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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준의 음식 사람 <22> 양산 약선밥상

산채음식과 절밥의 오묘한 조화 … 건강한 한 상에 힘이 불끈

  • 최원준 시인
  •  |   입력 : 2020-11-17 19:12:30
  •  |   본지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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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서 발달한 산채·사찰 음식
- 현대사회 식문화 맞춰 재해석
- 화학조미료 일절 사용하지 않고
- 직접 만든 장·효소로 음식 맛 내

- 시래기 넣고 푹 끓인 된장찌개
- 두툼한 조기 살 올린 밥 한술
- 연잎에 찐 돼지한방수육까지
- 뽕잎차·와송쥬스 후식도 완벽

슬로우푸드, 푸드마일리지 등 음식의 조리법이나 식재료의 원산지 이력에 대한 관심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래서 요즘은 도시농업이나 텃밭 가꾸기 같은 식재료의 직접 재배에도 관심이 많다. 이는 선조들의 식약동원(食藥同源) 사상을 오늘에 이르게 하는 가장 기초적인 작업이기도 하다.
경남 양산시의 한 음식점에서 만난 약선요리 밥상. 산채요리, 사찰음식이 발달한 양산에서는 약선요리도 지역 음식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제철 제집 부근에 나는 신선한 식재료를 직접 채취하거나 재배해, 건강한 조리법으로 밥상을 차려 먹는 것.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 건강하게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행하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이기도 하겠다.

최근 양산시의 의뢰로 ‘양산 전통맛집’ 발굴을 위해 며칠 현장심사를 다녀왔다. 그중 사찰 밑이나 산골마을 등지에 소재한 약선요리 전문식당 또한 몇 곳 방문했다. 양산이 오래전부터 산채음식과 사찰음식이 발달한 것은 익히 알고 있었던 터이지만, 약선요리 또한 그 지역적 특성에 맞게 발달해 오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양산은 영남알프스라는 일군의 높고 깊은 산들이 병풍처럼 쳐져 있어 산에서 나는 산나물, 버섯 등 귀한 특산물들이 다양하게 자생하고 있다. 게다가 그 산을 중심으로 전통 있는 사찰이 오래 전부터 자리하고 있었기에, 각 사찰마다 명산의 기운을 받은 산의 먹거리로 몸에 이로운 음식들을 조리해 공양을 했다.

특히 통도사의 표고버섯밥이나 세(細)편, 내원사의 가죽나물 음식 등은 양산의 향토음식으로도 널리 유명하다. 표고버섯밥은 쌀 위에 표고, 배추 속 등을 채 썰어 넣고 들깨 물로 밥물을 잡아 김이 나면 산나물을 얹어 뜸을 들인다. 그리고는 떡갈나무잎(여름엔 피마자 잎)에 밥을 소복이 담아 먹는다. 속세에서 보면 ‘유유자적의 극치’인 음식일 듯싶다.

세(細)편은 떡을 쪄 투명하게 될 때까지 오래 찧어서 떡가래를 만들어 얇게 썬 뒤 여름철에 차가운 꿀물에 띄워서 먹는 떡으로 통도사의 대표적인 음식이다. 내원사의 가죽나물 음식은 전국적으로도 유명한데, 가죽김치, 가죽생채나물, 가죽전, 가죽부각 등이 있다. 특히 가죽부각은 가죽의 어린잎을 데쳐 고추장, 들깨 등을 넣은 찹쌀풀에 묻혀 햇볕에 말렸다가, 두고두고 튀겨서 설탕이나 소금을 뿌려먹는 음식이다.

이렇듯 양산은 오래전부터 산채음식이나 사찰 관련 음식이 발달했었다. 그런데 요즘 건강 관련 전문음식점에서 내는 차림표를 보면 산채음식, 사찰음식, 산야초음식, 약선음식 등이 혼재하고 있어, 이를 정리할 필요가 있기도 하겠다.

■산채·사찰음식의 현대적 해석

산채음식은 말 그대로 산나물을 활용하여 밥상을 차려내는 음식이다. 산채란 주로 산에서 식용 가능한 나무의 잎이나 풀 등을 채취하여 식재료로 활용하는 것들의 총칭이다. 넓은 의미에서는 산에서 나는 나물류와 버섯류 등을 두루 포괄하는 의미이다.

조선시대 농업서 ‘증보산림경제’에 따르면, ‘산채는 제철에 채취하여 김치·절임·무침·국 등의 반찬으로 만들거나, 말려서 겨울 채소로 만들어 두기도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현재 약 80여 종의 식용 가능한 산채가 있다고 하는데, 이중 재배가 가능한 종류가 40여 종에 달한다.

사찰음식은 이 산채를 중심으로 밭에서 재배하거나 바다에서 채취한 다양한 식물의 잎이나 가지, 뿌리, 열매 등을 채취하여 소박하면서도 정갈하게 상을 차린다. 밥을 먹는 행위조차도 구도의 한 수단이기 때문에 마음을 어지럽히는 오신채(마늘, 부추, 파, 달래, 흥거) 등은 빼고 음식을 만든다.

약선음식은 이들 산채, 사찰음식의 현대적 해석에 의해 탄생한 개념의 음식이다. 식재료는 동식물, 한약재 등 가리지 않으나, 신선한 상태에서 준비하여 화학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고, 직접 발효시켜 만든 장이나 효소 등으로 음식 맛을 내는 특징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현대적 의미로 ‘몸에 약이 되는 음식’, ‘몸이 건강해지는 자연밥상’ 쯤으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양산의 약선음식점들의 특징은 산채요리를 겸하거나 사찰음식을 겸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맛과 건강을 함께 추구하는 ‘현대사회의 식문화 요구’와 ‘지역의 전통음식문화 고수’라는 두 가지에 대한 고심의 흔적이라 할 수가 있겠다.

■밥상 위 갖은 나물·산야초 장아찌

영축산 통도사와 천성산 인근 두 곳의 음식점에서 약선음식을 맛보았다. 모두가 장과 효소를 직접 담가 음식 간을 맞춘다. 크고 작은 장독들이 따뜻한 햇볕을 받아 맛있는 장을 익혀내고 있을 터이다.

우선 현미녹차와 과일정과 등으로 입을 가시고 나면 전채가 나온다. 전채에는 여러 가지 샐러드가 나오는데, 수삼야채샐러드, 말린 고추 잎을 올린 호두정과, 민들레야채샐러드 등이 오른다. 밥은 다양한 지역의 건강한 쌀과 약초물로 짓는다. 한곳은 연잎에 싸서 밥을 짓기에 연잎향이 그윽하니 밥만 먹어도 건강하겠다. 밥을 먹기 전 호박죽과 물김치로 입을 다시게 내놓는 곳도 있다.

음식점에 따라 저마다의 계절음식이 나오는데, 연잎에 찐 돼지한방수육이나 산야초샐러드를 곁들인 한우편채 등속이 나오고 표고버섯탕수, 오미자 소스에 버무린 전복문어새우샐러드, 대하찜 등이 그 곁을 지킨다.

약선음식점답게 각종 나물과 산야초장아찌가 밥상 위에 줄을 선다. 취나물, 참나물, 고사리, 방풍, 고구마줄기, 공심채 등을 나물로 조물조물 무치고, 두릅, 뽕잎, 돼지감자, 매실, 고추잎 등으로 장아찌를 담가 냈다. 가지를 찌고, 연근을 조리고, 도토리묵을 말려 무치고, 텃밭에서 재배한 배추와 무로 정성스레 담근 김치를 낸다.

시래기를 넣고 폭폭 끓여낸 된장찌개 한 술 뜬 후, 밥 위에 두툼한 조기 살을 올려 또 한 술 뜬다. 은은한 한약 냄새에 짭조름한 조기 살이 어우러져 가히 약선음식답다. 나물에 밥을 비벼서 먹어도 좋고, 장아찌를 밥에 올려 먹어도 좋다. 식사 후에는 뽕잎차와 뒤뜰에서 딴 감을 한 조각 깎아내는 곳도 있고, 암에 좋다는 와송을 갈아 와송쥬스를 내는 곳도 있다. 모두 만족할 만한 후식이다.

통도사 인근에서 약선요리점을 운영하는 김숙희씨는 “모든 음식이 한방약초를 가미해 조리하거나 직접 담근 효소, 장류를 쓰기에 오래 먹으면 몸이 가벼워지고 정화되는 느낌이 든다”며 “몸을 이롭게 하는 약선요리는 자연과 선조들의 지혜가 만들어낸 자랑스러운 우리의 식문화”라고 강조한다.

가을이 깊다. 몸과 마음마저 세월 따라 깊어질 즈음, 어둑한 산길 걷다가 홀연히 나타나는 집 한 채 있거든, 정중히 밥 한 끼 청해보라. 그곳에서 먹었던 밥 한 그릇이 오래도록 마음을 밝히는 거룩한 끼니가 될진저.

시인 · 음식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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