시장에 상장된 우량주. ‘피네건의 경야’나 ‘율리시스’라는 주식을 사들이는 개미가 늘어간다. 학술회 회원, 작품 완독 클럽 가입자, 혼자서 끙끙대며 읽는 이는 조이스 주주다.
조이스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1882년 2월 2일 10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지역에서 예수회 계열인 초등·중등학교를 다닌 후 그곳 대학에 진학해 졸업했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같은 외국에서 주로 살면서 고국을 평생 5번 찾았다. 1941년 1월 13일 58세로 병사해 스위스 취리히에 묻혔다. 현재 아일랜드 의회는 조이스 시신을 국내로 이장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