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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의 부산 가요 이야기 <9> 실향민의 노래 ‘꿈에 본 내 고향’

취객 구슬픈 망향가에 울컥… 두 실향민 음반으로 제작해 전국민 울려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9-27 19:03:41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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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진서 홀로 내려온 가수 한정무
- 안주 출생 레코드 설립자 한복남
- 부산 피란시절 어렵게 앨범 취입

- 1~2절 사이 심경 담은 독백 넣어
- 듣는 이들 귀향 충동 일으키고
- 떨리는 음색·울먹이는 창법 더해
- 어렵게 살던 사람들 마음 달래줘

그 누군들 가슴 속에서 고향이 그립지 않은 사람이 있으리오만 한국인에게 있어서 고향은 온전히 하늘과 조상 그 자체였다. 6·25전쟁 시절 눈물로 고향을 떠나온 북한 실향민들의 경우는 곧 하늘의 상실이요, 조상과의 작별이었다.

이후 그들은 남쪽으로 내려와서 꿈에도 잊을 수 없는 북녘하늘을 자나 깨나 그리워하며 떠나온 고향마을에 계시는 조상님 무덤을 가 뵙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언젠가는 돌아가리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은 채 마냥 대책 없는 날들을 기다리다가 기어이 늙고 병들어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난 실향민들이 얼마나 많은가. 고향이란 두 글자를 떠올리면 가슴 속에서 습기로 맺혀오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그리움, 다정함, 안타까움 등이다. 고향은 언제나 오래 살았던 곳, 늘 돌아가고 싶은 곳, 언제나 잊을 수 없는 곳으로 모든 한국인의 가슴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
추석을 맞아 한 실향민 가족이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서 북녘을 향해 차례를 지내는 모습. 국제신문DB
■그리운 북녘 땅 어머니 한 편의 시로

수년 전 돌아가신 김규동(1925~2011) 시인은 두만강 물소리가 들리는 고향 함경북도 종성의 고향집을 세상 떠날 때까지도 그리워했다. 청년 시절, 시인이 고향을 떠나올 때 어머님은 자식을 고향마을 하얀 다리에서 배웅하셨다. 산굽이 돌아가는 아들이 까만 점으로 안보일 때 까지 치맛자락 걷어 올려 하염없이 눈물만 닦으셨다. 시인은 그 어머님을 그리워하며 평생을 기다리다 돌아가셨다. 마침내 시인은 어머님을 만나려고 한 마리 나비가 되어 팔랑팔랑 휴전선으로 날아가셨다. 시인은 자신의 시작품에서 북녘 땅 그리운 어머니를 이렇게 담아내고 있다.



30년 동안/ 어머니는/ 아들이 밟고 간/ 38선 근처에 와서/ 서성거리다 돌아가신다/ 번개가 치는 그믐밤에도/ 날씨 좋은 날에도/ 아들의 그림자라도 볼까 하여/ 그렇게 하신다/ 살아있는 목숨이라면/ 어찌하여 만날 수 없는 것이냐/ 누가 우리의 길을 막는 것이냐/ 잡초만 무성한 38선을/ 아무리 서성거려도/ 어머니는 알 수 없는 일이어서/ 아득한 하늘 끝/ 홀로 헤매다 돌아가신다

-김규동의 시 ‘모정(母情)’ 전문



이 시를 잔잔히 읽어가노라면 사뭇 가슴이 따갑고 아려온다. 1950년대 초반 부산으로 피란 내려왔던 실향민들의 가슴 속도 이와 같았을 것이다. 이 시기 그들의 가슴 속을 절절히 사무치게 하고 울음을 터뜨리게 만들었던 노래 하나가 있으니 바로 ‘꿈에 본 내 고향’(박두환 작사·김기태 작곡)이다.

이 노래는 1943년 만들어져 가수 문일화가 악극단 무대에서 불렀지만 전쟁 이후 부산 피란시절 가수 송달협이 악극단무대에서 실향민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었던 가요작품이다. 그런 노래를 1951년 부산에서 도미도레코드를 운영하던 한복남이 음반으로 제작 발표하여 큰 인기를 얻었다. 가수는 함북 나진 출생으로 부산에 홀로 피난 온 한정무. 이미 1938년 빅타레코드사에서 ‘대동강 달밤’(오준희 작사·형석기 작곡)을 발표한 적이 있는 가수였다.

■악극단서 불린 노래… 음반으로 취입

도미도레코드사의 음반 재킷.
평남 안주 출생으로 도미도레코드의 설립자였던 한복남과는 대중음악계의 친밀한 동지이자 같은 실향민의 처지였다. 늘 국제시장 부근을 돌아다니며 유성기바늘과 음반을 팔면서 힘겨운 피란생활을 이어갔다.

하루는 두 사람이 송도 부근 바닷가를 거닐고 있는데 한 취객이 비틀걸음으로 걸어가며 ‘꿈에 본 내 고향’을 부르는 광경을 보았다. 가슴이 울컥해졌다. 한복남은 한정무에게 그때까지 음반으로 나온 적이 없던 이 노래의 취입을 제의했다. 가마니와 미군담요를 둘러쳐서 엮은 허술하기 짝이 없던 도미도레코드사 녹음실에서 이 노래를 취입했다. 두 실향민의 기획으로 제작 발표된 이 노래는 곧바로 전체 실향민들의 가슴 속으로 젖어들어 피눈물의 아픔과 서러운 공감을 자아내었다.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 저 하늘 저 산 아래 아득한 천리/ 언제나 외로워라 타향에서 우는 몸/ 꿈에 본 내 고향이 마냥 그리워



고향을 떠나온 지 몇몇 해더냐/ 타관 땅 돌고 돌아 헤매는 이 몸/ 내 부모 내 형제를 그 언제나 만나리/ 꿈에 본 내 고향을 차마 못 잊어

-‘꿈에 본 내 고향’ 전문



가수 한정무.
한정무는 이 노래의 1절과 2절 사이에 기막힌 대사를 삽입하고 있다.

‘뜬구름아 물어보자 어머님의 문안을 /달님아 비춰다오 인성이와 정숙이의 얼굴을 /생시에 가지 못할 한 많은 운명이라면 /꿈에라도 보내다오 어머님 무릎 앞에 /아, 어느 때 바치려나 부모님께 효성을 /꿈에 본 내 고향이 마냥 그리워.’

가수가 직접 모놀로그로 엮어가는 이 대사 부분은 듣는 이의 애간장을 녹이면서 귀향충동을 왈칵 치밀어 오르도록 이끌었다.

한정무는 이 노래를 통해 실향민으로서의 절절한 심정을 유감없이 담아내었다. 눈물에 젖어 파들파들 떨리는 음색과 울먹이는 창법으로 취입한 이 노래는 부산 피란시절 막장의 삶을 어렵사리 이어가던 실향민들에게 크나큰 공감으로 퍼져나갔다.

필자는 일찍이 고향을 떠나 해외 여러 나라에서 살아가는 동포들을 방문하여 이 노래를 자주 불렀다. 독일 베를린에서 파독간호사로 왔다가 거기 살고 있던 늙은 간호사들, 스위스 베른 지역의 교민들, 미국 워싱턴DC 지역의 교민들, 중국 칭다오 지역 한국공단 교민들, 카자흐스탄 알마티, 몽골 울란바타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일본 오사카의 재일동포 교민들 앞에서 이 노래를 불렀다. 그 자리에서 울지 않는 분이 아무도 없었다. 고향을 떠나 여러 해를 타관객지에서 살아가며 부모님 임종도 못한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얼마나 가고 싶은 고향이었던가?

고향이란 말만 들어도 저절로 눈가에 습기가 맺혀오는데 ‘꿈에 본 내 고향’을 부르는 필자를 부둥켜안고 엉엉 울던 독일 교민들이 떠올라서 새삼 가슴이 먹먹해진다. 시인·가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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