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단 인한 비정상적인 풍경
- 2009년부터 국방부와 기록
-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미완
박종우 작가가 강원도 풍천원 들판 습지를 촬영한 안개 자욱한 멋진 풍경엔 귀기(鬼氣)가 서려 있다. 웅덩이에 물이 고여 있어 비가 온 다음 날 찍은 듯하다. 맑은 날 비무장지대(DMZ)는 초원이 끝없이 펼쳐진 동물들의 지상낙원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비만 오면 여기저기서 ‘펑’하는 폭발음이 울린다. 고라니나 멧돼지 등이 빗물에 떠내려온 지뢰를 밟아 터지는 소리다. 아마 그 들짐승은 발목이 사라져 고통에 몸부림치다 숨이 멎으면 독수리들의 찬거리가 됐을 게 분명하다. 6·25 한국전쟁이 만들어낸 비정상적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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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우 작가가 고은사진미술관 전시실에서 작품 촬영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이원준 프리랜서 windstorm@kookje.co.kr |
부산은 한반도에서 DMZ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도시지만, 전쟁 당시에는 임시수도이자 전 국민의 피란처였다. 전쟁 발발과 부산 임시수도 지정 70주년을 맞아 DMZ를 생생하게 살펴볼 전시가 마련됐다. 박종우 사진가의 ‘비무장지대 DMZ’가 부산 해운대구 고은사진미술관과 프랑스문화원 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린다. 전시장에는 금지된 숲을 정찰하는 병사들의 팽팽한 긴장감, 평화로워 보여 히말라야 사원을 떠올리게 만드는 감시초소(GP), 정적이 감돌면서 수려한 자연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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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철원 풍천원 들판 습지로 대부분 미확인 지뢰지대다. 풍천원은 905년 궁예가 태봉국을 만들고 개성으로부터 도읍을 옮긴 자리로 알려졌다.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
그는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을 앞둔 2009년 비무장지대 공식 기록을 남기기로 한 국방부의 계획에 따라 그해 여름에 준비를 시작해 10월부터 촬영에 들어갔다. “DMZ 내 GP를 방문해 건물 내외부를 찍고 항공촬영까지 한다는 계획은 정전협정 발효 후 처음이었다. 휴전 후 일반인은 물론 대다수 군인조차 접근하지 못했던 곳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일은 가슴 벅찬 일이었다. 과거에는 예민한 군사비밀로 여겨져 왔던 GP에 관한 기록까지 허락한 건 우리 군의 자신감이었다.”
작가가 GP 십여 곳을 방문했을 무렵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피격사건이 일어났다. 남북 간 긴장이 갑자기 고조되면서 촬영계획은 취소됐다. “촬영 당시 사진 작업을 하는 나를 확인한 북한군 측에서 확성기로 ‘사살하겠다’는 등의 협박을 하기도 했다. 하는 수 없이 남방한계선 외곽에서 철책 너머로 비무장지대를 찍을 수밖에 없었다. 긴장 상태가 완화되고 작업이 다시 궤도에 오르려 할 즈음에는 연평도 포격 사건이 터졌고 기록사업은 종료됐다.”
남북 관계는 계속 출렁이고 있다. 2018년 화해·협력 분위기가 일자 양측은 9·19 군사합의로 GP를 철거하기로 했고, 10개를 철거했다. 작가가 2010년 강원도 고성에서 촬영했던 금강산 GP 사진이 공개돼 보존 여론이 일자 결국 철거 대상에서 제외되고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휴전 후 60여 년간 극히 일부만 볼 수 있었고 아무런 기록도 남겨두지 않았던 GP를 갑자기 철거한다는 것은 신중히 생각해야 할 일이었다. 한반도에 평화의 기운이 피어나기만 하면 DMZ를 둘러싼 온갖 목소리가 우후죽순처럼 솟아오른다. 그러나 섣부른 아우성에 앞서 더욱 중요한 것은 현재의 상태를 잘 기록하고 보다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는 일이다.”
작가는 이후에도 분단이 남긴 다양한 풍경을 기록하듯이 담아오고 있다. 전시와 함께 10년 동안 렌즈에 담아낸 귀한 기록도 사진집에 엮여 세상에 나왔다. DMZ를 통과해 흐르는 북한강과 임진강, 안개에 싸인 태봉국 궁예도성 터, 폭파돼 사라져버린 GP 등을 볼 수 있다. 항공사진은 국방부가 제공한 헬리콥터를 타고 비무장지대를 동과 서로 오가면서 찍었다.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DMZ 인근에서 비행이 불가능해져 통일 전에는 촬영할 수 없는 사진이다.
책에는 한국전쟁 정전협정문과 군사분계선 지도 사본도 포함됐다. 정전협정문과 지도가 출판물로 간행되는 것은 처음이다. 전시는 오는 8월 26일까지.
권용휘 기자 real@kookje.co.kr