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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부 대상] 어미 고양이

인천 숭덕여고 2학년 정재인

  • 정재인 고등부 대상자
  •  |   입력 : 2020-11-17 19:47:55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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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

어스름 땅거미가 진 어느 골목길 어디선가 고양이 우는 소리가 난다. 누군가를 애타게 찾는 듯 서럽게, 슬피 흐느끼는 새끼 고양이의 울음소리였다. 아기의 서글픈 부르짖음은 밤새도록, 새벽을 넘어 아침까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해 뜰 때까지 계속된 소음에 잠을 푹 자지 못해 언짢은 기분으로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떴다. 침대 밖으로 나오지도 않은 채 손만 움직여 스마트폰을 들었다. 엄마가 방으로 들어왔다. “일찍 일어났네······. 일어나자마자 또 스마트폰이니.”

“노크도 안 하고 들어오지 마.”

짜증 섞인 어투로 중얼거렸다. 잠을 못 자서인지 잔소리로 아침을 시작해서인지, 뭐 어때. 어느 쪽이든 내 잘못은 아니었다. 엄마는 그대로 계속 날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몇 초간 정적이 흐르고 내가 입을 뗐다.

“오늘 아침 뭐야.”

“오늘 일찍 출근해야 해서 만들 시간이 없었어.”

오늘도?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이었지만 그런 식으로 말했다가는 또 상처받을게 뻔하니까,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겠다 생각하며 말을 삼켰다. 엄마는 말을 이어갔다.

“식탁에 인스턴트 카레 꺼내 놨어. 그거 먹어.”

또 카레네. 저번에 한 번 카레 먹고 싶다고 말했다가 엄마가 인터넷 쇼핑으로 박스 채 시킨 카레가 아직도 남아 있는 모양이다. 언제쯤 동날까, 질린다. 방금 말에는 굳이 답할 필요 없겠지. 오히려 욕 안 하는 게 다행이라고, 말을 무시했다.
또 다시 정적이 흐르고 엄마는 시계를 확인하고 문을 열고 나갔다. 그러다 문 앞에서 잠시 멈칫하고 말했다.

“엄마 다녀올게, 아가.”

“우웩, 다 큰 고딩한테 아가는 무슨.”

엄마는 작게 소리 내 웃고 회사로 향했다.

아직도 고양이 울음소리는 끊이지 않고 있었다. 목도 안 아픈가···. 이젠 하도 오래 들어 거슬리지도 않는다. 침대 위에서 조금만 더 뒹굴다가 아까 엄마가 말했던 카레를 먹고 학교 갈 채비를 했다. 교복을 입고 운동화를 구겨 신고 집을 나섰다. 학교에 가려면 꼭 지나가야 하는 골목이 있다. 아침인데도 어둑어둑하고 으슥한 골목, 그 골목을 지나가는데

“야옹”

하는 소리가 들리고, 골목 한가운데 누워있는 검은색 고양이를 발견했다. 이제는 거의 쉰 목소리로 울부짖고 있었다. 어젯밤 내내 울어대며 내 잠을 방해한 녀석이 여기 있었나 보구나, 꿀밤이라도 한 대 먹이고 싶지만 뭐, 도망갈 게 뻔하니까. 계속 앞으로 걸어나갔다. 울음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점점 더 가까워지는데 그 검은 고양이는 도망을 치지 않았다. 두 걸음쯤 더 가까워졌을 때 그제야 난 알아차렸다. 고양이는···.

‘이 고양이···. 죽었어.’

죽어있었다. 차에 치여 잔인하게 짓이겨졌고, 죽은 지 꽤 되어 흐른 피가 이미 딱딱하게 굳어 싸늘한 고양이 사체였다. 그 광경은 너무 잔혹해서, 더는 쳐다볼 수 없었다.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한 채 골목을 지나가는 그때,

“야옹”

‘뭐야, 누가 내는 소리지?’

분명 아까 그 고양이는 틀림없이 죽어있었는데. 이상하다고 느껴 주위를 잠시 살펴보니 다른 고양이가 한 마리 있었다. 제법 큰 편인 용달차 밑이었다. 차와는 대조되게 어색할 정도로 작은 새끼 고양이가 야옹, 야옹. 바닥에 쓰러진 사체를 바라보며 한없이 울고 있었다. 털 색이 같은 걸로 보아, 그 사체는 이 새끼 고양이의 어미인 것 같았다. 불쌍해라. 하지만 당장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시간은 흐르고 있었고, 난 학교에 가야 했다. 하지만 쉽사리 걸음을 뗄 수 없었다. 하염없이 흐느끼는 그 새끼 고양이가 아무래도 눈에 밟혔다. 뭐라도 해줄 수 있는게 없을까 가방이라도 뒤져봤더니, 작은 소시지가 나왔다. 고양이가 소시지도 먹나? 잠시 고민하고 포장을 까서 새끼 옆에 내려놓았다.

“이거라도 먹고 기운 내.”

그리고 서둘러 학교로 향했다.

길고 긴 수업이 끝났다. 잠을 못 자서인지 피곤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는 하루였다.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다시 아침의 그 어두운 골목길을 지나갔다. 어미 고양이의 사체는 옆쪽 풀밭으로 옮겨져 있었다. 누군가가 치워둔 모양이다. 길에 있으면 방해되고, 보기에도 좋지 않으니까. 아기 고양이는 아직도 여기 있었다. 하지만 울지는 않았다. 기력이 다했는지 바닥에 주저앉아 풀숲의 어미의 곁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준 소시지를 주워서 입근처로 들이밀어 봤지만,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어쩔 수 없지 뭐. 피곤한테 그냥 집으로 가자.’

라고 중얼거리곤 발길을 돌린 그 때.

“잠시만요”

누군가 내 뒤에서 소리쳤다. 바로 뒤를 돌아봤지만,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누, 누구세요?”

“조금만 더, 아래를 봐요.”

“...으아악!”

너무 놀라서 소리를 질러버렸다. 왜냐면···. 나에게 말을 건 자의 정체는···. 고양이였다. 그것도 죽은 지 한참 지난 어미 고양이였기 때문이었다. 사체의 모습처럼 피투성이는 아니었지만, 이 얼마나 괴이한 일인가. 황급히 고양이는 말을 이어갔다.

“아···. 부디 놀라지 말아요. 나는···. 고양이 귀신이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당신을 해치지 않는다고 약속할게요.”

어떻게 안 놀랄 수가 있겠는가. 사람 말을 하는 귀신 고양이라니. 순간 나는 내가 미쳐버린 줄 알았다. 이럴 땐 어떡해야 하지, 도망가야 하나.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제발 도망가지 말아 주세요.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세요. 제발, 제발 한 번만 도와주세요.”


어미 고양이는 간절하게 나에게 애원했다. 보아하니 정말 나쁘고 위험한 귀신같지는 않아 보였고, 진심으로 간절한 그 마음이 느껴져서 쭈그려 앉아 고양이와 시선을 맞췄다.

“들어나 볼게요.”

어미 고양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서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우선···. 저는···. 저기 저 사체, 저 고양이였어요. 어제 저녁에 이골목에서 교통사고로 죽었지요. 저는 죽었으니 어쩔 수 없이 하늘로 올라가야 하지만, 도저히 우리 아가가 걱정되어 두고 갈 수가 없네요.”
나는 조용히 경청했다.

“아직 우리 아가는 너무 어린데···. 돌봐줄 사람이 필요해요···. 이 어린 아기 밥은 누가 챙겨주고···. 잘 곳은 잘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다른 고양이들이 괴롭혀도 지켜줄 수가 없으니···."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 잔소리 같은 어미의 걱정을 가만히 들었다. 죽어서까지 자식을 걱정하는 어미 고양이의 모습, 왠지 먹먹한 기분이 들었다. 어미 고양이는 살짝 눈치를 보더니 이어서 말했다.

“혹시···. 우리 아가를 키워주실 수 있으실까요···?”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어미 고양이의 마음이 이해가 되고, 아기 고양이가 불쌍하지만 무턱대고 집에 데리고 들어갈 수도 없었다. 나는 그저 땅만 바라봤다. 어미 고양이가 다시 말했다.

“아까 아침에 소시지를 주는 걸 봤어요. 그때 알았어요. 당신이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걸요. 어려운 부탁인 걸 알지만··.· 그래도 부탁할게요···.”

어미 고양이는 그 골목에 망부석처럼 앉아있는 새끼를 바라보며 작게, 눈물을 훌쩍이기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내가 살아있을 때 우리 아가가 좋아하는 음식 많이 먹일걸, 이제 곧 겨울이 올 텐데, 우리 아가 추워서 어떡해···.”

눈물을 그치려고 노력하는 듯했지만, 아기만 바라보면 아무리 눈물을 훔쳐도 그치지 않는 모양이다.

“엄마가 많이 미안해 아가야···.”

어미 고양이는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시간이 꽤 흐를 동안, 난 계속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우리 엄마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침부터 날 걱정해주시고, 챙겨주시고, 카레가 먹고 싶단 말에 한 박스를 사온, 날 아주아주, 사랑해주셨던 우리 엄마. 어머니들의 마음은 다 독같은 걸까, 괜히 가슴이 저려왔다. 이윽고 어미 고양이가 날 바라보며 말했다.

“이젠 제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저 대신 아가를, 잘 부탁해요. 그리고 너무, 고마워요.”

그렇게 어미 고양이는 서서히 사라졌다. 난 계속 거기 서 있었다. 너무 울어 눈이 퉁퉁 부은 새끼 고양이를 바라보며, 생각해보니 난 오늘 엄마한테 짜증만 냈던 것 같다.

엄마는 날 사랑하셨는데.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문득 어미 고양이처럼 우리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나중으로 대충 미루지 말고 지금,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효도해 드려야지. 이 사랑하는 마음을, 제대로 전해야지. 조금 쑥스러워도 오늘은, 사랑한다고 전해야겠다.

“어머? 너 여기서 뭐 하니?”

엄마가 직장에서 돌아오시다가 집에 오는 길에 고양이와 덩그러니 있는 나를 발견하셨다. 나는 새끼 고양이와 사고로 죽은 귀신 고양이 이야기를 뺀 어미 고양이 이야기를 들려 드렸다. 엄마가 먼저 고양이를 데려와 키우자고 하신다.
그렇게 고양이와 엄마, 그리고 나는 웃으며 집으로 돌아간다.

“엄마, 사랑해.”

“갑자기? 하하, 그래도, 그렇게 말해주니 기분이 좋네. 엄마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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