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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와 21세기 한국학 <21> 박제된 우아함, 발랄한 비속함

똥·생식기 등 곳곳 저속한 표현 … 고상한 척 위선적인 지배층 꼬집어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1-01-17 19:08:55
  •  |  본지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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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문 작문 능력, 신분·지위 결정
- 삼국사기 정형화·격식화된 문장
- 제왕 중요시한 유교사상 드러내

- 유사, 왕 신체부위 사실적 묘사
- 원초적 욕구·욕망 담긴 글 통해
- 평범한 일상조차 누리지 못한
- 민중의 처지와 바램 거듭 호소

중세에 중국과 한국, 일본과 월남 등 나라가 하나의 문명권을 이루어 정치와 외교, 경제, 문화 전반에서 꾸준히 관계를 맺은 데에는 한문이라는 공동의 문어(文語)와 유교라는 정치사상이 주요한 구실을 했다. 각 나라 귀족이나 지식인은 유교 경전, ‘사기’를 비롯한 역사서를 배우고 익히면서 한문을 습득하고 유교적 교양을 체득해야 했다. 그랬으므로 한문으로 작문하는 솜씨는 그 사람의 신분과 지위를 정하고 명망을 드높이는 시금석이 됐다.

‘삼국사기’ 편찬에는 김부식 외 열 명이 참여했다. 그럼에도 김부식이 저자로 알려져 있는 데는 신분과 나이도 작용했지만, 그가 학자이자 문장가로서 가장 뛰어났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가 유교 전통을 충실히 따르면서 격식을 갖춘 글쓰기를 잘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삼국사기’는 그런 면을 잘 보여준다. 반면에 ‘삼국유사’는 문장이 거칠고 난삽하다는 비판을 오랫동안 받아왔다. 여기서는 그런 평가가 타당한지를 글쓰기라는 측면에서 한 번 따져보려 한다.
   
경복궁의 품석(品石). 신라의 왕호인 마립간은 ‘말뚝의 왕’을 뜻하는데, 그 말뚝은 품석과 같다.
■박제된 우아함

중세의 역사서는 편년체든 기전체든 제왕이 중심이다. 새로운 제왕이 즉위하면 먼저 가계(家系)와 함께 그 신체 특성이나 성품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서술했는데, ‘삼국사기’ 또한 마찬가지다. 가령, “몸이 장대하고 성품은 깊고 두터웠으며 지혜와 꾀가 많았다”(身長大, 性沉厚, 多智略. ‘남해왕’)라거나 “키가 일곱 자이며, 코가 크고 얼굴 생김새가 기이했다”(身長七尺, 豊準有奇相. ‘아달라왕’)거나 “키가 일곱 자 다섯 치이며, 총명하고 사리에 밝아 멀리 내다보는 식견이 있었다”(身長七尺五寸, 明達有遠識. ‘실성왕’) 따위로 표현했다. 일화를 들어 간접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아예 표현을 하지 않기도 하는데, 어떤 경우든 왕의 존엄을 떨어뜨릴 만한 표현은 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런 표현을 통해 알 수 있는 정보가 거의 무의미하다는 데 있다. 격식화된 글쓰기와 매끈한 표현으로 제왕의 존엄을 중시하는 유교적 사유는 잘 보여주지만, 그러지 않아도 멀게만 느껴지는 제왕의 존재가 모호하면서 더욱더 멀어진다. 과연 역사 글쓰기로 적절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삼국사기’ 권4 ‘지증 마립간’을 보자. 서두는 이렇게 서술돼 있다. “지증 마립간이 즉위했다. 성은 김 씨고 이름은 지대로(智大路)다.【혹은 지도로(智度路)라고 하며 지철로(智哲老)라고도 한다.】 내물왕의 증손자요 습보(習寶) 갈문왕(葛文王)의 아들이며, 소지왕(炤知王)의 재종 아우다. 어머니는 김 씨 조생(鳥生) 부인으로 눌지왕의 딸이다. 왕비는 박 씨 연제(延帝) 부인으로 등흔(登欣) 이찬의 딸이다. 체격이 매우 크고 담력이 남들보다 뛰어났다.(王體鴻大, 瞻力過人) 전왕이 죽었을 때 아들이 없어 그 자리를 이었는데, 이때 나이 예순넷이었다.”

눈여겨볼 대목은 “체격이 매우 컸다”는 표현이다. ‘홍대(鴻大)’라는 우아한 표현을 썼지만,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 덩치를 가리키는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상투적인 표현이어서 생동감이나 발랄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 제왕이 정형화된 표현 속에 갇혀 버린 듯해 ‘박제된 우아함’만 남았다고나 할까?
   
지철로왕의 무덤으로 간주되는 천마총.
■발랄한 비속함

‘삼국유사’에도 지증왕에 대한 조목이 있다. ‘지철로왕(智哲老王)’이 그것이다. ‘삼국사기’ 주석에서 언급된 이름 가운데 하나를 들어 왕명으로 썼다. 신라 민중은 시호가 아닌 이름을 왕호로 삼아 불렀던 모양이다. 그만큼 친숙하게 여겼다고 할 수 있는데, 이야기에서도 그러한지 확인해 보자. ‘지철로왕’에서는 두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나는 나무로 만든 사자로 위협해 우산국 곧 울릉도를 복속시킨 일이고, 다른 하나는 아래와 같다.

“제22대 지철로왕은 성이 김 씨이며 이름은 지대로 또는 지도로다. 시호는 지증이며, 시호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또 우리말로 왕을 마립간이라 일컬은 것도 이 왕 때부터 시작되었다. 왕은 영원(永元) 2년 경진년(500)에 즉위했다. 왕은 음경의 길이가 한 자 다섯 치여서 좋은 짝을 얻기 어려워 사자를 삼도(三道)에 보내 짝을 찾도록 했다. 사자는 모량부의 동로수 아래에 이르렀다가 두 마리 개가 북 만큼 큰 똥덩어리 하나를 서로 양쪽 끝을 물고 다투는 것을 보았다. 마을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한 소녀가 알려주었다. ‘이 고을 상공(相公)의 딸이 여기에서 빨래를 하다가 숲속에 숨어서 눈 똥입니다.’ 사자가 그 집을 찾아가 살펴보니, 여자의 키가 일곱 자 다섯 치나 되었다. 이 사실을 왕에게 자세히 아뢰자 왕은 수레를 보내 궁중으로 맞아들여서 황후로 봉했으며, 신하들도 모두 축하했다.”

지철로왕의 음경을 거론한 것부터 흥미로운데, 그 길이까지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어서 발칙하면서도 관심을 끈다. 또 왕의 짝을 찾으러 나선 사자가 목도한 광경도, 마을 소녀가 들려준 이야기도 모두 정통(?) 역사서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내용인데, 도무지 거리낌이 없다. ‘삼국사기’의 저자들이나 유교 지식인이라면 듣자마자 눈살을 찌푸리며 귀를 씻으려 하거나 제왕의 존엄에 먹칠을 하는 망발이라면서 호통쳤을지도 모른다. 상스럽고 천박하기 짝이 없다면서!

확실히 위 이야기는 왕의 은밀한 부위에 대해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우아함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이 비속하기만 하다. 그런데 ‘삼국사기’에서 “체격이 매우 크고 담력이 남들보다 뛰어났다”는 구절로 뭉뚱그려 표현한 것과 견주어 보라. 그저 체격이 컸다고 하지 않고 음경의 길이가 얼마쯤 된다면서 그로 말미암아 짝을 얻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빨래하다가 숲속에 숨어 똥을 누었다고도 했다. 얼마나 발랄하고 인간적인가? 박제된 우아함보다 이 발랄한 비속함이 더 사실적이지 않은가?

‘선덕왕지기삼사’에서도 여근곡에 적병이 있고 또 다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느냐는 신하들 물음에 선덕왕이 “남자의 생식기는 여자의 생식기에 들어가면 반드시 죽소”라고 명쾌하게 대답한다. 한 나라의 왕이, 그것도 여왕이 생식기를 거침없이 운운했다. 그럼에도 문맥은 매끄럽고 의미심장하다. ‘지철로왕’ 또한 그러하다. 이 밖에도 비속한 내용이나 발랄한 표현이 ‘삼국유사’ 곳곳에 나온다.

■우아함과 비속함의 이면

사람은 누구나 똑같이 먹고 자고 똥을 싼다. 좋은 짝을 만나 사랑하고 성행위 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이 단순한 행위를 하나라도 하지 못할 때, 사람은 괴롭고 힘들다. 수천 년 동안 민중이 거듭거듭 호소했던 것은 다른 게 아니었다. 이 평범한 일상 행위조차 마음껏 누리지 못하는 처지를 알아주고 최소한의 욕구라도 채워달라는 것뿐이었다.

그럼에도 그런 욕구와 하소연을 비루하고 천박하다 여기며 자신들은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는 듯 우아함과 고상함을 뽐낸 자들이 있었다. 왕족과 귀족들, 지식인들, 성직자들이 그들이다. 실상은 대부분 관직과 권세와 재물을 탐하느라 밤낮없이 노심초사하고 전전긍긍했을 따름이다. 그러고는 충군애민(忠君愛民)을 위한 방책을 찾느라 고심한다며 유려한 언변과 우아한 문장, 고상한 논리로 포장했다.

   
글을 몰랐던 민중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원초적인 욕구와 욕망을 표현한 이야기로써 자신들의 주장과 논리를 폈다. 우아함 속에 허위와 위선이 있고, 비속함 속에 인정(人情)과 진실이 있다는.

정천구 고전학자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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