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이면 끝날 줄 알았던 코로나 19가 일 년이 다 되도록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아파트 주변 상가들이 하나 둘씩 문을 닫습니다. 엄마가 좋아하는 커피숍도, 자주 가던 동네 마트도, 문구점도, 키즈 카페도···하나 둘씩 사라져 갑니다. 익숙했던 이웃들이 떠나가고, 가득 찼던 공간에는 허전함만이 남습니다. 학교를 오가며 늘 봐왔던 장소가 한꺼번에 달라지는 것이 처음에는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이런 변화들도 익숙해져 버립니다. 나와는 다르게 엄마는 ‘임대함’이라고 적힌 반 이상 비어 있는 상가를 지나갈 때마다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 상가 하나하나마다 다 사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힘들게 택시 운전을 하며 번 돈으로 어렵게 커피숍을 차린 사장님은 웃음이 참 예쁜 분이었습니다. 나에게 늘 좋은 하루를 보내라고 말씀해주시곤 하셨고요. 동네 마트 아저씨는 다리가 불편하셨지만 항상 부지런하게 상가 앞 아파트를 깨끗이 청소해주시곤 하셨습니다. 내가 마트 앞을 지나갈 때면 공부는 열심히 하고 왔느냐고 장난스럽게 말을 걸어주곤 하셨습니다. 문구점 할머니도 어린 아이들을 정말 좋아해주시던 분이셨는데 손님이 뚝 끊긴 가게의 임대료를 감당하기 힘들어 멀리 떠나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아파트 길은 그 분들의 웃음이 모여 만들어진 것도 같습니다. 그 웃음과 친절이 사라진 길을 걷는 게 엄마는 쓸쓸하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사라진 키즈 카페를 지나가다가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지만 멀리서 손인사만 했습니다. 마스크 없이도 서로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하루가 소중한 하루였다는 걸, 하루쯤은 빼먹고 싶었던 학교 수업도, 관심 없이 지나쳤던 장소도 모두 다 소중했다는 걸 왜 이제야 알게 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걱정하지 마, 어떻게든 우리 가족은 내가 책임질 거니까.“
아파트 상가 길을 걸을 때마다 부쩍 더 어두워지던 엄마 얼굴과 깊은 한숨이 상가분들이 떠나서 안타까운 마음 때문인 줄로만 생각했었는데 그것만이 아니었나 봅니다. 밤늦게 내가 잠든 줄 알고 부모님이 나누던 대화를 듣게 되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학원 운영을 하는 부모님이 생활이 힘들어지셨고, 그나마 남은 학생들도 코로나가 걱정되어 당분간은 휴강을 해야겠노라 연락이 왔다는 것입니다.
나도 대충은 알고 있었습니다. 학원에 부모님을 만나러 가면, 강의실마다 북적이던 웃음소리가 이제는 잘 들리지 않고 학생이 없으니 선생님들도 휴직을 하게 되었다는 걸요. 겨우 버티고 버티고 있지만 임대료와 세금, 생활비를 감당하기가 쉽지는 않다는 엄마의 말도 훔쳐 들었습니다. 2월에 소풍 겸 진행했던 롯데월드투어가 계획되어 있었지만 취소되었고, 매일 방역에도 힘쓰고 최선을 다해서 학생들을 관리하려고 노력하셨지만 상황은 계속해서 좋지 않았습니다.
아빠는 늦게까지 서재의 불을 끄지 못했습니다. 한참동안 주무시지 않다가 늦게 내 방에 들어와 내 얼굴을 오래도록 쓰다듬고 안방으로 가셨습니다. 그 큰 손길이 참 다정하다는 것을 나는 잘 몰랐습니다. 이전에는 학원 일로 부모님이 바쁘셔서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하는 것이 불만이었거든요. 나는 늘 불평했었습니다. 주말이면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을 항상 함께 가주시고, 시간을 함께 보내려고 최선을 다하셨지만 부모님의 최선보다는 내 마음의 욕심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나는 종종 ‘키즈 카페도 가고 싶고, 박물원도 가고, 수영장도 가고, 롯데월드도 자가’고 부모님을 자주 졸랐습니다. 물론 부모님은 그 바람을 들어주시려고 어떻게든 시간을 써주셨습니다. 나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원하는 걸 언제든 부모님이 주시리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일주일 간 학원 휴원 공고가 내려와 어쩔 수 없이 학원 문을 닫게 되었을 때, 앞으로 이 곳도 비어 버린 상가처럼 되는 건 아닌지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그 때 처음으로 나는 당연한 것은 없다는 것을 깊이 느꼈습니다. 내가 얻는 모든 것들이 부모님의 최선에서 나온 것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 동안 부모님이 학생들을 가르칠 때 얼마나 최선을 다해 가르쳤는지 떠올랐습니다. 부모님은 나를 가르치듯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야 부끄러움이 없다고요. 부모님의 노력이, 이렇게 의미 없이 사라지는 것은 원치 않았습니다. 애써서 힘들게 지켜낸 곳이었는데 그 노력과 땀방울을 왜 나는 보지 못했던 걸까요.
학원을 열지 못하는 동안에도 부모님은 쉬지 않았습니다. 나를 위해 동화책을 읽어주시고, 요리를 함께 만들어 보고, 재미있는 놀이를 같이 해주셨습니다. 오히려 나와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어서 좋다고 하시면서요. 식탁 위에 체납 고지서가 쌓여도, 앞날이 막막해도, 밤이면 오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셔도, 나에게는 웃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괜찮다고, 아무 문제없다고, 우리 딸을 위해서 다 헤쳐 나갈 수 있다고······.
코로나는 우리의 많은 것들을 바꿨지만 가장 크게 내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나보다 더 나를 위하는 마음이 바로 부모님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이러지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볼까?”
하루하루 늘어가는 불안 속에서 어느 날 부모님이 상자를 바닥에 꺼내놓았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요?”
나는 부모님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외출도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했거든요. 나는 갸우뚱한 눈으로 부모님을 바라봤습니다. 부모님은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 홈쇼핑에서 우연히 구매해 두었던 마스크를 지인들에게 2~3장씩 나눠주자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겐 이미 충분한 마스크가 있는데 부족한 사람들은 얼마나 불안하겠냐고 하시면서요. 사람들이 마스크를 사려고 새벽부터 약국 앞에 줄 서서 있는 것을 보시고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하셨습니다. 젊은 사람들이야 마스크를 사러 나가는 일이 어렵지 않지만 나이가 많으신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선 또 얼마나 힘드시겠냐고, 그 말을 들으니 약국 앞에 길게 줄지어 서 있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우리 가족이 마스크를 미리 사둔 덕분에 편해서 다행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부모님은 우리에게 있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까지도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내 마음보다 큰 부모님의 마음 안에서 나는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우리 가족은 함께 마스크 나눠주는 일을 도왔습니다 .이웃들은 마스크를 받고 너무 고마워했습니다. 사람들의 웃는 얼굴을 보자 내 마음까지 뿌듯해졌습니다. 우리가 나눈 수 있는 게 꼭 큰 것이어야만 하는 건 아니구나 생각했습니다.
마스크를 다 나눠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비어 있는 상가들을 보았습니다. 왜 그 상가를 볼 때마다 얼마의 발걸음이 느려졌는지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기서 일하던 모든 분들은 누군가의 아빠이자 엄마이시니,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 자식들을 어찌 키워내시고 계신가, 어떻게 버텨내고 계신가, 그런 걸 엄마는 생각하고 계셨던 게 아닐까요. 코로나로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지만 부모님의 모습이 나에겐 더 또렷하게 보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안전하게 지켜줄 것은 부모님의 가슴이라는 것을 느낍니다.
“엄마, 아빠, 오늘은 내가 다리를 주물러 드릴게요.”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거의 서서 일하시는 부모님은 평소에도 허리며 다리가 자주 아프십니다. 그걸 알면서도 애 아픔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가까이 있으니 부모님 다리에 선 새파란 힘줄도, 왜 그렇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습인지 가슴이 아팠습니다. 내가 다리를 주물러 드리자 부모님은 우리 딸 다 컸다고 오랜만에 크게 웃으셨습니다.
그 웃음이 우리 가정에 오래 머물렀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