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염병, 역사를 흔들다
- 14세기 페스트부터 코로나까지
- 역병 세계적 대유행 연구 기록
- 교역·노동이주 등이 확산 요인
# 전염병 전쟁
- 6·25 전쟁 때 민중은 방역 전쟁
- 과도한 살균제 살포는 부작용
21세기 문명사는 코로나 사태 이전과 이후로 나뉘지 않을까. 무역과 해외여행이 막대한 타격을 입은 것은 물론 ‘사회적 거리두기’와 ‘언택트’란 신조어가 등장했고, 마스크는 상비품이 됐다. 이 모든 변화가 전염병 때문이니, 우리가 어디쯤 서 있고, 어디로 가는지 알기 위해선 전염병의 역사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다. 마침 700년에 걸쳐 6개 대륙에서 벌어진 전염병의 투쟁을 짚어보는 책과 한국사회에서 가장 많은 전염병이 돌았던 한국전쟁 당시의 전염병과 보건의료 정책 등을 살펴보는 책이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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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군 보병연대가 전염지역의 집들을 청소하는 모습. 홍콩, 1894. 푸른역사 제공 |
‘전염병, 역사를 흔들다’는 영국의 의학사 교수가 12년 동안 연구한 결과물이다. 저자는 관련 학자들의 선행 연구와 다양한 학술 자료 등을 살펴, 특정 국가에 국한한 전염병 투쟁사가 아니라 상당한 지리적 범위에 걸친 장기간의 상호 작용을 추적한 ‘세계사’로 결실을 맺었다.
책은 14세기 페스트에서 콜레라, 황열병, 가축 질병인 우역은 물론 광우병과 조류 인플루엔자 등 동물 전염병과 21세기 사스와 메르스까지 다루었다. 1860년대 영국 의사 윌리엄 버드는 전쟁과 무역이 역병을 낳고 그 전염병의 여파가 역사의 흐름을 바꾼다고 했다. 여기에 주목한 저자는 풍토병이 세계사적 문제로 등장하게 된 배경으로 무역의 역할, 그리고 세계적 유행병이 지구촌을 어떻게 바꿨는지를 파고들었다.
실제 19세기 중반 유럽을 공포에 떨게 한 콜레라나 아메리카 대륙을 뒤흔든 황열병의 확산 뒤에는 노예무역을 비롯한 국제교역과 노동 이주, 성지순례 등이 있었다.
전염병의 원인이 밝혀지기 전까지 전염병 억제를 위한 노력은 ‘격리’였다. 저자는 14세기 이탈리아에서 발령된 ‘피스토야 칙령’부터 1655년 암스테르담에 세워진 북유럽 최초의 상설 격리병원, 1845년 노예무역을 감시하다 황열병에 걸려 선원 3분의 2가 사망한 ‘에클레어호 사건’ 등 격리의 역사도 살핀다. 저자는 새로운 전염병이 등장하는 현대에는 국제 공조를 바탕으로 새로운 방역 방식과 제도를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염병 전쟁’은 한국전쟁 당시 민중의 삶을 연구해온 역사학자가 70년 전 총을 든 전쟁 외에 민중은 전염병과의 전쟁을 벌였다고 말한다. 당시 장티푸스·두창·발진티푸스 등이 급속하게 퍼져 생존을 위협했고, 그에 따라 방역과 보건의료 정책 등도 변화했음을 방대하고 상세한 문헌 통계 등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때 감염병 관리를 맡은 주한 유엔 민간원조 사령부(UNCACK)는 방역을 위해 모든 인구에 백신 접종을 하는 한편, DDT를 살포하고 영·유아 정기 예방접종 같은 기초적 보건의료 체계도 마련했다. 만 12세까지 받는 예방접종의 역사가 시작됐다. 그런데 예방접종과 DDT 살포 같은 조치는 일상에서 폭력적으로 수행됐다. 인체는 물론 가축·수로·우물·가옥에 무차별적으로 뿌려진 DDT는 독성이 강해 피부에 노출되면 안 됐지만 그런 위험성은 고려되지 않았다. 또 방역증을 발급해 예방접종자임을 확인하던 조치는 방역증 소지 여부로 통행과 외출, 심지어 식량 배급까지 통제하는 결과를 낳았다.
저자는 현재 우리가 코로나19로 인해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지만 불필요한 공포심 조장은 경계하라고 조언한다. 전염병에 대한 공포심은 지금까지 지켜온 공동체의 가치를 한순간에 무너뜨리며, 약한 대상에게 공격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임은정 기자 iej09@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