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 신호등이 아직 켜져 있었다. 빨간불을 본 나는 의식적으로 잠시 걸음을 멈췄다. 그러다 길에 차가 아예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흠칫 놀라서 계속 걸어갔다.”(51쪽)
“봉쇄 이후 나에게선 ‘오늘은 무슨 요일’이라는 개념이 없어졌다. 오직 ‘오늘’과 ‘내일’이 있을 뿐이다.”(215쪽)
지난해 12월 30일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가 발견되고, 이듬해 1월 10일에는 첫 사망자가 발생한다. 중국은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1월 23일 우한을 전격 봉쇄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이 전염병은 전세계로 빠르게 번져간다. 그리고 5000만 명이 넘게 감염된 현재까지 수그러들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이런 때 출간된 책 ‘우리는 밤마다 수다를 떨었고, 나는 매일 일기를 썼다’는 코로나19로 인한 재난 시계를 처음으로 되돌린다. 세계 어느 도시보다 코로나19를 가장 먼저 겪은 우한을 조명해 재난의 민낯을 보여주고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안을 제시한다.
책은 우한에 사는 사회활동가 궈징이 지난 1월 23일부터 3월 1일까지 SNS에 일기 형식으로 올린 도시 풍경과 일상 이야기를 중심으로 엮었다. 당시 궈징은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약 한 달 전 우한으로 이사 온 상황이었는데, 홀로 타지에서 맞닥뜨린 갑작스런 고립으로 불안감과 무기력감을 느낀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내려는 방법으로 소소한 일상에 더욱 집중한다. 또 사회활동가라는 책임을 다하기 위해 봉쇄된 도시를 관찰하고, 낯선 이들과 소통한 내용을 SNS로 공유한다. 약국과 마트에서 벌어지는 사재기 풍경, 생계를 위해 감염 위험에도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궈징의 일기는 코로나19가 초래한 공포 차별 폭력 문제도 다룬다. 한편으로는 위기 속에서 많은 사람이 네트워크를 만들고, 취약계층이 필요한 것에 관심을 기울이며, 기꺼이 자신의 것을 나누고 있다는 점도 보여준다. 이처럼 개인의 일상에서 시작된 39일간의 기록은 결국 인류에게 닥친 위기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안이 소통과 연대라는 점을 상기시키는 동시에 팬데믹 시대의 국가 역할, 개인의 자유, 집의 의미 등에 관한 사유도 뒤따르게 한다.
민경진 기자 jnmi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