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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의 부산 가요 이야기 <4> 연극 작품이 된 지역노래들

‘사의 찬미’ ‘귀국선’ 참담한 시대상…부산 연극인 DNA로 풀어내

  • 이동순 시인·가요평론가
  •  |   입력 : 2020-07-12 18:58:59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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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단 맥 배우들 온갖 역사적 사연 재연
- 당시 창법·삽화 사용으로 효과 극대화
- ‘추억의 영도다리’ 등 후속 무대 기대

- 6·25전쟁 시기 부산은 ‘명반의 산실’
- 레코드회사들 위치 찾아내 기억해야

지난달 하순, 부산 동래문화회관에서는 이색적 연극공연이 있었다. 지역극단 ‘맥(脈)’이 ‘부산의 노래’란 타이틀로 한국가요사에서 부산이 등장하는 대중가요만으로 스토리를 만들었다. 14명의 배우가 등장해 전체 3부 구성으로 펼쳐진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따라가는데 그 흐름은 조금도 무리가 없고 자연스러웠다.

■배우 몸속 문화적 DNA 노래극에 녹여

   
6·25 피난시절 부산 광복동 거리를 걷고 있는 가수 박재홍 부부. 이동순 제공
국내 극단의 공연이라면 거의 천편일률로 외국작품이고 신선한 창작극은 찾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작가의 연출의도는 돋보였다. 부산과 인연이 있던 노래, 부산 지명이 들어갔거나, 부산 출신 가수가 불렀거나, 부산에서 제작 발표된 노래를 골라서 그 곡에 얽힌 뒷이야기를 콜라주 형식으로 표현했다. 당장 떠오르는 노래가 ‘울며 헤어진 부산항’(남인수) ‘귀국선’(이인권) ‘굳세어라 금순아’(현인) ‘경상도 아가씨’(박재홍) ‘슈샤인 보이’(박단마) ‘봄날은 간다’(백설희) ‘이별의 부산정거장’(남인수) ‘홍콩아가씨’(금사향) ‘저무는 국제시장’(황정자) ‘해운대엘레지’(손인호) ‘잘 있거라 부산항’(백야성) ‘돌아와요 부산항에’(조용필) 등이다.

작가는 이 목록에 ‘사(死)의 찬미’를 올려놓았다. 종래 생각해내지 못한 발상이다. 이 노래는 주권을 강탈당한 식민지 백성의 내면풍경을 죽음 이미지로 극대화시킨 작품으로 당시 한국인 전체의 참담한 심경을 대변한 악곡이다. 작가는 이 노래를 취입하러 일본으로 떠나는 가수 일행들이 서울에서 경부선 열차를 타고 내려와 부산에서 관부연락선을 타고 출발한 과정에 착안했다. 당시 모든 레코드 음반 취입은 일단 일본에 가서 하도록 경로가 결정되어 있던 시절, 부산은 일본으로 가는 유일한 통로였다. 가수 윤심덕(1897~1926) 일행은 부산에서 연락선을 탔고, 취입 후 조선으로 돌아오는 길에 배 위에서 현해탄에 몸을 던졌다. 죽음을 찬미한 노래를 취입하고 돌아오는 길에 애인과 더불어 현실적 죽음을 선택했던 것이다. 일제 강점기시대 한국가요사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사의 찬미’는 이런 배경 때문에 부산이라는 항구도시와 연결되어 그 공간성이 한층 의미심장하게 부각된다.

작가는 연출의도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전쟁시기 부산은 ‘전장을 송두리째 끌어안은 부글부글 끓는 시장’이었고, ‘사람과 상처, 가난과 극복, 그 숱한 사연을 품에 안고 융합하면서 부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고. 나는 끝까지 심취해서 연극에 몰입하였다. 가장 염려 되었던 부분이 옛 가요 고유의 맛과 분위기를 어떻게 되살려낼 수 있을지였는데, 공연한 걱정이었다. 출연배우들이 부르는 창법과 분위기는 오리지널 가요를 한껏 활용하면서 효과를 충분히 재현하였다.

그 까닭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배우 모두가 부산에서 출생해 성장하였으며, 부산의 현재성을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모색하고 고뇌하는 지역문화인들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부산 테마 공연의 역동성이 발생하지 않았겠는가? 서울이나 다른 지역의 극단에서 부산 테마 작품을 결코 실감나게 공연할 수 없으리라. 부산을 터전으로 활동해온 배우들의 몸과 정신 속에는 지역의 과거, 현재, 미래가 자연스럽게 갈무리되어 숨 쉬고 있다. 부산에서 형성된 모든 문화적 축적은 배우들의 현재적 삶 속에 고스란히 무르녹아 있으리라. 부산만의 문화적 DNA가 어딜 가겠는가. 그들은 무대 위에서 과거 부산에서 펼쳐졌던 온갖 역사적 사연들을 흥겹게 춤추고 동작하며 눈물겹게 연기하였다. 부산의 극단이기 때문에 부산 가요사 테마의 연극작품을 확실한 성공작으로 뽑아낼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아동들의 고무줄놀이, 국제시장 상인들의 악다구니 등 삽화의 사용은 드라마틱한 효과를 한껏 증폭시켰다. 연극을 보면서 나는 우리 한국인들이 정말 노래를 좋아할 뿐만 아니라 솜씨도 뛰어난 민족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대중음악사 보고 부산… 가치 정립해야

   
지난달 공연한 극단 맥의 ‘부산의 노래’ 포스터.
다만 아쉽고 허전했던 점은 당시 시대성, 역사성이 물씬 풍겨나는 부산 테마 노래가 좀 더 풍부하게 활용되지 못했다는 부분이다. 이를테면 ‘연락선은 떠난다’(장세정) ‘꿈에 본 내 고향’(한정무) ‘에레나가 된 순희’(안다성) ‘추억의 부산부두’(고대원) ‘부산행진곡’(방태원) ‘함경도 사나이’(손인호) ‘청춘등대’(손인호) ‘용두산 엘레지’(고봉산) ‘추억의 영도다리’(윤일로) ‘항구의 사랑’(윤일로) ‘부산갈매기’(문성재) ‘내 고향은 부산입니더’(나훈아) 등이다. 이 노래들 속에는 부산 근현대사의 피눈물이 생생하게 들어있다. 시간과 공간이 제한된 공연이라 어쩔 수 없었겠지만 후속편으로 엮어도 흥미진진하게 이어질 오브제가 아닐까 한다.

옛 가요를 부를 때 가장 조심스런 부분이 당시 가수의 창법에서 느껴지는 고유의 시대적 음영을 제대로 살려내는 일이다. 대부분은 어김없이 실패한다. 우리가 흔히 보던 지역 노래자랑 출전자들이 돌연히 울리는 ‘땡’ 소리에 낭패한 얼굴로 황급히 도망치듯 무대에서 내려오는 풍경을 떠올려 보면 그러한 장면조차 관객들은 웃음을 터뜨리며 자기 앞의 시간을 즐겼다. 시련의 역사 때문에 빚어졌던 아픔과 상처조차 한국인들은 이렇게 풍자와 해학으로 스스로를 부드럽게 조절하고 다듬어가며 현재를 정리하였다. 그것은 미래시간에 대한 안정적 대비였다.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부산은 진정한 보물창고이다. 아직도 그 가치가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가요작품들이 부지기수이다. 6·25전쟁 시기 부산에서 문을 열고 영세한 환경에서 음반을 찍어내던 레코드사들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내어 그곳을 기억의 장소로 지정해야 한다. 도미도레코드, 미도파레코드, 빅토리레코드, 코로나레코드, 스타레코드, 신신레코드, 제일레코드 등 기라성 같은 레코드회사들이 피난시절, 이를 악물고 명품 가요음반들을 잇달아 찍어내던 그 역사적 공간이 모두 부산에 있었다. 우리는 지금 이 빛나는 장소를 과연 기억이나 하고 있는가?

이동순 시인·가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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