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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와 21세기 한국학 <11> 삼국 이전 역사 서술과 ‘지리’

국내외 다양한 문헌 지리 정보 인용해, 삼국 이전 고대사 재구성

  • 정천구 고전학자
  •  |   입력 : 2020-11-08 19:11:15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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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중심 이룬 ‘기이’편 초반
- 고조선~우사절유택 17개 조목
- 서술·논증 방식으로 과거 다뤄

- 고조선부터 삼국까지 2000년
- 국가 역사로 볼 수 없는 조목도
- 지리적 사실들로 설명할 의도

‘삼국유사’는 제목에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의 유사임이 드러나 있다. 물론 ‘신라’의 역사가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그럼에도 삼국의 유사다.

그런데 ‘기이(紀異)’편 앞부분에 삼국 이전의 역사가 서술돼 있어 의문을 갖게 한다. ‘고조선(古朝鮮)’을 비롯해 ‘위만조선(魏滿朝鮮)’과 ‘북부여(北扶餘)’ 등이 그것이다. 왜 이 조목들을 두었을까? 먼저 ‘기이’편 앞부분의 조목들부터 한번 보자.

“‘고조선’ ‘위만조선’ ‘마한(馬韓)’ ‘이부(二府)’ ‘칠십팔국(七十八國)’ ‘낙랑국(樂浪國)’ ‘북대방(北帶方)’ ‘남대방(南帶方)’ ‘말갈 발해(靺鞨渤海)’ ‘이서국(伊西國)’ ‘오가야(五伽耶)’ ‘북부여’ ‘남부여(南扶餘)’ ‘고구려(高句麗)’ ‘변한 백제(卞韓百濟)’ ‘진한(辰韓)’ ‘우사절유택(又四節遊宅)’ ‘신라시조 혁거세왕’”

앞서 11세기부터 14세기 사이에 중국과 일본에서 일제히 ‘통사(通史)’를 저술한 일에 대해 다루었는데, 위의 조목을 보면 ‘삼국유사’ 또한 제목과 달리 통사를 지향한 역사서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두 가지 의문점이 있다. 첫째는 ‘이부’나 ‘북대방’ 등 국가 역사로 볼 수 없는 조목도 여럿 포함됐다는 점이고, 둘째는 조목의 순서가 역사적 시간의 흐름에 부합한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를 해명하지 못하면 저자가 아무렇게나 나열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여기서는 그 해명을 위해 ‘글쓰기’에 대해 먼저 살펴보기로 한다.
   
두우(杜佑)가 801년 완성한 ‘통전(通典)’(전 200권). 권185 ‘동이상(東夷上)’과 권186 ‘동이하(東夷下)’는 한국 고대사와 지리에 대한 기록이다.
■서사보다 설명과 논증

‘삼국유사’의 ‘기이’편에는 59개의 조목이 있다. ‘신라시조 혁거세왕’부터 ‘김부대왕(金傅大王)’까지 38개 조목은 ‘신라의 역사’이며 분량에서나 위치에서나 중심을 이룬다. 이들 조목은 대개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진한(辰韓)의 땅에는 옛날에 여섯 마을이 있었다. 첫째는 알천(閼川) 양산촌(楊山村)이니…”(‘신라시조혁거세왕’) “탈해니질금(脫解尼叱今)은 남해왕(南解王) 때에 가락국(駕洛國) 바다 가운데에 배를 타고 와서 머물렀다.”(‘제4탈해왕’) “제8대 아달라왕(阿達羅王)이 즉위한 지 4년째인 정유년에 동해 바닷가에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 부부가 살고 있었다.”(‘연오랑세오녀’)

위 조목은 혁거세와 알영의 탄생에서 죽음까지, 탈해가 신라에 이르게 된 과정, 연오랑과 세오녀가 일본으로 건너가 왕과 왕비가 된 내력 등 사건을 시간 흐름에 따라 서술하는데, 이는 서사(敍事)다. 신라 역사, 나아가 ‘흥법(興法)’ 이하 불교사와 관련된 조목도 대부분 서사로 서술됐다. ‘삼국유사’를 설화집으로 보는 까닭도 여기 있다.

그런데 ‘고조선’에서 ‘우사절유택’까지 17개 조목에서는 서사보다 설명과 논증 방식으로 서술했다. 설명은 이미 알려진 사실과 지식을 아직 모르는 이에게 전달하는 방식이며, 논증은 아직 확실하지 않은 사실에 대한 주장의 타당성을 증명하는 서술 방식이다. 설명과 논증은 주제를 직접적으로 구현하는 좀 무미건조한 글쓰기다. 아래 ‘말갈발해(靺鞨渤海)’ 한 대목을 보라. ①은 설명이고, ②는 논증이다.

“① ‘후위서’에서는 말갈을 물길로 썼고, ‘지장도’에서는 ‘읍루와 물길은 모두 숙신이다’고 했다. 흑수와 옥저에 대해서는 소동파의 ‘지장도’를 보면 ‘진한의 북쪽에 남북의 흑수가 있다’고 했다. ② 살펴보면, 동명왕이 왕위에 오른 지 10년(기원전 28)에 북옥저를 멸망시켰고, 온조왕 42년(24)에 남옥저의 20여 집안이 신라에 와서 몸을 맡겼다. 또 혁거세 52년(기원전 6)에는 동옥저가 와서 좋은 말을 바쳤다고 했으니, 동옥저도 있었던 셈이다.“

■다양한 문헌 인용

   
비파형 동검. 요녕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로, 고조선의 존재를 알려준다.
서사보다 설명과 논증으로 서술된 17개 조목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은 인용되는 문헌들과 인용문의 성격이다. 먼저 문헌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① 중국 문헌 : 위서(魏書), 구당서(舊唐書), 통전(通典), 전한서(前漢書), 위지(魏志), 주례(周禮), 회남자(淮南子), 논어정의(論語正義), 후한서(後漢書), 군국지(郡國志), 후위서(後魏書), 지장도(指掌圖), 주림전(珠琳傳), 신당서(新唐書)

② 국내 문헌 : 고기(古記), 삼국사(三國史), 해동안홍기(海東安弘記), 국사(國史), 동명기(東明記), 제사납전기(諸寺納田記), 본조사략(本朝史略)

역사서를 비롯한 다양한 문헌이 나온다. 위의 문헌들 가운데는 여러 차례 인용되는 것도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17개 조목에서 나온 이들 문헌이 ‘기이’편의 중심에 해당하는 ‘신라시조 혁거세왕’부터 ‘김부대왕’까지 38개 조목에서 인용된 문헌보다 더 많고 다양하며, 인용문의 비중도 훨씬 높다는 점이다. 이와 더불어 특징적인 면이 두 가지 있다.

첫 번째 특징은 위의 문헌 가운데 지리서(地理書)가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군국지’는 당나라 때 인물 가탐(賈耽)이 지은 지리서이며, ‘지장도’는 ‘말갈발해’에서 송나라 때 소식(蘇軾)이 지은 책으로 나온다. 또 ‘주례’와 ‘통전’도 지리와 관련된 항목이 있는 책이다. ‘주례’는 여섯 편으로 이뤄졌는데, 그 가운데 ‘지관사도(地官司徒)’의 내용이 대부분 지리와 관련된다. 또 ‘통전’은 두우(杜佑)가 지은 책으로 모두 200권인데, ‘주군(州郡)’ 14권과 ‘변방(邊防)’ 16권, 합쳐 30권이 지리적 사실을 기술한 편들이다. 17개 조목에서 ‘군국지’는 1회, 지장도는 4회, ‘통전’은 3회, ‘주례’는 1회 인용되는데, 나머지 110여 개 조목에서는 ‘통전’이 1회 언급될 뿐이다. 이는 그만큼 ‘고조선’에서 ‘우사절유택’까지 내용이 지리와 깊이 관련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두 번째 특징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지리서라고 볼 수 없는 문헌들에서 인용한 내용도 거의 지리적 사실과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중국 쪽 역사서든 국내 역사서든 대개 지리와 관련해서 인용되었다. ‘구당서’의 ‘배구전(裵矩傳)’은 열전임에도 일연은 고구려 및 조선과 관련된 지리적 사항만을 가져와 ‘고조선’에 실었다. 다양한 사상과 학설을 집성한 ‘회남자’, 논어 주석서인 ‘논어정의’ 등 그 밖의 문헌에서도 일연은 주로 지리적 사항만을 인용해 중요하게 다루었다.

■고대사와 지리적 사실들

   
고조선부터 삼국까지는 거의 2000년의 역사다. 일연도 잘 알고 있었던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 장구한 기간을 고작 17개 조목으로 메우려 했다. 게다가 나머지 조목들과 달리 서사보다는 설명과 논증으로 서술했으며, 다양한 문헌을 인용하면서 일관되게 지리적 정보를 제시했다. 이는 삼국 이전의 고대사를 역사적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지리적 연속성’ 속에서 파악해야 함을 알려준다. 그래야만 국가의 역사로 볼 수 없는 조목들이 들어 있는 점과 역사적 시간의 흐름에 부합하지 않는 순서를 설명할 수 있다.

일연은 이 지리적 정보들로써 무엇을 말하려 했는가? ‘지리적 사실들’을 가지고 삼국 이전의 고대사를 재구성하려고 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면, 일연이 재구성한 고대사는 어떤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들에서 자세하게 밝힌다.

정천구 고전학자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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