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 가장이 힘겹게 수레를 끈다. 가족들은 뒤에서, 옆에서 힘을 보탠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그렇게 고비를 넘어왔다. 정치인의 리더십은 올바른 비전 제시와 솔선수범, 그리고 공동체 구성원을 하나로 모으는 데서 빛난다. 2015년 ‘청초 이석우전-사람의 삶을 그리다’(동아대 석당미술관)에서 소개됐던 ‘총화도’. 부산 화단에서 전통회화의 명맥을 지키며 후진 양성에 힘썼던 이석우(1928~1987) 선생은 새로운 수묵채색화의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제신문DB )
- 정치란 결국 국민이 만드는 것
-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가꿔야
- 공자는 솔선수범·성실 등 강조
- 현대 정치인 ‘당선’에만 주목
- 신뢰·포용 없이 대립만 가득
- 제도 탓 말고 스스로 돌아봐야
열정, 균형감각, 책임감은 베버가 꼽은 정치인의 덕목으로 유명하지만, 정작 정치인은 당선을 최고 덕목으로 친다지요. 독일 사회과학자 막스 베버(1864~1920)가 정치인으로서 마땅히 갖춰야 할 가치를 조목조목 짚었다면, 우리나라 선출직 정치인은 당선에 목을 맨다고 꼬집는 말입니다. 뜨거운 가슴과 냉정한 머리와 두둑한 배짱으로 공동체 비전 및 공동체 구성원의 안녕을 위해 노력하는 정치인, 더할 나위 없는 리더십이지요. 신뢰와 포용, 도덕과 소통 대신 내로남불과 막말의 악다구니 사이에 낀 현실 정치인에게 짠 점수를 줄 수밖에 없으니 큰 간극이 느껴집니다.
정치란 바르게 하는 것, 먼저 나를 바로 잡고 세상이 돌아가는 질서를 바로 세우는 일. 바로 공자의 가르침이라고 앞서 말했습니다. 당연히 정치인은 솔선수범하고 성실해야 합니다. 국민이 잘 살게 하고, 국민을 잘 가르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공자의 뜻을 이은 맹자가 다짐했습니다. “그 일을 하겠노라”고. 인에 거하며, 예에 서며, 의와 도를 행하는 대장부의 기개와 정직함으로써 기르고 해침이 없다는 호연지기를 바탕으로 한 당당한 선언이었습니다.
그런 정치인을 기다려야 할까요. 아닙니다. 만들어 가야지요.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내가 그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일은 나로부터 시작됩니다. ‘사람이 희망’이라고 하지요. 그 사람은 불특정 다수의 익명성에 가려진 이가 아니라 세상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나여야 합니다. 내가 오롯이 서려면 스스로 닦아 뜻을 세워야겠지요. 나의 삶이 사회가 되고 경제가 되고 문화가 되고 정치가 되어 보다 나은 세상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야지요. 요즘으로 치면 좋은 정치인을 뽑을 수도 있고, 좋은 정치인이 되겠다고 나서 표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세월호라는 키워드에 뜻을 같이 한 ‘다시, 봄’ 프로젝트의 ‘아하, 누가 그렇게’(QR코드 또는 인터넷 주소 https://youtu.be/6PVJejnE2NY)를 들으며 시작하겠습니다.
■정치, 바로 나의 일일 수 있다
‘논어’(論語) 13편(자로) 1장. 자로가 정치를 묻자 공자께서 솔선수범과 성실이란 화두를 제시합니다. 자신이 먼저 하고 나서 나중에 시키며(선지노지·先之勞之), 게으름 피우지 않아야(무권·無倦)합니다. 정치인이 도리를 솔선하면 비록 수고스럽더라도 이를 따르지 않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물이 아래로 흐르는 이치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 사람’을 기다린 후에 도가 행해지기 마련(대기인이후행·待其人而後行)이지요.(‘중용’ 27장) 그 방법은 옛 것을 익히고 새로운 것을 알아 예를 높이는 일입니다. 도(道)가 천지자연의 이치 및 그 작용이라면 예(禮)는 사회질서와 규칙이라는 점도 이미 언급한 바 있습니다.
덧붙인다면, 천시(天時)가 지리(地利)만 못하고, 지리가 인화(人和)만 못하다는 점입니다. 천시가 시대상을 나타내고, 지리가 사회성을 표방한다면, 그런 통시성과 공시성을 아우르는 것이 인화, 화합이겠지요. 기인(其人)이 행하는 정치이며, 그 기인은 바로 나일 수 있음이 중요합니다.
공자께서 이를 쉽게 설명한 ‘논어’ 9편(자한) 2장 내용을 살펴보죠. 달항 고을 사람이 공자께 어깃장을 놓습니다. “다방면에 걸쳐 두루 알면서도 어느 것 하나 명성을 이룬 것은 없지 않습니까.”(박학이무소성명·博學而無所成名) “그럼 말을 몰까, 활쏘기를 할까, 말을 몰아야겠구나.” 말을 몰겠다(어·御)는 일차원적인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스린다는, 나아가 인정(仁政)을 펼치고자 하는 담대한 의지가 공자의 대답에 담겼습니다.
■정치인 마음가짐 다시 다듬어야
맹자는 이 일을 두고 ‘나를 버려두고 그 누구이겠는가’라고 반문했습니다. 나야말로 그 사람이라는 말이지요. 진정한 실력과 경륜으로 다져진 대장부의 호연지기가 느껴집니다. 이 같은 일을 할 정치인이 필요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바꿔 말하면 조국과 민족을 위한다고, 우리 사회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숱한 정치인을 봐왔으나 진정 그렇게 행동한 정치인을 보지 못했다는 지적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것이 현실이고, 서두에서 말한 큰 간극이 생긴 이유입니다.
2500년 전 공자, 그로부터 100년 뒤 맹자를 오늘 소환하는 까닭은 더불어 살아가자는, 대동사회를 위한 ‘인정’이란 기치의 현실성에 있습니다. 넌더리가 날만큼 겪어온 내로남불에서 벗어난 정치, 정치인을 기대해 볼 만하지 않습니까. 공자의 서(恕),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베풀지 말라’(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는 경구가 지켜지는 모습 말입니다. 사사건건 대립하면서 과거를 파먹는 정치 대신, 미래를 지향하는 정치를 하려는 정치인이라면 가슴에 ‘서’가 필요합니다.
그런 정치인이라면 대놓고 막말을 하지 않겠지요. 증오와 편가르기로 상대에게 흠집을 내고, 거기에 소금까지 뿌리는 일은 이제 그만둬야 합니다.
요즘도 무한경쟁과 불평등에 많은 사람이 도 아니면 모의 삶을 살아야 할 만큼 위태롭습니다. 공자와 맹자가 살던 때를 약육강식의 패권시대라 표현하지만 오늘도 만만찮습니다. 그 시대에 인정의 깃발을 흔들었다면, 역사에서 교훈을 얻고자 하는 지금은 적어도 한 두 발짝은 여유있게 앞서가야 하지요.
그 당시는 권력을 잃으면 목숨까지 내놓았지만, 지금은 투표로 정권을 교체하지 않습니까. 정치 제도를 탓하기 앞서 정치인의 마음가짐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아일랜드 출신 싱어송라이터 시네이드 오코너의 ‘I Believe In You’(QR코드 또는 인터넷 주소 https://youtu.be/318ZDSy3zn4)를 들으며 마치겠습니다.
정상도 수석논설위원 jsd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