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물 마를 날 없던 한국 현대사
- 슬픔 담은 노래 뜻하는 ‘엘레지’
- 대중가요 제목으로 많이 사용
- 부산 작사가·작곡가가 만들고
- 실향민 손인호가 절절히 불러
우리 대중가요에는 엘레지란 단어를 제목으로 활용한 작품들이 많다.
‘용두산 엘레지’ ‘해운대 엘레지’ ‘황혼의 엘레지’ ‘남한강 엘레지’ ‘엘레지의 여왕’ ‘종로 엘레지’ ‘여의도 엘레지’ ‘용인 엘레지’ ‘조치원 엘레지’ ‘홍천강 엘레지’ ‘북녘 땅 엘레지’ ‘오봉산 엘레지’ ‘금오산 엘레지’ ‘압구정동 엘레지’ ‘청춘 엘레지’ ‘호숫가 엘레지’ ‘결혼의 엘레지’ ‘현해탄 엘레지’ ‘청량리 엘레지’ ‘부산항 엘레지’ 등등 그 수를 일일이 헤아릴 수 없다.
| |  |
| 비가(悲歌)의 전형 ‘해운대 엘레지’ 배경이 된 해운대. 해운대 장관과 정취는 예술창작 훌륭한 모티브가 돼 왔다. 국제신문DB |
엘레지(elegy)는 서양의 시문학이나 악곡에서 슬픔을 담은 노래로 비가(悲歌), 또는 애가(哀歌)라 부른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 대중가요 모두가 슬픔을 듬뿍 머금은 것이 대다수이니 거의 엘레지의 특성을 지닌 것이다. 인간의 삶에서 슬픔이란 대개 이별, 실패, 좌절 따위에서 비롯되는 원초적 감정일 터이니 그것은 깨어진 사랑, 가족이산, 질병과 죽음 때문에 빚어진 쓰라린 결과물이다. 특히 식민지와 전쟁, 분단과 독재 등으로 모진 고초와 시련을 겪은 우리 현대사에서 슬픔은 하나의 운명처럼 수반되는 필수항목이었다. 눈물과 한숨, 통곡은 한 날 한 시도 마를 날이 없었다. 다소 잔잔해졌는가 하면 또 다른 충격적 슬픔이 해일처럼 덮쳐왔다. 우리 대중가요 노랫말과 정서가 그토록 슬픔과 애잔함으로 눅눅한 것도 사실 민족적 삶의 토양이 늘 불행의 그늘 속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중가요 속의 슬픔은 인간의 삶을 더욱 슬프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비극적 현실을 딛고 넘어서서 속히 극복하도록 추동하는 힘이 들어있음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그 원리는 마치 초상집에서 실컷 울고 난 뒤 속이 후련해지는 카타르시스(catharsis), 즉 여과나 정화(淨化)의 기능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대중음악사에서 엘레지 형식의 노래들이 주로 이 슬픔을 조절하거나 걸러내 주는 여과 정화의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눈여겨본다.
■해운대를 노래한 부산 대표 ‘엘레지’
| |  |
| ‘해운대 엘레지’가 수록된 가수 손인호의 음반. |
부산 테마 노래 중 제목에 엘레지가 들어가는 대표곡은 ‘용두산 엘레지’와 ‘해운대 엘레지’다. 두 작품 모두 사랑의 추억과 이별의 쓰라림을 담아내고 있는데 그 정황의 역사적 배경에는 6.25전쟁과 피란살이의 시련과 관련되어 있다. 특히 ‘해운대 엘레지(한산도 작사·백영호 작곡·손인호 노래·1958)’에서는 비가의 전형적 특성이 고스란히 살아난다.
청년시절 사랑의 맹세와 다짐은 얼마나 불처럼 뜨겁게 타올랐던 것인가? 그러나 모든 것을 허물고 파묻어버리는 가혹한 세월 속에 그 굳은 맹세는 덧없는 한 모금 담배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어느 한쪽이 먼저 세상을 떠났거나 아니면 단순한 변심과 배반 때문에, 혹은 생활고로 말미암은 불가피한 작별이 두 사람을 아주 남남으로 갈라놓고 말았다. 노래 ‘해운대 엘레지’의 가사에는 사랑의 이런 덧없음과 애타는 미련이 절절히 투영되어 있다. 이 모든 표현이 바로 부산의 명소 해운대를 공간배경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다.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헤어지지 말자고/ 맹세를 하고 다짐을 하던 너와 내가 아니냐/ 세월이 가고 너도 또 가고 나만 혼자 외로이/그 때 그 시절 그리운 시절 못 잊어 내가 운다
백사장에서 동백섬에서 속삭이던 그 말이/ 오고 또 가는 바닷물 타고 들려오네 지금도/ 이제는 다시 두 번 또 다시 만날 길이 없다면/ 못난 미련을 던져버리자 저 바다 멀리 멀리
울던 물새도 어디로 가고 조각달도 기울고/ 바다마저도 잠이 들었나 밤이 깊은 해운대/ 나는 가련다 떠나가련다 아픈 마음 안고서/ 정든 백사장 정든 동백섬 안녕히 잘 있거라
■부산의 작사·작곡가가 만든 노래
이 노래의 작사는 함북 청진 출생으로 부산에 거주하던 작사가 한산도(본명 한철웅, 가수명 한종명)가 맡았고, 작곡은 부산 출생의 작곡가 백영호가 담당하였다. 백영호는 당시 부산의 미도파레코드 자회사였던 빅토리레코드사를 직접 운영하며 수준 높은 대중가요작품을 많이 제작 발표하고 있었다. 노래는 평북 창성 출신의 실향민가수 손인호가 취입하였다.
해운대(海雲臺)는 본래 한국의 대표적 명승지이지만 이 노래 한 곡으로 전국의 청춘남녀들이 꼭 가보고 싶은 선망의 장소로 우뚝 자리를 잡았다. 뿐만 아니라 해운대 백사장, 동백섬 등과 해운대 주변 명소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며 환기 부각시키는 효과를 자아내게 한다. 한반도 남쪽 명소의 웬만한 곳은 신라시대 문인이자 학자였던 고운 최치원의 발자취와 연관이 되어 있는데 이 해운대란 지명도 최치원이 이곳 경치에 반해 여러 날 머물던 중 문득 얻은 착상으로 지었다는 이름이다.
이 해운대는 부산의 다른 명소들인 태종대, 몰운대, 신선대, 오륜대, 의상대, 겸효대, 강선대와 더불어 부산을 한층 분위기 있게 꾸며주는 여덟 군데 절경 중 하나이다. 해운대는 예로부터 유명한 온천, 해수욕장, 고급 관광호텔들이 즐비하여 전국 최고의 관광지로 굳게 자리를 잡았다. 개발도 눈부시게 이루어져서 2001년에는 벡스코(BEXCO)가 먼저 준공되었다. 2005년에는 APEC정상회담이 동백섬에서 개최되면서 국제컨벤션 중심지로도 그 명성을 더하고 있다. 해운대의 신시가지가 조성되어 해운대는 국제도시로서의 면모를 한층 더하고 있다. 탁 트인 바다가 훤히 내다보이는 대단위 고층아파트가 조성된 이곳은 해운대 관광특구의 배후 주거지역을 화려하게 꾸며주는 역할을 한다.
해운대의 가장 큰 장점은 일 년 열두 달 언제나 관광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해마다 정월 초하룻날에 열리는 해운대 백사장의 해맞이 축제, 한겨울 추위에 온몸을 바다로 풍덩 던지는 북극곰 수영대회, 6월에는 해운대 모래축제, 8월에는 불꽃놀이로 밤을 밝히는 부산 바다축제, 가을에는 그 명성 높은 부산국제영화제 등이 쉼 없이 열려 불야성을 이룬다. 그 때문에 주말과 휴일, 축제가 열리는 계절에는 심각한 교통체증으로 불편을 겪는다.
어느 해 여름밤이던가. 해운대 백사장 모래톱에서 벗들과 술잔을 나누며 철썩이는 파도소리를 반주삼아 이 ‘해운대 엘레지’를 부르고 또 부르던 그날의 정취가 왈칵 그리워진다.
시인·가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