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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의 부산 가요 이야기 <18> 청춘풍속도 담긴 ‘청춘등대’

파도치는 등대 아래 아날로그 시대 청춘의 사랑 이야기

  • 이동순 시인·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
  •  |   입력 : 2021-02-07 19:13:23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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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부 시선으로부터 완벽히 차단
- 옛 시절 밀회 즐기기 최적의 장소
- 부산 출신 천봉 작사·한복남 작곡
- 핑크색 추억의 노래 큰 인기 얻어

‘등대 같은 사람’, 혹은 ‘당신은 내 삶의 등대’란 말을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이 말에서 등대는 일종의 멘토(mentor)의 뜻이 아닐까 한다. 멘토는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을 지도하고 조언해 주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니 등대가 타인의 삶에서 멘토의 역할을 뜻하는 상징인 것은 분명하다. 등대는 오늘밤에도 우리 국토의 밤바다 해안에 우뚝 선 채 아침이 올 때까지 휘황한 불빛을 밝히며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과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가 마주 보고 선 부산 기장군 동백항 풍경. 한때 등대 아래는 젊은 남녀가 사랑을 속삭이는 장소였다. 국제신문DB
전국에서 등대가 가장 많이 설치된 곳은 어디일까? 단연 부산이 으뜸이다. 유무인 등대를 합해서 도합 65곳이나 된다고 한다. 인천이 35곳, 울산이 49곳이라 하니 부산은 가히 등대의 도시라 할 만하다. 동길산 시인이 펴낸 ‘시가 있는 등대이야기’는 부산지역 해안에 설치된 등대지도를 소개하면서 이 가운데 30곳을 해설하고 있다. 그 이름들도 하나같이 정겹다. 오륙도등대 송정등대 민락등대 청사포등대 길천등대 다대포등대 하리등대 미포등대 월전등대 학리등대 남부민등대 신당등대 월내등대 젖병등대 광계말등대 두호등대 영도등대 대변등대 용두산등대 칠암등대 용호등대 송도등대 수영만등대 이동등대 가덕도등대 대항등대 낙동강하구등대 신전등대 누리마루등대 제뢰등대 등.

■전국에서 등대 가장 많은 곳, 부산

   
손인호의 ‘청춘등대’가 수록된 앨범.
이 여러 등대를 직접 투어코스로 다녀보면 제각기 조형적 미감을 지닌 구조물로 만들어져 찾는 이에게 다양한 즐거움을 준다. 등대의 빛깔은 흰색과 붉은색이 가장 많다. 선박이 드나드는 항만을 기준으로 볼 때 입구 오른편엔 빨간색 등대, 왼편에는 하얀색 등대가 세워져 있다. 빨간 등대는 선박이 표지 왼쪽으로만 항해할 수 있음을 표시하는 ‘우현표지’, 하얀 등대는 오른쪽으로만 항해할 수 있음을 표시하는 ‘좌현표지’임을 가리킨다. 이것은 모두 국제항로표지의 기준에 따른 것이다. 등대지기는 정식명칭이 아니며 공식명칭은 항로표지관리원이다.

문학작품에도 등대가 다수 등장하지만 대중가요에서 등대는 그 고유의 정서를 지닌 대상물로 자주 활용되었다. 등대를 대중가요 테마로 쓴 최초의 노래는 ‘등대불과 개나리(이난영, 1934)’가 아닌가 한다. 이후로 ‘추억의 등대(이난영, 1936)’, ‘눈물 어린 등대(채규엽, 1937)’, ‘포구의 인사(남인수, 1941)’ 등이 발표되었고, 해방 이후로는 ‘청춘등대(손인호)’, ‘등대수 일기(이청봉)’, ‘등대불(최무룡)’, ‘등대지기(오기택)’, ‘등대섬 처녀(김부자)’ 등으로 그 맥을 잇고 있다. 이 가운데서 우리는 1957년 부산 도미도레코드에서 발표된 ‘청춘등대’(천봉 작사, 한복남 작곡, 손인호 노래)의 노랫말에 대해 주목 해보고자 한다.



파도치는 등대 아래 이 밤도 둘이 만나/ 바람에 검은 머리 휘날리면서/ 하모니카 내가 불고 그대는 노래 불러/ 항구에서 맺은 사랑 등댓불 그림자에/ 아 정은 깊어 가더라

깜빡이는 등댓불에 항구를 찾아드는/ 타국선 고동소리 들리어오네/ 손을 잡고 안개 속을 그대와 걸어갈 때/ 등대에서 놀던 사랑 영원히 잊지 못해/ 아 정은 깊어 가더라

-‘청춘등대’ 전문

두 청춘남녀 만남의 장소가 왜 하필이면 ‘파도치는 등대 아래’였을까? 먼 바다를 향해 휘황한 불빛을 내쏘는 등대 아래쪽은 다른 곳보다 유난히 어둡고 캄캄했을 터이다. 그 때문에 외부 시선으로부터 완벽한 차단이 될 수 있었으리라. 게다가 파도소리까지 들리니 사랑의 밀어를 도란도란 속삭이기에 이보다 더 좋은 장소가 어디 있었을까?

■노래 소재가 된 사랑의 장소

젊은 한때 사랑하던 사람과 방파제 끝으로 걸어가 그곳 등대 밑에서 서로 다정히 어깨를 기대고 앉아 철썩이는 파도소리 들으며 무작정 밤바다를 바라보던 청년기의 핑크색 추억을 가슴 속에 감추고 살아온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연인과 단둘이어서 우선 좋았고, 호젓한 등대 옆이라 더욱 가슴 설레었다. 세월은 강물처럼 저만치 흘러가버렸는데 그날의 살뜰한 추억은 여전히 가슴 속에 살아서 숨 쉬고 있다. 그렇게 등대 곁에서 속삭이던 사랑은 이제 어디로 갔는가?

아날로그 시대의 사랑법은 ‘청춘등대’ 노랫말에서 보듯 대개 날 저문 뒤의 등대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졌고, 그곳이 최적의 장소였다. 갖고 간 하모니카도 불고 악기연주에 맞춰 그녀가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밤은 점점 깊어가고 등댓불은 쉴 새 없이 깜빡이는데, 먼 항로를 시름없이 달려온 외국 국적의 화물선이 부산항으로 입항의 뱃고동을 뿌웅 길게 울리며 천천히 들어오는 광경이 보인다. 밤바람에 한기가 느껴질 때쯤 두 사람은 비로소 자리에서 일어나 서로의 허리를 부둥켜안은 채 방파제를 걸어 나온다. 그 시절 추억을 떠올리니 마치 어제 일인 듯 선명한 스크린의 한 장면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이처럼 등대는 당시 청춘남녀들에게 사랑을 속삭이기에 가장 알맞은 최적의 성지(聖地)였다. 아코디언으로 연주하면 더욱 그 분위기가 경쾌하게 살아나는 노래 ‘청춘등대’에는 6.25전쟁 회복기의 청춘 풍속도가 잘 담겨져 있다.

작사가 천봉(千峰, 1923~1983)의 본명은 천상률(千相律)이다. 부산 초장동 출생으로 부모는 자갈치시장에서 얼음판매상으로 일하였다. 청년기에 경찰관으로 복무하다가 영남극장 사업부로 옮겨 영화, 악극단공연 섭외 담당으로 전직하였다. 그 무렵 작곡가 한복남을 만나 의기투합, 작사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후 ‘앵두나무 처녀’, ‘엽전 열닷냥’, ‘동백꽃 일기’, ‘전화통신’, ‘온천의 하룻밤’, ‘부산행진곡’ 등의 히트곡을 발표했다. 특히 한복남과 명콤비가 되어 다수의 작품이 나왔다. 부산을 테마로 한 노래를 많이 썼고, 부산연예협회에서 다년간 활동하며 ‘부산연예계의 대부’란 칭호를 들을 만큼 부산 대중문화 발전을 위해 열정적 노력을 쏟았다.

   
작곡가 한복남(韓福男, 1919~1991)은 본명이 한영순(韓榮淳)으로 평남 안주 출생이다. 평양에서 양복재단사로 일하다가 6·25전쟁이 발발 후 부산으로 내려와 피란생활을 하였다.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 작곡과 가창에 능했고, 이를 바탕으로 부산 서구 아미동에서 도미도레코드사를 설립하여 다수의 축음기음반을 발매했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녹음장비를 구입, 거의 가내수공업적 방식으로 제작한 음반을 자전거에 싣고 국제시장 주변을 종일토록 돌면서 축음기바늘과 함께 직접 판매했다고 한다. 피란 시절의 슬픈 전설로 전해오는 이야기 중 한 토막이다.

시인·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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