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싫든 좋든 야생화 그림 그리는 작가로 상표가 붙어 있어 그쪽 그림만 잘 나가니 어쩔 수 없이 산, 꽃, 새, 숲 , 잡초, 폭포 등을 그리고 있다. 사람도 좀 그리고 싶은데 사람 그리는 것은 잘 안 팔린다. 그것도 잘 팔리도록 매력 있게 그려보려고 하고 있다.”(책 ‘김종학의 편지’ 중)

왼쪽부터 김종학 작가의 ‘Girl’ ‘무제’ ‘무제’. 조현화랑 제공

조현화랑 해운대점에서 김종학 작가의 인물화만 모은 첫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생기 넘치는 자연을 그려낸 그림으로 잘 알려진 작가지만 이처럼 인물화에 상당한 열정을 쏟고 있었다.

전시장에는 1977~1989년 작가의 초기 인물 드로잉 28점과 신작 41점이 걸려 있었다. 조형 양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그려진 그의 붓질에는 동양화의 작풍(作風) 중 최고 이상인 기운생동(氣韻生動)이 녹아있고, 대상을 단순화하는 면모에는 미국 팝아트의 영향도 느낄 수 있다.

그는 1977년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그림을 배우면서 인물화에 관심을 기울였다. “길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 지하철에서 마주 보고 서 있던 사람 중 내 기억에 남은 사람들을 집에 와서 그리곤 했다. 다양한 인종의 얼굴과 모습이 흥미로웠다. 같은 인종이더라도 피부색, 머리 모양, 옷차림이 다 달랐다.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보는 것만큼이나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이 좋은 공부가 됐다.”

작가는 뭔가 구체적인 대상이나 구상화가 그리고 싶을 때 사람을 그렸다. 대상은 특정한 누군가가 아닌 화가의 마음속에 새겨진 얼굴이다. 그는 자연을 그릴 때 미리 그린 밑그림을 보지 않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붓질이 밑그림에 얽매이고 자연이 담은 기운을 그려낼 수 없기 때문이다.

작가가 사람을 인식하는 방식도 자연과 다르지 않은 듯하다. 풍경화가 자연의 몸을 빌린 인간이라면, 인물화는 인간의 몸을 빌린 자연이기 때문이다. 그가 그려낸 인물은 자연처럼 그림자도 없이 간소화되고 정면으로 표현된다. 그러면서 그림과 관람객 사이에 일대일 관계가 만들어진다. 인물화에는 그런 특징이 더 두드러져 그림 속 주인공이 강하게 무언가 호소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런 ‘정면 샷’은 자칫 격이 떨어져 보일 수 있어 대가가 아니면 감히 시도하지 못한다. 조현화랑 윤보람 큐레이터는 “정면과 정면이 만나는 구도는 존재의 강한 부각, 생명의 강한 부각을 희구하는 화가의 기질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오는 30일까지. (051)746-8660 권용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