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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국과 함께하는 명작 고전 산책 <14> 젊은 예술가의 초상-제임스 조이스 (1882~1941)

가정·국가·종교의 굴레 벗어던진 소년 … 작가의 ‘청춘 자화상’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1-03-11 19:23:32
  •  |   본지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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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일랜드 가톨릭집안 출신으로
- 왜소한 흙수저 소년 ‘디덜러스’
- 집·학교·성당서 매번 반항하며
- 정신적으로 커나가는 모습 그려
- 조이스 본인의 자전적 성장소설

-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써내려간
- 섬세한 문체와 플래시백 서술
- 실험적 글쓰기 기법 창조 호평
- 1916년 출간 당시엔 외면받아

르네 데카르트 명제를 조이스가 인용한다면? “나는 부정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남자지만 듣도 보도 못한, 영원히 늙지 않는 생명체를 낳았다. 자유를 갈구하는 욕망은 참 강렬했다, 이 아일랜드 소설가. 그 삶이 예술이었다. 이제 그는 세계 수많은 ‘영희와 철수’를 불러들인다.
   
제임스 조이스는 문화가 됐다. 아일랜드 더블린에서는 매년 6월 16일 ‘블룸스데이’란 조이스 축제를 연다. 조이스 분장(가운데) 행렬이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날아오르자.” 소설 주인공처럼 현실 속 청년 조이스는 고민이 많았다. 평범한 아들이 되기 싫었다. 억압에 대드는 천성이 불을 붙였다. “자유를 얻으려면 뼈아픈 대가를 치러야 하겠지.” 그는 곁에 두려는 어머니를 뿌리쳤다. 우정까지 버렸으니 차가우면서 뜨거운 심장을 가진 작가. 문예 부흥을 내세운 아일랜드 민족주의도 그에겐 속박일 뿐. 영혼을 달구었던 가톨릭 신앙도 지웠다. ‘이 세상 모든 것’을 부정해야 내가 새로이 태어난다고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정신을 벼리는 대장간 주인이 되련다’고 썼다. 조국을 떠날 때 빌었다. “다이달로스여. 저에게 무운을. 저는 이제 세상과 맞서려 나갑니다.” 소설 내용이 실제 조이스 삶. 그가 살았던 지역, 다녔던 학교가 소설 속에 그대로 나온다.

   
이 장편소설은 난해한 조이스 작품 중 무난히 읽힌다. 청년기를 보낸 독자는 가슴 한편이 아릿하다. 지나간 추억이 파노라마처럼 몰려오기 때문. 우리는 디덜러스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제만 다를 뿐이다. ‘호밀밭의 파수꾼’(데이비드 샐린저)과 함께 성장소설을 대표한다.

스티븐 디덜러스. 디덜러스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 나오는 주인공의 성(姓)이자 상징어. 그리스신화 속 다이달로스의 영어 이름이 디덜러스. 조이스는 한때 이 이름을 필명으로 삼을 정도로 애착을 보였다.

스테파노는 그리스도교에서 최초로 순교한 성인이다. 영어 이름은 스티븐. 이 이름을 가진 주인공은 뜨거운 신앙체다. 성씨와 연결하면 신앙과 사투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이래서 스티븐 디덜러스는 고유명사 아닌 일반명사다. 비상(飛翔) 열망 청춘과 동의어다.

   
제임스 조이스 동상.
이 고전은 1914년 ‘에고이스트’라는 잡지에 먼저 연재됐다. 6세 디덜러스에게 아버지가 들려주는 전래동화 얘기로 소설이 시작한다. 얼핏 보면 평범한 장면이다. 조이스는 여기 복선을 깔았다. 뭔가 불편하게 느꼈다면 예리한 독자다. 가톨릭 집안 자녀인 디덜러스는 개신교 소녀와 결혼하겠다고 다짐한다. 아버지는 정신이 불안해 보이는 인물로 그려 놓았다. 종교·부모와 불화하는 주인공 행로를 첫머리에 암시했다.

책 명성은 엄청난 사건 열거로 얻은 게 아니다. 1장 중 사건이라고 해봤자 초등생 디덜러스가 클롱고스 우드 칼리지 교장을 찾아가 학감 신부가 부당하게 자신을 매질했다고 고발한 정도다. 마지막 5장까지 고만고만하다. 당대 최고 시인이 누구인가를 놓고 논쟁하다가 친구들에게 얻어맞거나, 장학금으로 창녀에게 동정을 떼고 화대를 치른 일도 대사건은 아니다.

청춘 일기인 이 작품을 걸작으로 밀어 올린 건 공명이 큰 탁월한 심리 묘사. 성인 독자라면 ‘그땐 그랬지’하며 책을 덮고 눈을 감는다. 몸집이 왜소한 ‘흙수저’ 주인공 디덜러스가 그려내는 정신 성장 곡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에 닿는다. 청년은 디덜러스처럼 불쑥 떠나고 싶어져 고함칠지도 모른다. “그래, 한번 해보자.”

저자는 녹내장 수술을 받을 정도로 시력이 나빴다(주인공 디덜러스도 안경잡이). 한 감각이 약해지면 다른 감각이 발달한다. 촉각 청각 미각 후각에 예민한 조이스 필체를 느껴보라. 색다른 문장이 아름답다. ‘오줌 눈 잠자리는 싸늘했고… 요에선 고약한 냄새가 났다’. 어두움을 시각이 아닌 촉각 후각으로 표현한다. ‘채플(기도하는 방)에서는 싸늘한 밤공기 냄새가 났다’. 모더니즘 대표 문장으로 둬도 손색없다. 신체 결핍이 때론 글쓰기에 도움이 되다니! ‘비우면 채워진다’고 했던가.

주인공 ‘내적 독백’ 즉 1인칭이 간간이 삽입된 3인칭 소설이란 점도 기억하자. ‘내적 독백’은 모더니즘 소설 기법. ‘의식의 흐름’을 말한다. ‘그는 자기가 작고 약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언제쯤 시반(詩班)이나 수사학반에 속한 애들처럼 될 수 있을까?’ 조이스는 실험 같은 글쓰기 기법을 창조해 성공한 작가다. 유아 초등 중등 대학교 때까지 디덜러스 행적이 연대기 순으로 이어지지만, 그 나열이 엄격하지는 않다. 잘 흘러가다 갑자기 과거 시제로 가는 플래시백 서술은 현대 작가처럼 느끼게 한다.

극치는 디덜러스가 바닷가에서 아름다운 소녀를 만난 후 환희를 느끼는 장면이다. 신성 모독 논란을 부른 대목이기도 하다. 소녀가 성모를 나타낸다고 해석해서이다. ‘그녀의 눈이 그를 불렀고 그의 영혼은 그 부름을 받고 뛰었다. 살며, 잘못을 저지르고, 타락해 보고, 승리하고, 삶에서 삶을 창조해 보는 거다!’ 조이스는 이런 상황을 ‘어피퍼니(epiphany)’라고 설명했다. 직관이나 대오각성을 통해 깨달음이 분수처럼 분출하는 순간. 그는 “어피퍼니를 기록하는 게 작가 소임이다”고 했다.

문장이 섬세하다. ‘오른쪽 눈을 꼭 감고 왼쪽 눈으로 들여다보아야 겨우 Z라는 필기체 대문자의 구부러진 부분을 알아낼 수 있었다’. 필력은 3장에서 대부분 분량을 차지한, 피정 기간 초청된 신부가 벨비디어 칼리지(중등학교) 학생들에게 지옥을 강론하는 대목으로 확인된다. 그게 얼마나 강렬했던지 이를 경청한 디덜러스는 엄청난 죄의식에 시달리다 고해실을 찾아 사창가에 간 사실을 털어놓는다. 조이스는 지옥을 다녀온 걸까.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길고도 실감 나게 쓸 수가 없다.

그는 이 작품은 1916년 34세 때 출간했다. 자전소설을 발표하기엔 젊다. ‘모난 돌’인 자신을 쪼는 세상을 이해시키려 한 게 아닐까. 아일랜드 출판사들은 조이스를 홀대했다. 단편집 ‘더블린사람들’을 쉽게 출간해주지 않았다. 더블린 사회 치부를 까발린 이 책이 불편했기 때문. 6년 뒤 ‘율리시스’를 펴낼 때는 상황이 더 나빴다. 조이스는 ‘율리시스’를 프랑스 파리에서 인쇄했다. 영미에선 책 내용이 음란·난해하다며 금서로 묶었다. 고국은 가장 늦게 금서 지정을 해제했다.

조이스는 타고난 반골이었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인간 성격은 태아 때부터 일정한 특징을 띠면서 성장한다.” 그는 ‘영혼이 성장해 아름답고 신비한 불멸의 새 비상체를 오만하게 창조’하길 갈망했다. 자신을 극한으로 밀어붙이고, 외국에서 평생 외롭게 떠돌았다. 조이스가 아일랜드에서 안주하며 둥글둥글 살았다면 오늘 우리는 이 고전을 만났을까.

   
조이스한테 한 수 배웠다고 고백했던 미국 소설가 윌리엄 포크너(1897~1962), 조이스를 후원했던 동포 시인 윌리엄 예이츠(1865~1939)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조이스는 무관으로 남았다. 다이달로스 탈출은 아들 이카로스가 바다로 추락해 미완에 그쳤다. 제임스 조이스는 세계 문학이라는 창공을 향해 날아올라 자유롭게 활공하는 중이다. 세계 독자가 그를 올려다보는데 노벨상을 못 받은 게 대순가. 오히려 조이스에 더 어울린다.

서평가·세상관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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