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좀 시들해졌지만 3,4년 전 만 해도 방송가의 먹방 열풍은 대단했다. 냉장고를 공개한 뒤 요리 대결을 벌이거나 손맛 좋은 연예인의 요리 비법을 전수하는 프로그램이 줄줄이 제작됐고 방송을 탄 유명 셰프의 식당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오죽하면 한때 초등학생의 선호 직업 1위가 인기 셰프였을까.
먹방 열풍이 유행한 배경으로 한국 사회가 직면한 ‘허기 사회’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다. 먹어도 먹어도 배고픔은 채워지지 않고, 이 유령 허기는 계속 무언가 집어삼키게 한다. 그런 분위기에서 호응을 얻은 상업적이거나 자극적인 소재 일변도 먹방 프로그램의 홍수에서도 몇 년째 꾸준히 철학을 고수하는 프로그램들이 있다.
벌써 10년 세월 가까이 방영되는 KBS ‘한국인의 밥상’. 영상에는 최불암 말고는 셀럽이나 인기 셰프가 등장하지 않는다. 오늘 하루도 소박하고 정성 어린 밥상을 차리는 촌부들이 등장할 뿐이다. 투박하고 심심한 시골 밥상의 맛처럼 호흡이 긴 방송을 보고 있자면 느리게, 천천히 공들여 만드는 삶의 리듬을 표방한 슬로우 푸드가 떠오른다. 오롯이 음식에 집중하는 이들의 한 끼를 위한 수고스러움에 경의를 표할 뿐이다. 여기에 질그릇처럼 묵직하고 투박한 최불암의 목소리가 더해지면서 3첩밖에 없는 새참 밥상도 꿀맛 같고, 출연진의 사연과 인생 역시 묵은 된장처럼 맛이 깊다.
만화가 허영만의 ‘백반기행’은 좀 더 역동적인 즐거움을 준다. 소문난 노포를 부지런히 발품 팔며 찾아다니는 것도 그러하고, 잘 통하는 게스트가 출연한 날이면 식당 서너 곳을 순례하며 말 그대로 노장의 썰(說)을 푼다. 더구나 직설적인 화법으로 게스트를 당황하게 하는 허영만의 짓궂은 설전은 때론 감칠맛 나는 음식처럼 ‘재미지다’. 게스트와 친분에 따라 그날 방송의 묘미가 달라지는 점이 ‘백반기행’의 포인트랄까.
‘한국인의 밥상’은 느림의 미학을, ‘백반기행’은 백반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사는 도시인에게 대리만족을 선사한다. 물론 내가 방문하면 저렇게 풍성하게 나올까 하는 의심은 간혹 들지만…. 오늘 저녁은 우리 동네 나만 아는 골목 끝 집 육개장이다.
동명대 외래교수·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