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예전에 유교 국가였고 지금도 그 영향이 다소 남아 있다. 그 대표적인 예시로 유교의 이념인 충, 효, 예를 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충, 효, 예는 무엇일까?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 충은 ‘국가에 진정한 정성을 다함’이라는 가치이고, 효는 ‘부모님을 진정성 있게 섬기는 것’이라는 가치이며, 마지막으로 예는 ‘사람 간에 치켜야 할 도리’ 즉 ‘선’을 말한다. 그런데 이런 충, 효, 예들이 요즘 사회에서는 어느 정도 등한시되고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되어 가고 있다.
그렇다면, 충, 효, 예는 더 이상 쓸모없는 낡은 가치가 돼버린 걸까?
전혀 그렇지 않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여러 위기를 겪어왔으나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충, 효, 예의 정신으로 위기를 이겨내 왔다. 따라서 충, 효, 예는 현대 사회에도 여전히 필요한 가치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충, 효, 예의 가치를 담을 시대에 맞는 새로운 그릇이 필요할 뿐이다.
그렇다면 충, 효, 예의 가치를 담을 시대에 맞는 새로운 그릇에는 무엇이 있을까?
2007년, 지나치게 권위적이라는 지적을 받아 온 국기에 대한 맹세의 ‘몸과 마음을 바쳐’라는 표현이 삭제되는 일이 있었다. 또한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비리로 인해 탄핵당하는 일이 있었다. 이 두 사건은 모두 ‘충’이라는 가치를 담을 새로운 그릇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예전 그 ‘충’의 그릇은 ‘나라에 무조건적인 충성을 강요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충’의 그릇은 ‘나라를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생각하는 능동적인 자세’인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효’의 그릇은 무엇일까?
요즘 사회에서 가장 크게 변화한 것을 꼽자면 단연 스마트폰과 인터넷의 보급을 꼽을 수 있다. 그리고 일과 학업 때문에 요즘 사회에서는 집에서 가족끼리 만나 안부를 묻기 힘들다. 이러한 상황들에 ‘효’라는 가치를 대입한다면, 요즘같이 주변에 위험이 많은 사회에서는 부모님께 ‘저는 학원에 잘 있어요, 금방 갈게요’라고 문자메시지를 한 통 보내는 것도 효도가 될 수 있다. 효도라고 해서 안마를 하는 등 거창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것이다. 새로운 ‘효’의 그릇은 바로 스마트폰을 이용해 자신의 안부를 전달하는 것이다.
마지막은 새로운 ‘예’의 그릇이다. 요즘에 상대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꼰대’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전에는 상대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강요했을 때 큰 거부감이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더 이상 나이가 많은 것이 자신의 생각을 강요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이 현상은 ‘예’라는 가치를 담을 새로운 그릇의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다. 새로운 ‘예’의 그릇은 나이 차이가 아닌, 상호존중과 역지사지의 자세로 서로를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여러 가지 위기 속에서도 이를 극복하고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충, 효, 예’의 가치를 많은 사람이 지켜왔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임진왜란, 일제 강점기 등과 같은 여러 역사적 아픔 속에서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 한마음으로 똘똘 뭉친 애국자들의 ‘충’이 나라를 지켜 왔다. 그리고 예로부터 ‘효’는 ‘백행의 근본’이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 조상들은 가정에서 먼저 ‘효’를 통해 웃어른을 존중하는 마음을 배워서 세대 간의 유대감을 형성해, 나라의 여러 위기 속에서도 안정된 공동체를 꾸려올 수 있었다.
또한 많은 사람 간의 갈등 속에서 서로를 존중하는 ‘예’라는 가치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큰 갈등 없이 지속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충, 효, 예’의 가치를 요즘 사회에 맞는 그릇들에 담는다면, 우리나라가 더 안정되고 보다 발전하는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