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광주·울산 외 日 작가까지
- 진보 성향 미술인 26명 참여
전시장에 들어서자 도깨비가 ‘이눔아 쩌기 구멍 쫌 봐라’고 외치며 눈알을 뽑아낼 듯이 손으로 잡고 있는 그림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1세대 민중미술 작가인 홍성담의 작품으로 전남 영광지역에 있는 원전 내부 곳곳에서 커다란 균열이 발생한 것을 풍자했다. 작가는 “영광 한빛 핵발전소가 건설되고 가동되자 도망간 도깨비다. 발전소에 구멍이 나도 사람들이 모른 척, 안 들리는 척, 안 보이는 척하자 돌아와서 이들의 눈을 억지로 뜨게 다그치는 설정”이라는 설명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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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 진행을 맡은 방정아 작가가 정철교 작가의 ‘순례자들’에 담긴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전민철 기자 |
부산을 포함한 전국 작가들이 ‘탈핵’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담은 시각예술작품을 선보이는 전시 ‘탈핵미술행동2020-고리·서생 핵발전소’가 부산 중구 또따또가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참여 작가는 부산을 포함한 광주 전남 울산 수도권은 물론 일본 진보 미술인 26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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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성담 작가의 ‘이눔아! 쩌기 구멍쫌 봐라’. |
하미화 작가의 작품은 예쁜 꽃을 그린 그림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상하다. 꽃 위에 또 다른 꽃이 똬리를 튼 듯한 기묘한 모습이다. 작품 제목도 ‘이상한 꽃’이다. 작가는 “방사능 누출사고로 파괴된 생태계는 기형 동식물로 아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작은 실수가 자연의 질서까지 파괴할 수 있음을 나타냈다”고 설명했다.
일본 작가 야마구치 이즈미는 회화 ‘죽음의 나라로부터 아직 말할 만한 희망이 있는가’ 연작 5점을 남겼다. 그는 함께 남긴 글을 통해 “지금 전 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괴로워하고 있다. 일본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심각한 방사능 피폭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전 세계를 속여 도쿄올림픽을 개최하려고 코로나 바이러스 대책도 늦췄다”며 일본을 ‘죽음과 절망에 지배된 나라’로 표현했다. 하지만 한국이 세계에서 핵발전소 밀집도가 가장 높다는 점을 참고하면 ‘남의 일’ 만은 아니다.
‘탈핵미술행동’은 전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단체로, 수개월 동안 원전에 관해 토론하고 현장을 살펴본 후 고리·영광·월성 등 핵발전소 근처에 모여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전남지역과 수도권 작가들이 지난해 10월 전남 영광 핵발전소 인근에서 시작해, 지난 2월 울산 월성 핵발전소 앞에서 바통을 이어받았고 다시 지난 6월 부산지역 작가들이 기장 고리 핵발전소 앞에서 퍼포먼스를 했다. 현장에서는 설치·행위예술·공연 등 작은 축제가 벌어졌다. 이번 전시에는 당시 작가들이 미술행동을 토대로 제작한 영상·설치·회화 작품을 선보였다.
전시는 방정아 작가가 노주련 작가와 총괄 진행을 맡았다. 방 작가는 2016년 홍성담·정정엽 등과 원전 답사 모임 ‘핵몽(핵과 악몽의 합성어)’을 꾸린 후 매년 ‘탈핵’을 주제로 하는 전시회를 열고 있다. 그는 “핵발전소라는 현장이 주는 강한 장소성으로 ‘탈핵’이라는 메시지가 한층 강화됐다. 작가들은 현장과 호흡하면서 독특한 작품을 선보였다”며 “핵발전소 문제를 다룬 미술 작품이 별로 없다. 이번 전시를 통해 원전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25일까지.
권용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