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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98> 통영음식문화연구소 대표 이상희의 ‘통영백미’

1월 윤이상이 즐긴 방풍탕평채 … 열두 달 ‘통영 밥상’을 다 모았다

  • 박현주 책 칼럼니스트
  •  |   입력 : 2021-01-17 19:25:29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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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리연구가이자 사진작가 겸해
- 1984년 반려자 만나 통영 정착
- 매일 새벽시장서 제철재료 찾고
- 소반 등 수집하며 식문화도 연구

- 월별로 지역 먹거리 소개하면서
- 현지인의 삶·역사·조리법 담아
- 시장·섬 풍경 등 촬영해 곁들여

코로나 19는 좀처럼 인간을 봐줄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여행을 가고, 그 지역에서만 먹을 수 있는 제철음식을 맛보는 일이 얼마나 고마운 경험이었는지 요즘처럼 뼈저리게 느껴본 적이 없다. 결코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이 아니었다. 

“아, 옛날이여!”라고 아쉬워하는 중에 ‘통영백미’라는 책을 접했다. 제목만 들어도 벌써 군침이 돈다. 몇 번 가보았던 통영의 바닷가도 눈에 훤히 보이는 듯했다. 통영의 바닷가에서 먹었던 멍게, 음식을 좀 안다는 선배를 따라 간 시장 안 작은 식당에서 먹었던 졸복국의 기억도 되살아났다. 제목 아래 달린 부제 ‘기다림 속에 찾아오는 사계절 바다의 맛’이라는 문장이 마음을 확 낚아챘다. 경남 통영에서 저자 이상희 씨를 만났다. 
   
경남 통영 강구안길의 통영음식문화연구소에서 만난 이상희 씨. 그는 책 ‘통영백미’의 저자다.
■사진으로 보고, 글로 읽는 통영 음식

통영터미널에 도착하면 반드시 들러야 하는 곳이 있다. 하차장 바로 앞에 코로나 방역의 일환으로 설치한 무균실이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승객들은 그곳에 들어가야 한다. 무균실 부스의 문을 열고 15초 정도 머물렀다가 반대편 문을 나서는 방식이다. 잠시 머무를 뿐이었는데, 어쩐지 마음은 한결 편해졌다. 버스를 타고 중앙동으로 이동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로 꼽히는 강구안길이 있고, 문화마당 뒷골목에 이상희 씨의 통영음식문화연구소가 있다. 

이상희 씨는 1964년 충청도 조치원에서 태어났다. 일찍부터 음식을 배웠다. 서울에서 만두를 배우고 돌아온 아들을 위해 집에서 만두가게를 내주었을 때가 열여덟 되던 해였다. 그런데 손님보다 친구들이 더 많이 찾아와 제대로 되질 않았다. 이상희 씨는 가게를 그만두고 우리나라 곳곳의 고급요릿집을 다니며 음식을 배웠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음식을 배우고, 만들고, 연구하고, 음식과 관련한 문화도 찾아다닌다. 

통영을 수차례 오가던 그는 무의식중에 “이곳이라면 내가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평생의 반려자가 될 여인도 통영에서 만난 참에, 1984년에 통영에 정착했다. 

통영음식문화연구소에 들어서자 벽면을 가득 장식한 통영소반이 보인다. 언뜻 보면 소반을 만드는 목공예 장인의 작업실이라고 착각할 정도이다. 그는 실제로 소반을 하나 만들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왜 이리 소반을 모은 것일까. 

“사람들이 이 소반에서 밥을 먹었으니까요. 자연히 관심이 생겼지요. 13년쯤 됐어요. 좋은 소반을 사기도 하고, 망가져서 버려진 건 주워와 고치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안목이 생기더라고요. 지금 윤이상 부친이 소목장이던 시절에 만든 소반을 똑같이 만들어보는 중이에요. 망가진 소반을 해부해서 다시 고치는 것도 재미있어요.” 

찬찬히 실내를 둘러보니 식기, 찻잔, 조리도구도 보인다. 단순히 음식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문화를 연구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겠다. 

그는 통영에 살며 제철 재료의 맛에 통영의 멋을 더하는 음식을 위해 40년 가까이 많은 노력을 해왔다. 통영의 시장과 인근의 섬 구석구석을 찾아다녔다. ‘통영백미’는 그 세월동안 이상희 씨가 촬영하고 기록한 통영 음식문화를 담은 그의 첫 번째 책이다. 이상희 씨는 음식을 만들고 연구하는 요리연구가이면서 사진작가이다. 그 덕에 이 책을 펼치면 통영에서 나는 식재료를 품은 자연의 풍경, 다듬는 사람들의 손길, 정갈하게 그릇에 담긴 음식의 사진들을 마음껏 볼 수 있다. 사진으로 보고, 글로 읽는 통영의 음식이다. 그러는 동안 어떤 맛일까 점점 더 궁금해지고 입안 가득 침이 고인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을 보는 것은 일종의 고통이었다.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맛, 한 해를 기다린 맛

   
통영백미- 이상희 글·사진 / 남해의봄날
‘통영백미’의 표4에 책을 간단명료하게 설명하는 글이 있다. “통영에서는 사시사철 바다와 땅에서 먹거리가 쏟아진다. 봄에는 멍게와 도다리쑥국을, 여름에는 장어탕을 먹어야 힘이 나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바다의 성찬이 화려하게 펼쳐진다. 놓쳐서는 안 될 열두 달 통영의 맛, 미각의 도시 통영을 만난다!” 열두 달 통영의 맛이라는 표현대로 책은 1월부터 12월까지 계절의 맛을 소개한다. 

1월편을 보자. ‘추위를 잊게 하는 진한 맛, 복어’ ‘최고의 해장 음식, 졸복국’ ‘방풍탕평채’ ‘털게, 벌덕게, 방게, 꽃게’가 등장한다. 이 음식들이 1월에 통영에서 맛봐야 하는 것이구나, 기억해야겠다. ‘방풍탕평채’는 처음 들어보았다. 방풍은 남해안의 섬이나 해안 지역의 양지바른 절벽에서 많이 자라는 나물로, 쌉싸래하면서도 달짝지근한 맛을 지녔다. 방풍을 깨끗하게 씻어 쪄내고, 찐 다음 살만 바른 털게와 참기름에 볶은 조갯살을 한데 섞는다. 여기에 멸장, 참기름, 마늘, 깨소금을 넣고 버무리면 된다. 방풍의 진한 향, 털게와 조개의 감칠맛, 단맛이 어우러지는 음식이다. 이상희 씨는 이 음식을 즐겼던 사람들도 소개한다. 1950년대에 유치환, 윤이상, 전혁림, 김상옥, 김춘수 등 당시 통영문화협회 인사들이 통영 향토음식 대모인 제옥례 선생의 사랑채에 모여 방풍탕평채를 즐겼다고 한다. 함께 음식을 먹으며 문화와 예술과 시대를 이야기했을 그분들을 떠올려 봤다. ‘통영의 맛, 통영의 멋’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12월까지 이어지는 음식을 보는 동안 통영의 사계절이 지나갔다. 계절의 변화에 순하게 따르며, 바다와 땅이 내어주는 제철 음식 재료를 구해 먹고 살았던 사람들도 생각했다. 1년쯤 통영에서 살면서 그 맛과 멋을 느껴보면 어떨까 하는 욕심이 생길 지경이다.  

   
이상희 씨는 매일 새벽시장을 돈다. 오늘 처음 시장에 나온 첫물 제철 재료를 놓치지 않는다. 그 마음을 책에서 이렇게 썼다. “처음 나온 물건은 아직 값이 형성되지 않아 부르는 게 값이다. 그래도 시장에 나온 첫 물건은 놓칠 수 없다.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맛, 한 해를 기다린 맛은 머리보다 입이 먼저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가 기울여온 수십 년 간의 노력은 이 책에서 빛나고 있다. 그래서 단순한 먹거리 여행이 아니라, 통영음식문화를 다룬 책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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