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산메디클럽

다큐 찍어 보고서 <1> 프롤로그 - ‘여섯 번’은 하지 말라고 했다

  • 국제신문
  • 신동욱 기자
  •  |  입력 : 2020-09-03 15:45:36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무모했다. 회사에 제안은 했지만 막상 3개월만에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작업이 정말로 가능한지 스스로도 가늠할 수 없었다. 일단 큰소리는 크게 쳤다. 한 번 해보자는 마음이 앞섰다. 그러나 곧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회사에서 최종 결정한 뒤엔 영화 연출 경험이 있는 지인들 거의 모두에게 전화를 했다. 어떻게 하면 이 프로젝트가 가능하겠느냐고, 판은 제가 벌여놓고는 남일처럼 물었다. 질문은 하나였지만 답변은 간단하지 않았다. 수년을 들여 다큐멘터리 한 편을 작업한다는 김 감독은 즉각 손사래를 쳤다. 김 감독은 자료조사에만 그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들인다고 했다. 물릴 수 없는 프로젝트라는 말을 그 앞에서 할 수는 없었다. 제 말이요, 회사가 무리한 프로젝트를 그냥 냅다 맡기더라고요. 허허, 그렇게 거짓말을 둘러대 전화를 끊고 다음 날 신경성 대장염에 걸렸다. 지역에서 다큐멘터리를 수 편 만들어 연출력을 인정받은 김 감독이었다. 주변에 먼저 조언을 구한 뒤에 일을 추진했어야 했나. 좌변기에 앉아 어디서부터 일이 잘못된 건지 복기했지만 판세를 돌릴 수는 없었다. 일단 원하는 답변이 돌아올 때까지 계속 전화를 돌렸다. 그러다 오래 전 직장 상사로 모셨던 어느 PD 한 분께 발신인의 발신 의도를 간파당했다. “이미 취재를 마친 기획기사를 원작 삼아 만드는 영화라 하니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다소간 유보적이면서도 발신인의 심리 상태를 격려하는 의미를 담은 조언이었다. 그제서야 발신인은 좌변기에서 일어날 수 있었지만, 문제는 수신인이 해 준 조언을 지나치게 제 입맛대로 해석해버렸다는 점이었다. “된다 하던데요.” 부장에게 그렇게 보고하고선 스태프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큐멘터리 영화 <청년 졸업 에세이> 제작을 시작했다.

   
지난 5월 2일 제작회의 당시. 감독(왼쪽) 오른쪽에 앉은 김명재 촬영감독이 반쯤 졸고 있다. 이때 알아봤어야 했다. 사진 = 바림 손영훈
지나 생각해보니 그때까지도 마음은 반반이었다. 해내겠다는 의지로 누구보다 뜨거워서는 부서 사람 여럿을 괴롭히다가도, 화장실만 갔다 오면 내가 아닌 다른 이유로 프로젝트가 무산되기를 슬쩍 바랐다. 그러나 어려운 시국에 지역 기업들이 뜻을 모아주어 제작비까지 모이자 발신인은 강한 전방 압박에 시달렸다. 제작비가 적지 않았다. 발신인은 뒤늦은 출구 전략을 모색했지만 시기적으로 맞지 않았다. 선수들에게 하루 종일 공을 돌려도 책임 소재는 감독에게 있었다. 어떻게든 성과를 내어 내뱉은 말에 책임을 져야 했다. 밤잠이 줄고, 가위눌린 채 잠에서 깨어나는 날이 많았다. 엄청 효자 노릇하느라고 살이 쪽쪽 빠지는 막내를 부모님께서 내내 근심하셨다.

전략이 필요했다. 짧은 기간 안에 설명이 충분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봤다. 내레이션을 쓰면 말을 구성하는 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보다 편리하게 이야기를 이끌 수 있었다. 하지만 내레이션을 쓰면 영화보다는 방송 다큐멘터리 성격이 짙을 것 같았고, 내레이터를 맡아 줄 1985년생 부산 출신 영화배우를 급하게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고민 끝에 인물 인터뷰를 영화 전체에 깔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터뷰이들을 충분히 만나야 했다. 원작으로 삼은 기획기사 ‘청년 졸업 에세이 - 1985년생 김지훈·김지혜’를 출력해서는 글자를 알아볼 수 없을 때까지 들고 다녔다. 그 다음엔 어떤 인터뷰가 필요한지, 나열한 인터뷰 위에 어떤 내용을 덧씌울지를 결정하고 김 PD에게 인터뷰이 섭외를 주문했다. 김 PD가 섭외를 진행하는 동안에는 기사가 제시한 담론 중 어떤 것을 먼저 보여줄지를 골라냈다. 크게 봤을 때 하나는 지역 담론, 다른 하나는 세대 담론이었다. 둘 다 영화를 관통할 핵심 키워드지만 지역 담론보다는 세대 담론에 관한 내용을 뒤쪽으로 배치하는 편이 보편적인 국내 관객들 정서를 움직이기에 좋겠다고 판단했다. 한 달 내도록 신문사 사진 데이터베이스까지 활용해 데이터 그래픽 틀을 잡고는 다시 애니메이션 구상에 매달렸다. 그렇게 세월을 다 보냈다. 첫 촬영은 스태프들이 있는 대로 조바심을 내던 5월 말이었다. 부산 영도구, 그중에서도 일자리가 없어지면서 청년을 가장 많이 잃었다는 봉래2동에서부터 영화를 시작했다.

   
대학 1학년 때 어느 교수님 한 분이 “다섯 편까지는 찍어 봐야 자기 재능을 알 수 있다” 하셨으므로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감독(왼쪽) 너머 근로시간 준수를 요구하며 삭발한 김찬우 PD. 김명재 촬영감독의 표정도 썩 좋지 않다. 사진 = 바림 손영훈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는 동안 단편영화를 모두 다섯 편 찍었지만 잘해야 ‘A+’를 받았을 뿐 영화제 등에서 뚜렷한 성과를 낸 작품은 없었다. 아버지께서 아버지를 연기해주셨던 첫 작품부터, 동반 입대했던 친구가 전역하기를 기다려 찍기 시작한 이른바 ‘행복 3부작’. 그 중 친구가 단독 연출한 한 편을 뺀 두 편과 단편 다큐멘터리 한 편, 그리고 2017년 대학 동기 집을 통째로 빌려 배우와 먹고 자며 촬영한 작품까지. 매 작품 열과 성을 다했으나 다섯 편 모두 술자리에서 추억을 소환할 때만 특별히 언급됐다. 그래도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대학 1학년 때 어느 교수님 한 분이 “다섯 편까지는 찍어 봐야 자기 재능을 알 수 있다” 하셨으므로. 다섯 편을 특별히 나무라는 사람도 없었다며 스스로 위안 삼을 수 있었다.

그러나 거기서 멈췄어야 했다. 다섯 편을 찍고도 거둔 성과가 없으면 그만하라 하셨으므로. 물론 <청년 졸업 에세이>가 여섯 번째 작품이라는 점을 회사에 따로 말하지는 않았다. 솔직히 여섯 번은, 절대 하지 말라고 했었다.신동욱 기자 woogy0213@kookje.co.kr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울산 코로나19 확진자 16명 추가…지인모임 관련 7명 포함
  2. 2부산 코로나19 유흥업소발 여파 ‘심각’…누적 460명
  3. 3오시리아 테마파크 A to Z (feat. 루지는 5월, 롯데월드는 8월)
  4. 4경남 코로나19 신규 확진 8명…김해·진주 등 모두 지역 감염
  5. 5김해 보습학원 13명 감염...17일 경남 확진 65명
  6. 6‘이하늘 동생’ 45RPM 이현배, 자택서 사망...사인 조사 중
  7. 717일 부산 확진자 31명 중 11명 ‘사하구 거주자’
  8. 8오늘부터 일반도로 시속 50㎞·이면도로 30㎞ 제한…위반시 과태료
  9. 9부산 울산 경남 구름낀 주말...황사로 미세먼지 나쁨
  10. 10간판 불 끄고 불법영업…해운대 유흥업소 2곳 적발
  1. 1박형준號 미래혁신위 정치인 39% 편중…2030세대는 ‘0’
  2. 2신임 국무총리에 김부겸, 5개부처 개각
  3. 3국힘, 차기 당권·야권통합 파열음…거취 표명 미루는 주호영이 원인?
  4. 416일 총리 포함 개각할 듯…청와대 개편도
  5. 5민주당 신임 원내대표에 친문 4선 윤호중
  6. 6여당 강성층, 초선에 문자폭탄…“민심이다” vs “선 넘은 것”
  7. 7문재인 대통령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주도 위해 다각 지원”
  8. 8청 신임 정무수석에 이철희, 대변인 박경미
  9. 9총리교체·5개부처 개각… 청와대 인적쇄신 동시단행
  10. 10송영길 vs 우원식 vs 홍영표, 여당 당권레이스 3파전
  1. 1오시리아 테마파크 A to Z (feat. 루지는 5월, 롯데월드는 8월)
  2. 2부산 강서 아파트값 상승률, 5대 광역시 구·군 중 최고
  3. 3부산신항에 중소형 컨선 첫 전용부두 만든다
  4. 4북항 오션뷰에 랜드마크, 입소문 타고 분양 조기 완판
  5. 5‘액면분할’ 카카오 주가 장중 18% 폭등
  6. 6“일본 원전수 피해 미미할 것” 정부 지난해 전망 보고서 파장
  7. 7삼성전기, 초소형 IT용 MLCC 신제품 개발
  8. 8보증금 6000만 원 이상 ‘전월세신고제’ 6월부터
  9. 9신분증 없어도 부산은행 금융거래 가능
  10. 106개월 여정 ‘신비한 과학여행’ 떠나볼까요
  1. 1울산 코로나19 확진자 16명 추가…지인모임 관련 7명 포함
  2. 2부산 코로나19 유흥업소발 여파 ‘심각’…누적 460명
  3. 3경남 코로나19 신규 확진 8명…김해·진주 등 모두 지역 감염
  4. 4김해 보습학원 13명 감염...17일 경남 확진 65명
  5. 5‘이하늘 동생’ 45RPM 이현배, 자택서 사망...사인 조사 중
  6. 617일 부산 확진자 31명 중 11명 ‘사하구 거주자’
  7. 7오늘부터 일반도로 시속 50㎞·이면도로 30㎞ 제한…위반시 과태료
  8. 8부산 울산 경남 구름낀 주말...황사로 미세먼지 나쁨
  9. 9간판 불 끄고 불법영업…해운대 유흥업소 2곳 적발
  10. 10부산 15개 구 미세먼지주의보 발령
  1. 1‘손흥민 풀타임’ 토트넘, 케인 멀티골에도 에버턴과 2-2 무승부…7위 유지
  2. 2김하성 다저스전 대타 출전...라이벌전서 ‘안타·도루·득점’
  3. 3‘팀 민지’ 여자컬링, 세계랭킹 1위 스웨덴 제압...조 5위 기록 중
  4. 4공은 잘 받지만 송구 불안…지시완 기대 반 우려 반
  5. 5FA컵 이변 속출하는데…아이파크, 4R 진출 실패
  6. 6장미란 후계자 손영희, 올림픽 출전권 사냥
  7. 7김하성, MLB 시즌 두 번째 멀티히트
  8. 8'고수를 찾아서2' 전통에 함몰되면 도태된다…노파(인천)팔괘장의 도전
  9. 9롯데 김진욱-KIA 이의리 ‘슈퍼루키’ 맞대결
  10. 10KBL 부산 kt 소닉붐, 시즌 종료
전다형의 시 둘레길
회동수원지, 나의 ‘오륜호수’
조봉권의 문화 동행
작가 이병주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 ‘시작’ 현장에서
리뷰 [전체보기]
살인마도, 그를 쫓는 경찰도 모두 괴물…오랜만에 만난 ‘웰메이드 스릴러’
‘메모리’ 한국어 제창 때 가장 큰 박수…그리자벨라 독창엔 전율
새 책 [전체보기]
한국고대사(윤내현 지음) 外
기발한 천체 물리(닐 디그래스 타이슨, 그레고리 몬 지음·이강환 옮김) 外
신간 돋보기 [전체보기]
청각장애인 구두 기업 이야기
인류와 균, 생존을 건 투쟁기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겨울’-전영근 作
‘Migrants’ - 손봉채 作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택배기사 /김종희
돌탑-위정자들에게 /차달숙
이원 기자의 드라마 人 a view [전체보기]
‘스위트홈’의 이응복 감독
종영 ‘산후조리원’의 엄지원
이원 기자의 영화 人 a view [전체보기]
‘자산어보’ 이준익 감독
‘자산어보’ 배우 설경구
이원 기자의 Ent 프리즘 [전체보기]
윤여정 오스카 수상만큼 기대되는 수상소감
상상력 필요로 한 퓨전사극, 흥미보다 국민정서 살펴야
조재휘의 시네필 [전체보기]
계급타파 이상과 현실…조선의 근대화 좌절 스토리
‘파이터’ 속 클로즈업, 그 강력한 한 방
뭐 볼까…오늘의 TV- [전체보기]
뭐 볼까…오늘의 TV- 2021년 4월 15일
뭐 볼까…오늘의 TV- 2021년 4월 14일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1년 4월 15일(음력 3월 4일)
오늘의 운세- 2021년 4월 14일(음력 3월 3일)
장은진의 판타스틱 TV [전체보기]
우리 인생의 드라마 ⑦ MBC '간난이'
트로트 팬덤의 진화 ④ 김희재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오늘 삼월삼짇날은 화전 지지고 쑥떡 해 먹는 날
좋은 스승을 찾고자 하는 유호인의 글
  • 저출산 고령화 대응,부산 콘퍼런스
  • 생명의강 낙동강 수필공모전
  • 2021부산하프마라톤
  • 바다식목일
  • 유콘서트
  • 18기 국제아카데미 모집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